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의 새해가 활짝 열렸다. 새해 연초에는 각자 새로운 꿈과 희망을 기원하면서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안녕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우리 사회 모두의 ‘집안이 화목하여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가정 내 화목과 사랑을 잘 구현하여 사회가 조화롭고 행하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보통 ‘화(和)’는 벼(禾)와 입(口)을 합친 말인데 벼는 밥이 되는 곡식이고 입은 음식을 먹는 몸의 일부이므로 ‘화(和)’는 ‘밥을 먹는다’는 말이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귀거래혜 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 (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 舟遙遙以輕颺 風飄飄而吹衣 (주요요이경양 풍표표이취의)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 (문정부이전로 한신광지희미) 乃瞻衡宇 載欣載奔 (내첨형우해흔재분) 僮僕歡迎 稚子候門 三徑就荒 (동복환영 치자후문 삼경취황) 돌아가자, 정원이 황폐해지고 있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이제껏 내 마음 몸 위해 부림받아 왔거늘, 무엇 때문에 그대로
夫天地子萬物之逆旅 (부천지자만물지역여) 光陰者百代之科客 (광음자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爲歡幾何 (이부생약몽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고인승측야유 양유이야) 況陽春召我以煙景 (황양춘소아이연경) 大塊假我以文章 (대괴가의이문장)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낙사) 群季俊秀 皆爲惠連 (군계준수 개위혜련)吾人詠歌 獨참康樂 (오인영가 독참강락) 幽賞未已 高談轉淸 (유상미이 고담전청)開瓊筵以坐花 飛羽觴而醉月 (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 何伸雅懷 (불유가작 하신아회)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대체로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부기시) /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 富貴非吾願(부귀비오원)帝鄕不可期(제향불가기) 懷良辰以孤往(회량신이고왕) / 或植杖而耘耔(혹식장이운자)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 /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부해의) 육체가 이 세상에 얼마 동안이나 남아 있으리오 어찌 마음 가는 대로 생사를 운명에 맡기지 않으리오 어찌 이제 와 덤벙거리며 어디로 가려 하는가 부귀는 내 바라는 바 아니요, 신선의 세계도 기약할 수 없다.좋은 시절을
請息交以絶游(청식교이절유) 世與我而相遺(세여아이상유) /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悅親戚之精話(열친척지정화) /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 將有事于西疇(장유사우서주) 惑命巾車(혹명건차) / 惑悼孤舟(혹도고주)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 / 亦岐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 /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 善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 /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 已矣乎(이의호) / 세상과의 교류를 끊으려 한다 세상과 나는 서로 잊고 말지니 다시 한번 관리가 되어도 거기 무슨 구할
三徑就荒(삼경취황) / 松菊猶存(송국유존) 携幼入室(휴유입실) / 有酒盈樽(유주영준)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倚南牕以寄傲(의남창이기오) /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 / 門誰設以常關(문수설이상관)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류게) / 時橋首以游觀(시교수이유관)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影翳翳以將入(영예예이장입) /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 歸去來兮(귀거래혜) 집 바당의 세 갈래 오솔길은 황폐했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다 꼬마 손잡고 방에
歸去來兮(귀거래혜)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奚惆愴而獨悲(해추창이독비)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實迷塗其未遠(실미도기미원)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舟搖搖以輕颺(주요요이경양)/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 恨晨光之憙微(한신광지희미) 乃膽衡宇(내담형우)/ 載欣載奔(재흔재분) 僮僕歡迎(동복환영)/ 稚子候門(치자후문)/ 三徑就荒(삼경취황)…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지금껏 내 스스로 마음을 육체에 사역하도록 하였으니
夫天地者萬物之逆旅(부천지자 만물지역려)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 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爲歡幾何(이부생약몽 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良有以也(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況陽春召我以煙景(황양춘소하이연경) 大塊假我以紋章(대괴가아이문장) 會桃李之芳園序天倫之樂事(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群季俊秀皆爲蕙連(군계준수 개위혜련) 吾人詠歌獨慙康樂(오인영가 독참강락) 幽賞未已高談轉淸(유상미이 고담전청) 開瓊筵以坐花飛羽觴而醉月(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何伸雅懷(불유가작 하신아회) 如詩不成罰依金谷酒數(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旅館
酒盡君莫沽(주진군막고) 壺乾我當發(호건아당발) 城市多囂塵(성시다효진) 還山弄明月(환산농명월) 술이 없어졌거든 그대여 다시 사오지 말게나 병이 바닥이 나며 나는 곧 떠날 것이네 도시는 너무 시끄러우니 산에 돌아가 밝은 달이나 희롱하려네.
日落沙逾白(일낙사유백) 雲移水更淸(운이수경청)高人弄明月(고인농명월) 只欠紫鸞笙(지흠자란생) 해가 떨어져 모래 더욱 희고 구름 옮기니 물 다시 맑구나 높은 사람 밝은 달과 노나니 오직 자란생(신선이 부는 피리)만이 없구나
念頭昏散處(염도혼산처)엔 요지제성(要知提醒)하고 念頭喫緊時(염두끽긴시)엔 요지방하(要知放下)라. 不然(불연)이면 恐去昏昏之病(공거혼혼지병)이라도 又來憧憧之擾矣(우래동동지요의)라. 마음이 어둡고 산란할 때는 정신을 차릴 줄 알아야 하며 마음이 긴장되어 딱딱할 때면 탁 풀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두운 마음을 고칠지라도 다시 흔들리는 병에 걸릴까 두렵다.
푸른색으로 몸을 둘러 아주 작은 개구리/ 일생을 단정히 매화가지에 앉았네// 제가 감히 높은 데 있길 바라서가 아니라/ 닭 창자 속에 산 채로 매장됨이 두려워서라이 시는 다산 정약용이 쓴 ‘여름날의 흥취’입니다. 작은 개구리 하나가 일생을 단정히 매화가지에 앉아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의 해석이 재미나지요? 감히 높은 데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닭 창자 속에 산 채로 매장되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하네요.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다산의 이 시는 ‘문인화 화제집’에서 본 글인데 곱씹어 읽을수록 그 표현이 놀라워 함께 나누고 싶었답니다
태산은 어떤 산 인고/ 제나라 노나라 땅에 푸른빛이 펼쳐져/ 그치지 아니하였지 않은가/ 조물주가 신령한 정기를/ 이 산에 모았고/ 산의 높고 큼은 산의 남북이/ 명암을 달리할 정도다/ 층층이 나는 구름이 가슴을 환히 하고/ 깃을 찾아가는 새를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 보노라/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정에 올라/ 뭍산들이 작다는 것을 한번 느껴보리라.위의 글은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당나라 현실주의 시인인 두보의 시로 서예고선에서 발췌해서 써보았습니다. 시원한 산정의 풍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것이 곧 가을 하늘과 잔잔한 바다요, 곁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이곳이 곧 선경(仙境)이다”이 글은 채근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물욕(物慾)이 이는 것을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것에 비유했고, 그런 먹구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독서와 음률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물욕은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어서 이 물욕에 사로잡히면 인간이 아닌 동물의 근성을 드러낸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의 가슴속에는 갈등과 번뇌와 망상이 떠날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욕을 잘 다스리는 이의
“글씨는 거울이 되어 천년을 비추고, 붓은 꽃이 되어 사시사철 핀다”는 뜻의 ‘서경조천고(書鏡照千古) 필화개사시(筆花開四時)’ 이 글귀는 곁에 두고 두고 읽어볼수록 그 뜻이 아름답고 깊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결심하는 것이 어쩌면 운동과 독서가 아닐성싶습니다. 몸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을 위하는 첫 길이기도 하지요. 서예는 몸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을 함께 돌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가슴에 품고 싶은 좋은 글귀를 찾아 정성을 다해 한 획 한 획 써보기 때문이지요. 책에서 만난 글귀는 흔들리는 우리 삶의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 한자성어인 ‘가화만사성’은 2022년 민족 대명절 설을 맞이해 다시금 되새겨 볼 말이다.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이 한자성어가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근간인 가정이 화목하면 ‘온갖 일’이라는 뜻을 품은 ‘만사(萬事)’가 다 이뤄진다니, 그야말로 마법의 글씨가 아니겠는가. 그저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 신문 연재를 시작했듯이 ‘그저 함께 웃고 싶어서’ 먼저 손 내밀고 먼저 눈 맞춰보는 한 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