다시 짚차를 타고 내려와 리틀버스에 탑승 장백폭포 주차장에 내려 장백폭포, 녹연담, 소천지 등을 구경하면서 개선장군이 되어 천천히 하산을 하였다. 그렇게 꿈에서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뒤로하고 국도를 3시간 달려왔던 길 퉁화로 이동했다. 한국식당이 손님을 반긴다. 한국식 음식과 고량주, 소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뒷날은 지안으로 이동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졸본성과 2번째 수도 국내성을 구경했다. 위치는 압록강변 위쪽에 있으며 북쪽은 중국땅 지안 남쪽은 만포라 한다. 국내성 유적은 환도산성, 광개토왕비, 장수왕릉 등
긴 세월 오랜만에 선택한 해외여행 산행지 한반도 최고봉 민족의 혼이 깃든 영산 백두산을 지인들과 남해 전문 화전관광 여행사를 통해 다녀왔다. 말로만 들어온 우리나라 최고 산은 말 그대로였다. 해발 2,744m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성충화산으로 중국에서는 청바이산이라 부른다. 함경남도와 북도, 중국 동부지방(만주) 길림성이 접하는 국경에 걸쳐있는 활화산으로 총면적 8,000㎢ 전라북도 면적과 비슷하며 북쪽으로 장백산이 있다. 평균수심 213m 가장 깊은 곳 384m 둘레 14km 16개 봉우리중 6개 중국 7개 북한 1개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시각이 아닐까요. 사람의 오감 (눈, 귀, 코, 입, 혀) 중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섯 감각 중에서 그래도 그 범위가 가장 넓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감정을 건전하게 이끄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에다 시각은 고도의 정신력을 정립시킨다는 차원으로까지 이어지니, 그 의미가 실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시점에서 사물이
우형리는 우형동리로 불리던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소를 닮았다고 하여 지은 지명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은 송아지 다섯 마리가 뛰어가는 형상이라 오독산이라 하고 천상사 안쪽에 있는 등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 우왓등(牛臥嶝)이라 불러 소에 관한 지명이 많은 곳이며 맞은편에는 우지막골이라는 마을도 있었다. 그러나 구글 지도를 보면 마을의 형태가 소를 닮았다는 것은 확인하기가 어렵다.우형리는 소 우(牛) 꼴 형(形)자를 쓴다. 당연히 우리말은 소꼴 마을 이다. 쇠꼴은 소 모양으로 풀이 할 수 있지만 소를 먹이는 꼴(소먹이 풀)을 뜻하기도
플라톤이 제시한 그리스 종교 축제의 마지막 기능은 인간들이 축제를 통해 신들과 함께하며 삶의 영양분을 받고 삶을 재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는 일반적으로 금기와 위반, 일탈과 전복 등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신과 일치를 이루는 신들림 상태는 춤과 음악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불안이나 공포 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뉘소스는 삶의 해체와 전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디오뉘소스는 포도주의 신으로 인간의 소통을 치유하는 신이며, 기쁨의 신으로 여성들과 심지어 노예들조차 입문할 수 있다.
온 세계 약 200여 개국 국가들이 각국 고유의 돈을 찍어내어 국민들이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사용하며 생활들을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이 중요한 돈을 벌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직업들을 통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들을 하고 있으며 벌어들인 돈들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기본생활방식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 쓰여지고 있으며 더 잘먹고 더 좋은 집에 더 고운 옷을 입어 보려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옛날엔 일자리도 많지 않아서 돈 벌기가 아주 어려웠었는데 요즈음엔 웬만한 기술만 습득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돈이 많이 흔해
세상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복잡해진 것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자동화된 기계에 의하여 생활에 편리한 갖가지 물건이 수없이 쏟아지고, 스마트폰이 생활의 축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편한 줄만 알았던 날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없는 복잡으로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심란해진 걸까요? 심란의 정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까닭 없는 불안감이 몸과 마음을 엄습하는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는 관점에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문명
평산포는 옛 지리지에는 평산, 평산포, 평산현, 평산포영, 평산폐현, 평서산, 서평으로 불리던 곳이다. 신라시대부터 서쪽 대양을 지키는 군사 요충지 이었으며 남해군의 전신인 전야산군의 영현이었다. 신라의 평서산현은 일명 서평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가야나 신라의 서쪽 국경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본래 신라 초기에 평서산현(平西山縣) 또는 서평현(西平縣)이었으나, 경덕왕 때 평산현으로 고쳐 남해군(南海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지에도 평산폐현은 현 남쪽 25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고려 초 왜구의 침입으로 이 지역이 폐허가
축제에서는 신들과 인간들 간의 ‘수직적’ 소통과 인간들과 인간들 간의 ‘수평적 소통’을 이룬다. 종교 축제는 인간들에게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 축제를 통해 인간의 고통에 위로를 주고 인간의 노동에 휴식을 준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제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양방향으로 접근해 들어갈 때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은 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종교제의를 바치게 된다. 그래서 종교제의는 근본적으로 신에게 호의를 얻고 신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
선선한 가을바람이 10월 남해의 산야(山野)를 적십니다. 사계절 내내 부는 바람이 각기 특색이 있다고 하지만, 가을바람만큼 산야를 쾌적하게 해주는 바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 쾌적함과 신선함에 여름 더위에 지친 생기를 되찾고, 내면에 무심(無心)의 바람마저 일으킬 기세이니, 가을바람의 역동성을 어찌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잦은 생각과 감정에 얼룩진 내심을 정화하고도 남을 가을바람에 감사를 느끼며, 여느 날처럼 동네 앞 농로(農路)를 거닙니다. 고요에 물든 농촌 들판은 아직 추수하지 않은 벼 이삭이 가을바람에 출렁이고, 어떤 때
우리나라 옛날 50년대와 60년대 초기까지 농촌 농가들에서는 논에는 주로 벼농사와 보리농사, 밭에는 고구마를 많이 심어 식량을 해결하였는데 비료도 부족하고 곡식 수확량이 많지 않아 쌀이 많이 모자랐고 보리밥과 고구마 밥으로 끼니를 많이 해결하였고 바라의 해초인 주칭이라는 바다풀도 보리에 섞어 밥을 지어 먹기도 하였답니다.먹을거리가 없어 집집마다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6.25 전쟁 휴전 후에는 미국에서 강냉이 가루와 분유가 많이 원조되어 학교에서 아주 큰 가마솥에 죽을 쑤어 급식도 하였었고
가화포리(加火浦里)의 우리말 지명은 더불개, 더우개 이다. 천황산 남녘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로 임진성 안쪽 손목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때 부르던 지명이다. 가화포는 더할 가(加) 불 화(火) 개 포(浦)자를 쓰니 불이 덮은 개를 의미한다. 더불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라고 전하니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일부 자료에는 가대포리(加大浦里)로 기록된 곳도 있지만 가화포리의 잘못된 표기로 생각된다. 후에 가화포는 인구의 증가에 따라 상·하가화포리로 나뉘고 상가화포리는 앞 두 글자를 떼어서 상가리(上加里)가 되고, 마을의
그리스인들은 다른 문화들과 달리 희생 제의로부터 아주 독특한 종교적 축제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축제라고 부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의 원형적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이 축제의 요소들을 통해 보여주는 전신은 바로 경쟁(agon)이다. 니체는 그리스 문화를 주도하는 강력한 특징 중 하나가 경쟁이라고 했다. 그리스 종교 축제가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탁월성은 우리에게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온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 날 때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두 손 쭉 펴고 지금까지 사는 동안 고생하며 욕심 부리고 아끼며 모아 움켜쥐고 있던 재산이나 어떤 벼슬이나 권세도 다 버리고 두 눈 꼭 감고 저 세상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고 합니다.일생동안 농부는 농부대로, 어부는 어부대로, 상인이나 사업가나 일반 직장인이거나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나름대로 많은 노력과 수많은 경쟁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 분도 있을 것이고 실패하여 어렵게 사는 분들
결실과 풍요의 계절 가을입니다. 보통 이때가 되면 누런 벼와 잘 익은 홍시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빨갛게 익은 감 홍시가 즐비한 마을 그리고 황금색으로 물든 논 자락은 바라보기만 해도 따뜻한 정과 풍요를 느끼게 해줍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결실이었던가요. 아니 얼마나 바라던 풍요인가요. 지난, 여름 어느 해에 견주어도 유래가 없었던 이상 기후에 노심초사하며 정말 올해는 수확이 제대로 되려나 걱정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이처럼 가슴 뜨거운 풍요가 펼쳐지는 지금, 바라만 보아도 가슴을 뜨겁게 할 풍요가 일 년 내내 계속된다면
추석은 농사짓는 일에 감사해하며 풍요한 결실을 스스로 축하하는 날이다. 아울러 돌아올 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소망하며 조상님께 감사드리는 날이기도 하다. 추석의 본딧말은 ‘가ᄇ’였고, 훗날 ‘가ᄫ→가위’로 변천했다. 여기에 크다는 뜻의 접두사 ‘한’이 결합하여 ‘한가위’가 되었다. 가을의 한가운데인 음력 8월, 그 중에서도 한가운데 날인 15일이 한가위다.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742~764) 옛 3국 지명을 한자어로 통일하면서부터 순우리말이 한자어로 바뀌게 되었다. ‘너른내→광천, 찬샘→냉천’ 등이 그 예다.추석은 농사짓기와 결
대정리(大丁里)는 큰 정자나무와 정자가 있어 큰 정자마을로 불리다가 대정자리나 큰 정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의 밭에 있는 지석묘는 오래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임을 알려 주고 있다. 지금도 동정, 남정, 금곡을 대표하는 중심마을이며 옛날에는 대정 사창(社倉)이 있던 마을이다. 한자 표기는 큰 대(大) 장정 정(丁)자를 쓰지만 옛날에는 큰 대(大) 정자 정(亭) 아들 자(子)를 쓰거나 큰 대(大) 정자 정(亭)자를 써서 큰 정자가 있었던 마을을 뜻했다. 지금은 뜻을 알 수가 없는 지명이 되었다.정자리의 지명은
축제란 무엇일까? 축제가 일상화되면서 어디서나 주말이면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축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고 축제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고 축제의 다양성과 발전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많은 축제를 양성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특성 때문이다. 축제를 통해 지역 문화를 육성하고 글로벌 시대에 국가 경쟁력이나 지역경쟁력을 높여 축제를 통한 자본 유입으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기 때문이
작년 이맘때쯤 그래도 동네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부부의 출산 소식에 마을 전체가 기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이후 일 년이 지난 오늘 아침, 이장이 방송으로 아이가 첫돌을 맞이하여 저녁에 돌잔치를 하니 많이 참석해달라는 내용을 전합니다. 그 방송을 들으니, 마치 필자의 손자가 첫돌을 맞이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60~70년대에는 한 가구당 5~6명 자녀의 출산이 다반사였던 시절에 비하면 첫돌 이야기가 나오는 자체가 생소하지만, 농촌의 현실에 비추어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 첫돌을 맞이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큰 경사가 아닐
서호리의 옛 지명은 와야동리였다. 후에 마을 앞을 흐르는 큰 개천이 서쪽으로 흘러 서상 앞바다에 이른다고 서호리로 바꾸었다고 하며 한자로는 서녘 서(西)와 호수 호(湖)자를 쓴다. 서쪽에 호수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지만 호수는 땅이 움푹 파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내륙 수면으로 못보다는 깊고 넓게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곳은 그런 곳이 없다.물이 고여 있는 곳은 크기별로 구분하여 큰 것부터 호수(湖) 못(池) 못(潭) 못(淵)으로 구분을 하였다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천제연 등이 그러한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인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