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년째 남해에서 살고 있는데, 꼬박 4년을 읍에서 살았다. 가장 오랜 산 곳이기도 하지만, 도저히 떼어놓고는 살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데 남해에서는 읍으로 와야만 해결되는 일이 어지간히 많다.
남해터미널을 떠나는 버스는, 시간 차이는 있어도 다 터미널로 돌아온다. 그 돌고 도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도 우리는 읍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읍으로 오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읍을 떠나기 위해 버스를 탄다.
처음 물건마을에서 살다 읍으로 돌아온 까닭도 버스 때문이었다. 읍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만, 나가는 버스가 일찍 끊긴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셔, 모임이 길어져 늦어지면 영락없이 택시를 타야하는데,-나는 남해로 올 때 자가용을 버렸다- 그 비용이 누적되자 감당을 넘어섰다.
예전에는 읍이 삶의 축이 아니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설천에서 살 때 일인데, 어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난 건 시집올 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버스도 없었을 때니 달구지를 타거나 걸어 오가는 길은 꽤나 성가셨고 불필요했을 법도 했다.
남해 사람들의 삶은 좋든 싫든 대개 읍으로 향하게 된다. 노인들은 병원에 가려고, 농부는 농기구를 사거나 바꾸려고, 중요한 서류를 떼거나 내려고, 물건을 장만하거나 팔려고 해도 읍을 외면할 수 없다. 면마다 있던 재래시장이 구실을 못하고 있는 요즘이라면 더하다.
누구를 만나려고 해도 읍에 있는 카페나 식당을 찾는다. 책을 빌려 읽으려면 읍 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학생들이 알바를 할 만한 곳도 읍을 벗어나면 만나기 어렵다. 일터가 밖에 있어도 읍이 집인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게 읍은 남해 사람들의 맥박을 뛰게 하는 심장과 같은 곳이다.
지금도 읍 인구가 제일 많지만, 예전에는 더욱 붐볐다고 한다. 남해에 있어서 읍은 도회지였다.
그런데 읍도 따스했던 온기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빈 집은 늘고 대신 뜬금없는 아파트들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읍에서 망운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 별로 없다. 인구는 주는데 저 새로 지은 아파트에는 누가 들어와 사는 것일까?
사람의 삶이란 비[雨]와 같은 것이 아닐까? 바다로 흘러가 파도가 되고, 하늘로 올라가 수증기가 되어도 결국은 흙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와서 잠시 머물다가 우리는 다시 바다로 하늘로 떠난다. 읍은 그래서 빗물 같은 우리 삶에 기댈 수 있는 흙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요즘 읍은 탈바꿈을 하기 위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래도 읍이 계속 예전의 아름다움, 고풍(古風)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시골 마을의 원두막처럼 오순도순 모여 정담을 나누다 아쉽게 헤어지고, 다시 만날 설렘이 있는 장소로 남아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읍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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