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 발전을 위해 언제나 애 쓰시는 하미자 원장을 만나러 간 날, 다른 일정이 겹쳐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아쉽게도 질문지로 대신했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남해문화원 가족들을 반기는 하 원장은 지난 2012년 초임, 2016년 연임으로 남해문화원을 열심히 이끌어가고 있다. 남다른 가치관으로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 하 원장의 면면을 들여다
‘늘 새로운 사람들’ 카페 운영가물었던 하늘에서 시원스럽게 비가 내리던 날 ‘늘 새로운 사람들’의 연구실장인 박철 씨를 만나러 양지마을로 갔다. 집까지 운전하여 가겠다고 했더니 직접 마을회관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친절하게 필자를 마중 나온 것도 고마웠는데 편안한 미소와 어투에서 고차원적인 향
지난 3월 9일 2017년도 메리츠화재연도대상, 본상 중견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한 진주본부 남해지점 신희철 지점장을 잠깐 만나보았다.문)메리츠화재에 근무한 지는 어느 정도 됐는지, 이곳에 근무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여기에 오기 직전, 현대해상에서 6개월을 근무했다. 나를 눈여겨 본 어느 지인이 메리츠화재로 스카웃을 하여 지금 3
남해군예음협회 창립, 초대회장에 가수 고재억 선출“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군민들에게 하루라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즐거움을 봉사하는 순수 음악단체인 남해군예음협회를 창립코자 한다. 제1대 회장님으로 남해에 거주하는 고재억 씨를 회장으로 추천한다. 회원 40명 중 참석 인원 34명 전원이 거수로 찬성의사를 밝혀 올해 새롭게 고
문)서면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걸로 알고 있다. 그동안 어떤 활동들을 하셨는지-약관의 나이에 공직에 입문하여 40여 년간 재직하다보니 지역사회에 봉사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퇴직을 한 후 마땅한 일을 찾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대한적십자사 경상남도지사 남해지구협의회 후원회장을 맡아 얼마 전까지 활동했다. 개인적으로는 남해읍에 남자봉사원들로만 구성된 화전적
문)어떤 계기로 정계로 진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의정활동에 대한 소견을 간단히 밝힌다면-박익주 의원(1989년도)시절에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30대에 당원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신한국당 시절(1995년)에는 회원들의 성원에 힘입어 남해읍 여성협의회 회장직을 역임하며 2003년 12월까지 활동하였다. 2004년 1월 한나라당 시절부터 2
설천면 노량리에서 28년간 경북활어센터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점선 회장은, 필자가 찾아간 날에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바빴지만 귀한 시간을 기꺼이 내 주었다. 그녀는 한 곳에서 60년 동안 경북횟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옆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에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겁 없이 이 업종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옆에서 경북횟집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그녀의 백
단비가 내리던 지난달 28일 고현면 탑동마을을 찾았다. 삼성전자에서 30년 동안 근무하고 퇴직한 후 귀향한 김경곤 향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산을 쓰고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김 향우를 따라 탑동 장터를 지나는데 인구 감소로 빈집이 눈에 많이 띄었다. 김 향우는 고현면 관음포 간척지에 ‘한‧중‧일화해공원’ 조성
문)남해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는데 타지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지-선소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7년 동안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과 군대생활을 해야 했기에 남해를 떠나 있었다. 연도를 계산하면 87년부터 94년까지로 기억된다.문)남해로 귀향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처음에는 아내와 인디안모드 옷가게를 운영하다 건설회사도 경영
문)의정 활동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는지 -2008년 박희태 의장에서 여상규 의원으로 바뀌는 한나라당 재정비시기에 활동제안이 있어 한나라당 남해군 차세대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으며, 경남도당 차세대위원장을 3년 정도 역임했다. 그리고 남해군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위한 서명운동을 열심히 받아서 남해군의회에 제출, 무상급식이 시작되는데 일조를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내내 우리 군민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남흥여객자동차(주)에서 49년째 몸담고 있는 하재경 대표이사를 만났다. 반세기 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무탈하게 직장 생활을 해낸다는 것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기에 어떤 비결이라도 있는지 알고 싶었고, 다가오는 명절전후에 귀성객 수송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요즘 직장인에게 당
새남해농협본점으로 향하는 길에 남해로컬푸드직매장이라는 입간판이 전봇대만한 높이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곤했는데 오늘은 이것을 세운 류성식 조합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잠깐 발걸음을 멈춰야했다. 로컬푸드직매장 바로 옆에는 새남해농협식품가공공장이 반듯하고 정갈하게 세워져 있다. 남해를 대표하는 특산물이 이곳에서 가공되어 로컬푸드직매장을
본지가 강상태(58) 전 군의원(2002~2006 재임)을 설날특집 인터뷰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는 지난번 선거 때 돈 안 쓰는 선거운동을 온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남면 출신으로 이동, 상주, 남면을 선거구에 출마한 강 전 의원이 지난번 선거 후 선관위로부터 보전 받은 선거비용은 기탁금을 빼면 전부 200만원이다.강 전 의원은 지난번 선거 때 선거사무실
설천면 문의리에 살고 있는 김복동 씨 부부는 세상에 이런 며느리는 둘도 없을 것이라고 우리 신문사로 연락을 해 왔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시부모를 우선적으로 잘 챙기고 공경하며 시집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입 댈 것이 하나도 없는 며느리가 이번에 ‘한광호 농업연구인상’을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축하를 해
남해신협이사장 송 홍 주“백짓장도 마주 들면 가볍다 하네/ 앞에서 끌고 가면 뒤에서 밀어/ 험한 산도 평지처럼 넘어 가누나/ 흐뭇한 세상살이 명랑한 세상/ 신용조합 우산 아래 구수한 사랑/ 서로 믿고 서로 도와 친형제 같이” 이 내용은 신용협동조합의 정신을 담은 노랫말이면서도 남해신협 송홍주 이사장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짧은
고현면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난무하고 핵가족화가 빠르게진행되는 상황에서 형제자매들이 똘똘 뭉쳐 한곳에 둥지를 튼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기에 그 사연이 무척 궁금해지면서도 아주 귀하게 다가왔다. ‘얼마나 행복한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을까’를 그리며 도착을 하니 풀숲에 앉아 있던 꿩 한 마리가 &lsqu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어야 할 때지만 마지막까지 정열을 불태우며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남겨 놓고 떠나야만 한다는 삶의 이정표를 지닌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남해의 대표적인 노익장 박창종 남해서복회장을 만났다. 올해로 87세를 맞는 남해군 사회단체
우리 남해에 연극이라는 예술장르의 나무를 심고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김흥우(78) 촌장이다. 김 촌장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지냈다는 이력 하나만으로도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큰 바위 얼굴이다. 김 촌장이 우리 남해를 삶의 마지막 정착지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우리 남해는 우리나라 100년 연극사(史)의
남해에 양떼목장이라는 새로운 관광테마와 양몰이체험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접목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남해양모리학교의 목장지기 마태용 씨와 가족들. 마 씨는 어릴 때부터 몸을 앓아 인공항문을 달고 사는 중복장애인이다. 양떼목장을 가꾸고 목양견을 훈련시켜 양몰이를 하는 지금의 일이 그에게는 가장 적합한 일이다. 양몰이란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지난 19일 오후 경남도립남해대학(이하 남해대학)에서 홍덕수 총장과 남해대학후원회(이하 후원회) 간의 간담회가 열렸다. 홍덕수 총장 취임 이후 대학후원회와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남해대학의 진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그런 만큼 대학후원회는 엄창현 전임 총장의 퇴임과 홍덕수 신임 총장 취임이후의 기간 동안 침체기를 보냈다. 이날 간담회는 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