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정봉주 전 이동초등학교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발굴, 수집해온 이동초 출신 애국지사들의 미공개 기록자료를 연재한다. 연재 여섯 번째 자료는 최금경(1908~1957) 애국지사의 공훈록이다. 최금경 선생은 1909년 1월 25일 삼동면 영지리에서 태어나 동명공립보통학교와 남해중학교,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1930년 재동경 조선유학생 학우회의 연사로서 전국 순회 연설을 하며 민족 자주의식을 고취했다. 1931년 7월 중국 지린성 완바오산(萬寶山) 지역에서 한·중 두 나라 농민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자 일제의 계략을 간파하고 조선총독부의 실정(失政)을 알리는 격문 약 2000매를 인쇄, 서울의 각 학교에 배포하여 동맹휴교를 일으키려다 체포돼 징역 1년형을 받았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8월 15일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이것으로 연재를 마친다. <편집자 주>

최금경 선생의 제4회 동명공립보통학교 졸업(1924. 3. 19) 사진. 동그라미 안 인물은 일본인 교장. 사진 속 졸업생 중 누가 최금경 선생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금경 선생의 제4회 동명공립보통학교 졸업(1924. 3. 19) 사진. 동그라미 안 인물은 일본인 교장. 사진 속 졸업생 중 누가 최금경 선생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성명 최금경(崔金莖)

이명 최봉식(崔鳳植), 최량(崔良)

본적 경남 남해군 삼동면 영지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5년    

훈격 건국훈장 애족장

공적개요

(최금경은) 조선총독부 급비생으로 도쿄(東京) 와세다[早稻田]대학에 유학했으나, 재학 중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공산주의에 공명하고 학업을 중단하였다. 1930년 7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의 5개 순회 강연반 가운데 중앙반 연사로서 전국 순회 강연을 하였다.

1931년 3월부터 서울에 체류하던 중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후 한국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1931년 7월 서울에서 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中央基督敎靑年會學校) 학생인 김만유(金萬有), 홍병모(洪炳模) 등과 함께 먼저 대중 선동 단계로 ‘학생제네스트[General Strike, 총파업]’라는 동맹협의회를 기획하고, 혁명 촉진의 방법으로 격문을 배포하여 학생제네스트를 감행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였다.

최금경 선생 출옥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1933년 7월 17일자 기사
최금경 선생 출옥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1933년 7월 17일자 기사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31년 7월 6일 김병선(金炳璇)의 하숙집에서 만보산사건이 조선총독부의 실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는 격문 약 2000매를 인쇄하였다. 또 7월 8일 홍병모에게 유영경(柳榮京)을 소개해 홍병모를 지도·원조하였다. 그날 밤 10시경부터 휘문고보·여자고보는 이동재(李銅材), 동덕여고보·청년회학관은 홍병모, 고등예비실업전수는 김만유 등에게 분담해 격문을 배포하게 하였다. 그리고 유영경은 경성제2공립고등보통학교에 격문을 배포하게 하는 등 서울의 각 학교에 배포한 후 동맹휴교를 일으키려다가 체포당했다.

격문은 ‘전조선 혁명적 학생들에게 격함’이라 제목하고 “강포한 일본제국주의 학대 압박의 잔혹한 발밑에서 유린되어 신음하는 전 조선 피압박 대중은 현재 저놈들의 강도적 식민지 반식민지 침략정책의 예리한 창끝에 찔려 학살되고 있는 상황을 보라. 이번 만보산 농민학살 구축사건의 진상을, 저놈들은 조선농민의 만주 이주를 이용하여 만주에 있는 조선인 옹호의 미명 하에 가련한 농민의 피로써 만주·몽고의 권리를 강탈하려 하고 있다. 우리의 적은 일본제국주의 및 민중을 착취 압박하는 중국 군벌이지 중국 민중은 아니다. 전 조선 혁명적 학생제군, 전투적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함흥의 동지들과 굳게 약속하여 학생 휴학과 대중적 시위로써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와 싸울 대중과 제군, 8월 1일은 세계 피압박 대중의 세계 제국주의의 아성에 육박하는 반제투쟁일이다. 우리는 이날을 앞에 두고 노동농민과 시민대중과의 굳은 단결로써 결정적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운운 기재하고 또 말미에 “제국주의의 만주침략정책 절대반대, 조선 및 만주주둔 일본군대 즉시 철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민족해방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조선·일본·중국의 피압박 무산대중은 일치단결하여 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소비에트 동맹과 중국혁명을 사수하라”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체포된 인원은 총 17명으로 이 중에서 6명만이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최금경은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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