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정봉주 전 이동초등학교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이 발굴, 수집해온 이동초 출신 애국지사들의 미공개 기록자료를 연재한다. 이번호에는 세 번째 기록자료로 1919년 남해 독립만세운동 주동자 정익주(鄭益周) 선생이 1945년 광복을 맞이해 자신의 생애를 회고한 글을 게재한다. 이 글에서 정익주 선생은 남해 만세운동 당시 함께했던 동지들을 호명하고 옥중에서 겪은 고초를 서술하는 한편 해방의 감회를 노래한 자작 한시 두 편을 담았다. 정익주 선생의 한시는 이동면 금평마을에 귀촌한 조재수 씨가 번역했다. <편집자 주>

1923년 3월 22일 제3회 동명공립보통학교 졸업식(남 31명) 사진. 안타깝게도 이 사진에서 정익주 선생을 특정할 수 없다고 한다
1923년 3월 22일 제3회 동명공립보통학교 졸업식(남 31명) 사진. 안타깝게도 이 사진에서 정익주 선생을 특정할 수 없다고 한다

정익주(鄭益周) 

본적: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금음리 1157

본관: 진양

정유년(1896년) 2월 17일생

경력 개요

1. 갑진년(1904년) 1월 16일 한문서당에 입학하여 계축년(1913년) 2월 15일에 우(又) 한문서당을 종료하고 갑인년(1914년) 4월 1일에 남해군 삼동면 사립동명학교에 입학하여 제사학년을 졸업하고 그후 20년은 농업에 종사함.

사적 상세

1. 기미년(1919년)에 갱(更)히 한문 선생을 청빙하여 한문을 수학하던 중 2월 하순에 환희하기를 조선독립만세운동의 밀보를 접하고 남해군 일원을 중심으로 하여 시위운동을 거행코저 하던 제에 동 4월[원문은 3월이나 착오로 보여 수정함] 3일에 동지 윤희도(尹希道), 양재문(梁在文), 양인을 득하여 차의를 표하고 면내 각 서당을 통하야 동의자가 유하거든 명시일 성내 김능수(金能秀) 주사(酒舍)에서 상봉 타합하자고 사송(使送)하였더니 

즉시일(卽市日)인 4일 우 김능수 주사에서 동지 윤희도, 양재문 외 윤주순(尹柱舜), 이찬덕(李燦德), 문환조(文桓祚), 정학순(鄭學淳), 정순조(鄭順祚), 정몽호(鄭夢虎), 정임춘(鄭任春), 정흥교(鄭興祚), 류봉승(柳奉承), 하상근(河祥根), 정재모(鄭載模), 제군을 상봉하여 타합 약속하고 거사코저 함에 감수(監守)하나 

순사 5명 외 경비 방어함을 불구하고 오후 2시경에 시장 중간에 분산하여 암비하였던 태극기를 고거(高擧)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 연호한 결과 수백명 군중이 일시에 부화 수행하여 만세를 화창하는 동시에 본인이 지휘 솔선하여 당시 남해군수, 학교 일(왜)인 교장, 금융조합 일(왜)인 이사, 일(왜) 순사부장 등에게 조선독립만세를 강제 화창케 하고 

우 부화 수행자 장학순(張學淳), 박경수(朴敬洙), 정용교(鄭鎔交), 하준호(河準互), 김희조(金熙祚), 강환문(姜桓文) 등이 군청 급 학교에서 장자(障子:문) 급(及) 초자(硝子:유리) 오십여 매를 파괴하여 조선독립 시위운동을 행하고 오후 6시경에 해산하였더니 

그후 일 헌병 급 순사 십여 인이 설천면 각 서당을 수사한 결과 본인 외 십수인이 검속되어 본군 주재소에서 칠일간 엄중 악형 고문을 당하고 사천군 삼천포경찰서에 인도되어 십회일간 이구막론(以口莫論)할 악형 고초를 재당(再當)한 후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 검사국으로 호송되어 미결소에서 구십여일을 경과한 후에 2개년 징역에 판결을 언도한 바 부득이 진주형무소에서 처형(處刑)하던 중 불행히 설상가상으로 학질을 득하여 이십사일간을 일일 고통하던 중 일일은 청약(請藥)하다가 무도한 일인 간수 놈의 발길로 협부를 축(蹴)한 바 되어 약 십분간 기사회생함을 동지에게 문지(聞知)하였으며 

그후 경신(1920년) 6월 26일에 감형 석방되어 금일까지 농업에 종사하여 시일은 갈상(曷喪)고 상송(常誦)하던 중 거(去) 8월[원문은 7월] 15일 몽외(夢外)에 아(我) 조선해방의 정보를 문(聞)하고 즉시 수십인의 구회석(區會席)에 조선독립만세를 독창 연호하고 여광여취(如抂如醉)하여 그후 이간시(二看詩)를 음(吟)하니 왈(曰) 

一.

欣然撲手解愁眠(흔연박수해수면) : 흔연히 박수를 치며 시름의 잠에서 벗어나

哀怨方知徹上天(애원방지철상천) : 슬픈 애원은 바야흐로 하늘에 통했음을 알겠도다

幾度誦來喪是日(기도송래상시일) : 잃어버린 억압의 그 날을 몇 번이나 외워왔던가. 

四時期待有今年(사시기대유금년) : 항상 금년(해방)이 오기를 기대하였었네

同胞莫信離溷裡(동포막신리혼리) : 동포여 혼란 속에서 벗어났다고 믿지 말라

兩足無他履冰邊(양족무타이빙변) : 두 발이 얼음을 밟고 있는 것과 다름없도다

耶見風波抂不盡(야견풍파광부진) : 어지러운 풍파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一心槿域繫危船(일심근역계위선) : 근역(우리나라)이 한마음으로 위태한 배를 동여매야지

二.

電波一送海東流(전파일송해동류) : 해방의 전파를 한번 보내니 나라 전역에 번져가는데

萬目瞠瞠半島洲(만목당당반도주) : 세계 많은 눈이 한반도를 휘둥그레 보는구나!  

胡漢死相驚落騰(호한사상경락등) : 오랑캐는 죽을상이 되어 놀라 자빠지고

吾人生氣樂登樓(오인생기락등루) : 우리는 생기있게 누각에 올라 즐겁구나             

鼓笳莫止難堪興(고가막지난감흥) : 북과 피리 소리 멈추지 않아 흥을 감당하기 어렵고

歌舞安辭快幻愁(가무안사쾌환수) : 가무와 편안한 음곡에 어지러운 근심 상쾌해지네

世事如斯眞可夢(세사여사진가몽) : 세상의 일 이와 같이 진정으로 가히 꿈같아서

願言長醉不醒游(원언장취불성유) : 오랫동안 취하여 깨지 않는 유희이길 바라노라.

以上(이상)

을유년(乙酉年, 1945년) 11월

정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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