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에서는 신들과 인간들 간의 ‘수직적’ 소통과 인간들과 인간들 간의 ‘수평적 소통’을 이룬다. 종교 축제는 인간들에게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 축제를 통해 인간의 고통에 위로를 주고 인간의 노동에 휴식을 준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제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양방향으로 접근해 들어갈 때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은 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종교제의를 바치게 된다. 그래서 종교제의는 근본적으로 신에게 호의를 얻고 신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인간의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탁월성을 통해 신들을 기쁘게 하며 자신도 기쁘게 된다.

플라톤이 말하는 축제의 정의를 분석해 보면 첫째, 축제는 인간의 운명으로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고통받는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제우스의 궁전에 행운과 불운이 들어있는 두 개의 항아리가 있으며 모든 인간의 운명은 이 두 가지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결코 불운을 피할 수는 없다. 신은 지극히 행복한 삶을 살지만 인간은 행운과 불운이 섞인 삶을 산다. 인간에게 우연적인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욕망하는 존재라고 한다. 

남해문화재야행 축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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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신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본성적으로 이성보다 욕망이 훨씬 다양하고 강력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기가 쉽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탁월한 상태에 있다면 최소한 이 모든 것을 잘 견뎌 낼 수 있다고 한다. 

셋째, 신들의 동참으로 플라톤은 호메로스 시대와 달리 그리스신들이 인간을 불쌍히 여겨 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이 잠시라도 고통에서 풀려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축제이다. 플라톤은 축제가 궁극적으로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 휴식이다. 인간에게 영원한 안식은 죽음이다. 

축제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축제를 통해 때로는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제의로부터 축제가 발전되면서 경쟁을 통해 인간들이 자신들의 탁월성을 드러내는 방식들은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신들에게 올리는 희생제의만을 통해서라도 인간의 탁월성은 가장 분명하게 발휘될 수 있다.  

인간들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인 이성을 통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들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들에게 희생제의를 바칠 수 있고 신들은 인간들의 희생제의를 즐겨 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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