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호 ​​​​​​​​​​​​​​남해스마트관광택시
정길호 ​​​​​​​​​​​​​​
​​​​​​​남해스마트관광택시

다시 짚차를 타고 내려와 리틀버스에 탑승 장백폭포 주차장에 내려 장백폭포, 녹연담, 소천지 등을 구경하면서 개선장군이 되어 천천히 하산을 하였다. 그렇게 꿈에서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뒤로하고 국도를 3시간 달려왔던 길 퉁화로 이동했다. 한국식당이 손님을 반긴다. 한국식 음식과 고량주, 소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

뒷날은 지안으로 이동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졸본성과 2번째 수도 국내성을 구경했다. 위치는 압록강변 위쪽에 있으며 북쪽은 중국땅 지안 남쪽은 만포라 한다. 국내성 유적은 환도산성, 광개토왕비, 장수왕릉 등 고구려 전통식 돌로 만든 무덤들이 현재 중국땅에 있다하였다.

오후에는 압록강 관광을 하였다. 압록강은 백두산 남파에서 발원하여 북한과 중국을 가로질러서 서한만으로 흘러드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525km이며 한강 514km보다 길다. 과거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할 때, 500년 가까이 압록강 유역에 머물렀다.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 고려와 조선이 이 강을 국경선으로 삼으면서 1천년 넘게 한민족과, 이민족을 가르는 경계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중국과 북한이 배만 타면 양국의 땅까지 접근할 수 있으며 탈북민이 제일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점심식사 후 소형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 칠백리’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압록강 철교, 단교를 구경했다. 일제가 1911년 일본의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건설한 다리로 오늘날 중국과 북한 땅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미국이 중공군의 군사군수물자 유입과 중공군을 막기 위해 다리 절반을 폭파시킨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면서 관광화 시키고 있다.

지금은 옆에 중국과 북한을 연결한 944m 1차선 철길과 차량이 오가는 다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압록강을 뒤로하고 단동에서 만리장성 시작점 호산산성을 올라갔다. 소요시간은 왕복 1시간이다.

험준한 악산이었다. 산모양이 누워있는 호랑이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고구려 때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 방어역할을 담당했다 하였다.

1250m로 산등성이를 따라 정상에 올라서면 당시 군인들이 적들이 쳐들어 오면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횟불로 신호를 하던 초소가 있었다. 북한땅 옥수수밭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고 농부들 농사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또 북한 인민군들이 총을 메고 훈련하는 모습도 보여서 불안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려와 중국 이온음료를 한 병 사서 마시고 가이드가 안내하는 다음 여행지로 가기위해 차에 탑승하였다.

남은 시간 심양으로 이동 북릉 공원을 관람했다. 그곳엔 누르하치와 아들 홍타이지 무덤이 있는 곳이다. 배경은 조선 인조 14년 1637년 1월 당시 후원 홍타이지가 정묘호란 이후 10년 만에 다시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재침략했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것이다. 인조 임금은 다급히 강화도로 피난을 못 가고 남한산성에 몸을 숨겼다. 강화도마저 함락 당하고 남한산성을 완전 포위 추운 겨울 버티고 버티다 삼전도에서 결국 항복을 하고 만다. 그 장본이 있는 곳을 구경을 한 것이다. 마음은 별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홍타이지는 후원 누루하치 8번째 아들로 조선 태종 이방원처럼 전쟁을 좋아하고 문, 무를 두루 갖춘 인물로 7명의 형제를 물리치고 왕이 된 사람이다. 몽고와 조선을 차례로 정복하고 명나라 중원만 남겼을 때 갑작스런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후 후원은 청나라를 세운 것이다. 만리장성을 넘어 천하통일을 이룬 것이다. 청나라 2대 왕이 되어 지금도 중국에서 추앙받고 있다.

북릉공원은 넓은 면적에 무덤, 동상, 사찰 등 오래된 고목나무 숲에 조경이 잘 돼 있었다. 우리나라 경복궁, 창덕궁 같이 아름다웠다. 당시 조선을 멸망시킨 청나라는 조세는 물론 소현세자, 세자빈 강씨 등 여성들만 50만 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임진왜란이 종식되고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 반정운동이 일어나면서 당시 조선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 틈을 이용하여 조선을 먼저 정복하고 몽고를 침입, 차례로 명나라까지 완전 장악하여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전쟁이었다.

군주와 신하가 무능하면 백성이 궁핍하고 큰 비극이 찾아온다. 청나라에 잡혀간 여성 중 사대부 집안 여성이 제일 많았다. 그들은 청나라 심양에서 노예로 팔려 가고 힘든 생활고에 지쳐 자결한 여성들만 수천 명이 넘었다는 기록이다.

잠시 삼각한 시 한 편 소개한다. 당시 예조판서 김상헌 시다.

“가노라 삼각산아 / 다시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 올동 말동 하여라” 짧지만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와 함께 인질로 잡혀갈 때 나라에 대한 걱정과 충성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조이다.

지금도 나라 한쪽에선 포성이 들리고 전쟁 중이다. 다시는 이 뜻에 오랑캐가 침입 못하게 유비무환 정신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만들어 나가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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