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들이 꿈틀대는 남해 문화재의 보고
용들이 꿈틀대는 남해 문화재의 보고
  • 남해신문
  • 승인 2021.08.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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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작가의 남해화첩 (17)
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우리나라에는 ‘용문사(龍門寺)’라 불리는 절들이 꽤 많다. 찾아보니 남북한 통틀어 여덟 곳 정도 되는데, 가장 유명한 세 곳은 다 남쪽에 있다. 

남해의 용문사를 기점으로 내 고향 경북 예천의 용문사, 경기도 양평군의 용문사가 손꼽힌다.

왜 용문사란 이름을 즐겨 썼을까? 알 순 없지만, 중국에 있다는 ‘등용문(登龍門)’에서 유래했을 법도 하다. 험난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꾸라지도 용이 된다는 등용문. 용은 비[雨]와도 관련이 있으니, 가뭄이 많았던 옛날에는 단비를 그리면서 ‘용문’의 상서로움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이동면 용소마을 호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용문사는 683년(신문왕 3) 원효대사가 금산에 초당을 짓고 수도했을 무렵보다 앞선 663년(문무왕 3) 창간되었다. 사찰 창건의 달인 원효대사가 충남 금산에 세운 보광사(普光寺)가 이전되었다고도 하는데, 1400년의 창연한 역사를 자랑한다.

용문사는 경치도 아름다워 수행 도량으로 명성이 높지만, 역사만큼이나 문화재도 많다. 보물 제1446호인 괘불탱화가 있고, 대웅전도 2014년 보물 제1849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승의군(僧義軍)의 요람으로 활약해 조선 숙종 때 수국사(守國寺)란 영예를 얻었고, 지금도 금패(禁牌)가 남아 있어 영광을 알려준다.

이 밖에도 석불좌상(경남유형문화재 제138호)과 시인 유희경(1545-1636)의 촌은집책판(村隱集冊版, 동 제172호), 명부전(경남문화재자료 제151호)과 천왕각(동 제150호) 등이 있다. 나무로 만든 구유(일명 구시통)는 한꺼번에 1천 명이 공양할 수 있을 정도로 사찰의 규모가 남달랐다.

용문사 / 아크릴화 / 53X40cm
용문사 / 아크릴화 / 53X40cm

하지만 용문사를 진정으로 빛내는 것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고승대덕들이 주석했는데, 계율과 불화(佛畵)에서 명성을 떨친 호은율사(虎隱律師, 1850~1918)를 빼놓을 수 없다.

스님은 하동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모님이 남해 사람이었고,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남해에서 살다가 용문사에서 출가했다. 학문과 수양도 깊었지만, 위기의 구한말 나라의 독립을 지키는 일에도 앞장섰다.

무엇보다 나는 스님의 그림에 관심이 많다. 구한말 때의 의병장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 선생이 1901년 남해를 유람했는데, 그때 쓴 <용문사>란 제목의 시 주석에 호은율사에 대한 언급이 있다. 

“호은이란 스님이 있어 금산의 경치를 그렸는데, 장차 임금에게 올리려고 해 이를 말했다.(有儈虎隱者畫錦山形勝 將以上獻故及之)”는 구절이다.

누군가는 ‘상헌(上獻)’의 뜻을 몰라 횡설수설하기도 했지만, 스님이 그렸다는 그 멋진 금산 산수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걸작일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스님의 유덕을 본받고자 하는 나도 부족한 재주로 용문사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전에 나는 스님과 그림 이야기를 연결한 단편 <잃어버린 그림을 찾아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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