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시각이 아닐까요. 사람의 오감 (눈, 귀, 코, 입, 혀) 중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다섯 감각 중에서 그래도 그 범위가 가장 넓고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감정을 건전하게 이끄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에다 시각은 고도의 정신력을 정립시킨다는 차원으로까지 이어지니, 그 의미가 실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시점에서 사물이나 물형(物形)은 형태나 색상을 통하여 그 실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색상이 주는 영향력은 현상을 인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색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이 없더라도, 저녁노을 지는 해의 붉은 장면을 보면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하며 또한, 자연의 중추적 색상이라 할 녹색에서 안정적인 심리를 이끄는 등이 그렇습니다. 그만큼 색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색에 대한 관심은 특별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더라도, 학창 시절에 많이 다루었던 무지개색을 통해서도 그렇고, 가을 들판의 잘 익은 황금빛 벼 이삭을 보면서 색에 대한 의미를 인지하기도 합니다. 

특히 문명이 발달할수록 색상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미감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 색은 필수의 요소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색상과 관련된 심리적 안배를 우선에 둘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바야흐로 색상을 통한 치유의 시대라 칭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까닭에 인간에게서 보는 것이란, 단지 시각을 통하여 형태와 색상을 구분하는 것 이상으로 색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할 정도이니 그 영역이 어찌 깊고 심오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영향력에서 시각 활동의 주체가 되는 색은 인체 내에서 균형과 조화의 차원을 넘어 매 순간 먹는 마음 작용에 따른 심상(心相)의 색이 주변 생명에까지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나의 마음이 선한 기운으로 가득하면 이에 따라 드러나오는 색감 또한 선한 에너지 기운을 담아 시선을 쏠리게 할 것이고, 이와 반대로 무겁고 차가운 생각과 감정에 따라 터져 나오는 색상은 당연히 그러한 마음에 따라 주변에 어두움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색상은 역사적으로도 개인의 의식 차원을 넘어 대중의 심리와 심지어는 군중 의식의 전환까지도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을 접하게 될 때면 실로 그 위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심연을 울리기도 하고 슬픔이나 분노나 절망조차도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색상의 잠재력이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대변한 사례가 피카소가 펼친 그 유명한 청색 시대의 전개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암울했던 당시, 그 시대 배경은 죽음과 분노와 원망의 기운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를 전환하기 위해 발상한 청색은 많은 분의 가슴에 공감의 정서를 안겨줍니다. 이른바 분노와 원망의 기운이 함축된 검붉은 색상 대신 푸른 청색을 가미시킴으로써 암울했던 시대 분위기를 차분함과 긍정적 정서로 이끈 사례입니다. 

물론 완전한 전환에 이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도 색상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갸름할 기회였다는 점에서 그 효율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색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사람의 마음마저 치유할 수 있다는 이러한 역동성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만큼 색상을 응용한 치유는 심과 빛과 기의 총합으로 에너지 자산의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색상이 주는 내밀한 성향으로 늘 쬐는 빛과 그리고 그 빛 속에 잠재된 색상이 우리 인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색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내 마음에 드리워진 색은 어떤 색인가? 격한 감정의 검붉고, 어두운 색일까? 아니면 밝고 화사한 긍정의 마음 색일까? 이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일어나고 있는 마음의 색을 살펴보는 것도 나와 전체의 미감을 아름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살펴보는 행보 역시 명상의 한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이 색상의 시대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염연히 존재하는 나의 색을 찾는 일 또한 마음과 몸 그리고 성품을 아우르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이를 여과없이 실행해보는 것도 본래의 나를 찾는 여정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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