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복잡해진 것 같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자동화된 기계에 의하여 생활에 편리한 갖가지 물건이 수없이 쏟아지고, 스마트폰이 생활의 축으로 자리 잡은 현실에서 편한 줄만 알았던 날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알 수 없는 복잡으로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심란해진 걸까요? 심란의 정도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까닭 없는 불안감이 몸과 마음을 엄습하는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는 관점에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마음이 안정되는 형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에서 더욱 그러한 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복잡해진 것은 아무래도 물질이나 돈과 연관된 경제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요. 이를테면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욕망과 욕심이 보편적 기준과 순리와 순수를 넘어버린 형국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유형의 복잡이든 복잡을 살피다 보면, 유무형의 물질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증세가 과도한 소유욕으로 이어지면서, 이에 편성된 정신 분열 증세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마저 일으키니, 세상은 세상대로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복잡이라는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런 증세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복잡을 다스릴 묘안을 찾지 못하고 정신적인, 심리적인 방황을 거듭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명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단순과 진리가 아닌 복잡과 연관된 물질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이 다소 어색합니다만 마음의 세계에 대한 공감 의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어느 부류든 복잡을 해소할 명분 있는 답을 내어놓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어느 부류에 종사하든 이 복잡 현상을 뛰어넘어 한 시대를 이끌 특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오늘날에도 최고로 존엄한 인간의 성정을 귀하게 여기는 갖가지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특히 이 과정에서 필자는 유무 상자(有無相資)의 경제학을 주목해 봅니다. 유무 상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의지함으로써 서로를 유익하게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894년 동학혁명 시대 동학 혁명군은 이 유무 상자를 광범위하게 실천하였는데, 많이 가진 사람이든 작게 가진 사람이든 서로 도와주고 나누는 일심동체(一心同體)의 정신은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외침의 바탕에는 사랑과 자비와 공경의 정신은 물론 모든 생명은 하나요, 둘이 아니라는 초 논리적 심성이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문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당시, 하나의 공동체에서 우호적이든 그렇지 않든 참여한 모든 당사자가 차별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한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심동체(一心同體),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 통하는 것은 드러내지 않고 위할 때라야 일심(一心)이 될 수 있다.” 이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넉넉함이 바탕을 이룹니다. 넉넉함은 함이 없이 기쁨을 누릴 때, 그 만족은 최고조에 달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누구라도 소리 없이, 드러남이 없이 행하는 선행의 기쁨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를 힘들게 하는 복잡을 상쇄할 가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흔적을 남기려 하기에 복잡이 생기고, 명예를 생각하니 갈등의 분초가 된다면,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미묘난측(微妙難測)한 진실한 마음의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선행적 행보에서 항상 연말이 되면 몇억 원을 또는 얼마간의 성금이라도 이름을 남기지 않고 선뜻 기부하는 기부 천사의 경우는 특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복잡을 대신할 근거에서 흔적 없음이란 창조의 근원으로, 잠재적 역량으로,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차원 높은 마음의 세계입니다. 

흔적 없는 무형의 선행에서 마음은 더 긴밀하게 하등의 경계 없이 통한다는 유무 상자와 같은 경제학이 물질과 정신의 복잡을 해소할 촉매제가 된다면, 한 해가 가기 전에 그러한 역량을 키워보는 것도 복잡을 거두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 진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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