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판각의 얼이 서린 사랑의 봉수대
대장경 판각의 얼이 서린 사랑의 봉수대
  • 남해신문
  • 승인 2021.05.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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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작가의 남해화첩 (4)
화방사 대웅전 / 아크릴화 / 65X50cm
화방사 대웅전 / 아크릴화 / 65X50cm
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남해에는 고찰(古刹)로 손꼽히는 사찰이 네 군데 있다. 금산의 보리암과 호구산의 용문사, 그리고 망운산의 망운사와 화방사다. 하나하나 창건 유래가 남다르고, 가피력에도 특징이 있지만, 내가 최근 가장 자주 찾는 사찰은 화방사다.

화방사는 망운산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양편으로 계곡물이 흘러 늘 시원한 물소리를 즐길 수 있다. 삼림이 우거져 있는데다 봉우리 사이로 강진만의 푸른 수면이 조각달처럼 떠 있어 뜰에 서면 탈속한 정취를 만날 수 있다.

화방사가 내게 각별해진 때는 고현면으로 이사오면서부터였다. 고현면에 산 지 세 해가 채 되지 않았지만, 내게는 참으로 남다른 인연이 닿은 곳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남해에서 전승되는 농무(農舞)인 매구를 알았고, 집들이굿놀음이라는 입택굿도 만나게 되었다. 뒤늦게 나는 민초들이 그들의 애환을 녹여낸 놀이의 흥과 멋을 알게 되었다.

고려 후기 몽골이 침입했을 때,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다시 판각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고현면 일대는 재조대장경 판각의 중심지로 활약했다.(고현면은 조선 세종 때 현청이 지금의 읍으로 옮기기 전까지 현청이 있던 곳이었다.) <종경록>이라는 책 간기에 ‘남해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이라는 지명이 명기되어 있어 남해가 대장경 판각의 핵심 지역이었음이 알려졌다.

험난하고 집요한 몽골의 침입으로 민중들은 악머구리들의 침탈에 신음했다. 그때 이 국난을 이겨내고 백성들의 고통을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감싸고자 다들 대장경 판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고현면의 곳곳에 판각을 위한 시설이 들어섰고, 남해사람들은 작은 희생은 감수하면서 이 일에 정성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방대한 판각 유산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때 화방사는 판각의 실무와 불심(佛心)을 아우르는 구실을 했다. 지금도 화방사에는 대장경을 인경(印經)할 때 쓰인 고급 종이의 원료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보존되어 있다.

고현면에는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회장 김정렬)’가 군민의 성원에 힘입어 활동 중이다. 대장경을 판각한 성지로 남해군을 알리고 유적지를 보호, 복원하기 위한 모임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모임에 참여했고, 지금은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판각 문화제’ 등 여러 사업에 힘을 모으고 있다.

‘세사에 시달릴’ 때면 나는 ‘번뇌를 별빛으로’ 사르고자 화방사를 찾곤 한다. 대웅전 마룻바닥에 앉아 부처와 마주하노라면 사나운 마음도 한 줄기 등불이 되어 타올랐다. 우리의 삶이 비록 남루하더라도 부처의 눈으로 보면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이다.

그 부처의 마음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대장경을 판각하려는 염원이 하나로 모였을 때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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