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어야 할 때지만 마지막까지 정열을 불태우며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남겨 놓고 떠나야만 한다는 삶의 이정표를 지닌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남해의 대표적인 노익장 박창종 남해서복회장을 만났다. 
올해로 87세를 맞는 남해군 사회단체 회장 중 최고령인 박창종 회장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당당함으로 13년째 회장을 맞아 자신이 살아온 남해서복회장으로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국제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섬, 남해의 마지막 단추를 꿰고자 하는 박창종 회장에게서 남해의 미래비전을 들어보았다.

▶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반갑습니다. 어떻게 남해서복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어린 나이에 남해에서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정치를 꿈꾸다 실패하고 부산에서 생활하다 고향 남해로 돌아와 친구들과 소일하던 중 서복과 서불과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 귀가 솔깃하더라고.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이동선 전 남해문화원장이자 남해향교 전교를 만나고 신주찬, 이경렬, 류귀주 친구와 함께 남해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었어 2006년 4월 17일 남해서복회를 창립하고 떠밀려 회장을 맡은 것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였지. 그때 김종추, 고대호, 하재경, 강창욱, 박천옥, 장대우, 이홍, 김송이, 김영조, 서성태, 이실균, 김경수, 서정추, 강달호 외 많은 분들이 고생을 참 많이 해서 지금의 남해서복회가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

▶ 13년 동안 많은 일들을 해온 것 같은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 처음에는 남해군의 지원을 받지 못해 우리 자비로 서복의 고향인 중국 연운항의 낭야대, 서복촌을 돌아보기도 했지. 그리고 제주도를 비롯한 서복문화가 있는 곳에 견학을 가기도 하고 경남의 거제시, 통영시, 함양군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경남서복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그게 제대로 안되더라고. 하지만 우리 남해서복회는 세계에서 유일한 서복의 유적이 있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중국, 일본 등에서 개최하는 수많은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남해와 서복문화를 알리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장운방 중국서복회장, 서복회 부회장 등을 의동생으로 도원결의는 아니더라도 함께 서복정신을 세계화 하기로 결의 하였지. 재작년에는 남해국제학술대회에서 10월 9일을 서복의 날로 정하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잖아.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이 주창한 신해양실크로드의 최중심에 서복이 자리매김했듯이 이른 시기에 서복의 문화와 정신이 세계화에 성공한다면 남해도 그 후광을 받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에 내가 남해서복회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야.

▶ 그럼 앞으로 서복의 정신이 새로운 문화, 미래의 문화로 정립될 수 있다고 보는지?
▷ 그건 분명한데. 남해군 집행부의 의지를 알 수 없으니 문제야. 기자도 잘 알다시피 두모계곡 일대에 서복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땅을 몇 만 평 남해군에서 구입했는데, 국가에서 남의 나라 사람이라고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야생화단지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변경하여 사업을 하게 된 거지. 십수 년을 고생한 우리는 낙동강 오리안 신세가 되고 말았어. 일본을 축소지향적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서복을 자신들의 신으로 모시고 숭배한다는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볼 일이야. 그렇다고 무조건 일본을 따라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국수주의적인 생각을 탈피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해. 서불과차라는 돌에 새긴 암각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도 나는 못 마땅해. 우리 남해서복회는 진시황의 폭정에 항거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했던 서복의 생각을, 그 개척정신을 남해인에게 심어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네.

▶ 서복의 정신과 그가 만들어낸 문화를 본받자는 이야기는 공감합니다. 회장님 올해는, 아니 앞으로 남해서복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올해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내가 아니 내가 죽은 후에라도 후학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 그동안 남해서복회는 부족하지만 남해군의 보조금을 받아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했어. 그런데 그게 다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야. 후발주자인 함양서복회는 창립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올해 수억 원으로 서복공원을 조성하고 있어. 제주도는 20년 전부터 활성화되고 있으니 그게 부러움으로 끝날 일인가? 남해가 중심이 되어야지. 작년에는 학술 위주가 아닌 스토리텔링대회 등 대중화에 힘을 실었기 때문에 올해는 학술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여볼 생각으로 회원들을 독려하고 함께 노력해 볼 생각이야. 내 생전에 서복공원에서 우리 회원들과 함께 서복의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소망밖에 없어. 그리고 남해서복회에 청년들이 더 많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해군 집행부와 경상남도,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이 공부를 좀 더 해서 서복이 지닌 의미를 알았으면 해. 단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만을 고집한다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은 심정이야.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그동안 제주도, 남해군, 거제도가 중심이 되어 서복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최근 함양군, 통영시, 완도군, 부안군, 구례군, 부산시 등에서도 서복회 창립을 준비 중이라니 곧 전국적인 서복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설레고 있다네.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에서 평원광택을 얻어 야요이문명을 완성시킨 서복신화, 처음 도착한 일본 규슈 사가현이 자랑하는 현인 서복의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날 남해군도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생의 마지막을 바쳐볼 요량이네.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를 해준 남해신문에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

박창종 남해서복회장은 87세의 연세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남해를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늘 나이 들면 뒤로 물러나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마지막까지 이타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도 거울처럼 비추어지고 있었다.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남해서복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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