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온통 섬나라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남해도가 중앙에 버티고, 창선도도 열한 번째로 크다. 어찌 두 섬만 있겠는가? 바둑알처럼 아기자기한 섬들이 사방을 두른다.
<남해군지>에 보니 남해의 작은 섬은 모두 79개라고 한다. 무엇이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노도와 호조, 조도만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무인도다. 어떤 섬은 육지에 닿아 바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섬은 아주 멀리 외따로 떨어져 남해의 변방을 지킨다. 때로 썰물이 되면 놀랍게도 육지로 이어져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 섬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남해 본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은 세존도다. 상주면에 속한 이 섬은 육지에서 거의 2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왕복하려면 배로 3시간이 걸리는 고도(孤島)다. 딱 한 번 가 언저리를 훑었는데, 독도(獨島)처럼 외로우면서도 의연한 모습에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을 받았다.
내게 더 흥미로운 섬은 소치도(所致島)다. 섬 이름도 재미있다. ‘닿게 되는’, ‘닿은 바’, ‘이르게 된’ 등 이 한자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난제다. 누가 왜 이런 이름을 붙여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을까?
이 섬도 상주면 소속인데, 앵강만 노도와 대량마을 언덕에 오르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 볼록 솟아 있다. 어떻게 보면 붓의 맨 끝자락만 물 위에 떠오른 듯도 하고, 큰 원기둥을 바다에 꽂아둔 것처럼 위엄이 넘친다.
두 섬은 크기도 엇비슷하다. 세존도는 33,000제곱미터고, 소치도는 35,546제곱미터다. (의외로 소치도가 더 크다) 오가는 배들의 향도 구실도 톡톡히 해 무인 등대가 밤의 바닷길을 안내한다.
소치도에 직접 오르거나 배로 가까이 가 본 적은 없지만, 노도 문학의 섬 정상에 있는 정자 앞에서 여러 번 구경했다. 세존도는 차라리 보이지 않아 몹시 쓸쓸하겠다 싶은 정도지만, 소치도를 보면 그런 고적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큰 섬과 육지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귀여운 강아지 같아 친근감이 든다.
섬에서 보는 섬. 그 크기마저 앙증맞아 포대기라도 있으면 살포시 감싸주고 싶은 충동을 주는 섬. 저 섬의 꼭대기에 올라 육지를 바라보면 어떤 흥취가 일어날지 감질이 나 한번이라도 섬에 올라보고 싶어진다.
남해 본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작은 섬들. 그곳에 그 섬이 있어야 화룡점정의 대미가 마감되는 꼭 필요한 존재들. 이들 막내둥이들은 큰 원석 주변을 맴돌면서 큐빅처럼 빛나는,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이 있다.
왠지 내 존재가 무력하게 느껴져 허탈할 때, 그래서 작은 것들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나는 소치도를 떠올린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 도로를 돌면서 남해의 숨겨진 보석, 작은 섬들을 만나 인사도 나누고 속사연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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