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가 모여서 바다를 이루다
시내가 모여서 바다를 이루다
  • 남해신문
  • 승인 2021.08.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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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작가의 남해화첩 (15)
임종욱 작가
임종욱 작가

남해는 섬이라 뭍에서 말하는 강(江)이라 불릴 만한 물줄기는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물이 귀했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지지만, 고일 시간도 없이 흘러가 버린다.

논밭보다 산이 많은 남해. 섬에 있는 산치고는 꽤 높은 망운산, 금산, 호구산 등이 봉우리와 능선으로 이어지면서 남해의 풍광에 탈속(脫俗)한 풍치를 더해주지만, 물이 머물 공간은 많지 않다. 물이 그리워 사람들은 마을마다 우물을 파고 보(洑)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식수와 농사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넓은 강이 없다고 남해에 물 흐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실핏줄 같은 개천이나 개울, 시내가 골짜기와 농토를 가르면서 사람과 대지의 목마름을 축여 주었다. 사람들은 물을 가둘 만한 곳을 찾아 둠벙이나 웅덩이, 저수지를 일궈내기도 했다. 이런 물들이 예전에는 다랭이논의 젖줄이 되기도 했고, 더운 날 아이들이 미역을 감거나 천렵을 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내가 사는 고현 탑동만 해도 녹두산과 금음산의 물을 모아 흐르는 대사천이 사학산 백년골에서 내려오는 개울물과 삼봉산 기슭을 타고 내닫는 냇물을 거두어 관음포 바다로 나간다.

아주 무덥거나 추울 때를 제외하고 나는 아침마다 대사천 주변을 따라 산책을 나가곤 했다. 갈수기에도 대사천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아 맑은 물 사이로 송사리며 피라미 같은 민물고기들이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길가에 떨어진 돌이라도 잡아 수면으로 던지면 작은 포말을 빚어내기도 하고,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물수제비가 길게 여울지기도 한다. 물길을 따라 걸으며 땅과 물이 주는 여유를,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어울린 공존의 아름다움을 겸허한 마음으로 묵상했다.

봉천(鳳川)은 망운산에서 발원해 남해읍의 남쪽을 따라 흐르다 강진만으로 들어간다. 읍 북쪽으로는 동산천이 여울지면서 물의 고마움을 일깨운다.

남해읍 봉천 풍경 / 아크릴화 / 54X41cm
남해읍 봉천 풍경 / 아크릴화 / 54X41cm

봉천은 봉황이 와 목을 축이는 개울이라는 뜻이다. 동산천 상류 오동마을에는 ‘오동뱅이’라 불리는, 여름철에도 물기가 서늘해 피서 행락객이 모였던 골짜기도 있다. 지금은 모습이 예전만 못하지만, 더위에 지친 유배객들도 더러 놀면서 시를 짓기도 했다.

작년 유배문학관에서 상주 작가로 지낼 때 나는 자주 봉천으로 마실을 갔다. 세찬 소나기가 몰아치면 제법 격류가 거침없었고, 한적할 때면 백로 몇 마리가 날아와 서성이며 방심한 물고기를 엿보기도 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봉천이 만든 변신을 지켜보면서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이 작은 물의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어 기뻤고, 두려웠다.

남해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무료해지면 밖으로 나와 봉천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아득한 옛날 장주(莊周)가 친구 혜시(惠施)와 함께 호량(濠梁) 냇가에서 지어락(知魚樂)을 두고 다퉜던 일화를 떠오르게 했다. 내가 물고기가 아니라서 나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없는 것일까?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붕(鵬)이 되어 날아가듯이 세상의 만물은 끝없이 순환한다. 언젠간 내가 봉천이 되고, 봉천이 내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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