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면 문의리에 살고 있는 김복동 씨 부부는 세상에 이런 며느리는 둘도 없을 것이라고 우리 신문사로 연락을 해 왔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시부모를 우선적으로 잘 챙기고 공경하며 시집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입 댈 것이 하나도 없는 며느리가 이번에 ‘한광호 농업연구인상’을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축하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내외가 말하지 않아 몰랐는데 최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며느리인 김외연 박사는 현재 경상대 농화학식품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둘째 아들인 김민갑 박사는 경상대 약학대학 부학장, 약학과 학과장으로 활동 중이다.                                <편집자 주>

경상대 생화학과 1기(88학번)로 만나 현재 박사부부로 살고 있다.

김외연 씨는 진주에서 태어나 살다가 21년 전에 이곳 설천으로 시집을 왔다. 김복동 씨와 하정자 씨의 둘째 아들인 김민갑 씨와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사랑이 싹트게 되었다. 그는 속이 꽉 찬 석류 같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는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똑똑한 그가 좋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2남3녀 중 네째인 그와 2남 4녀 중 장녀인 그녀는 결혼 후에도 학업을 계속 이어가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며느리인 김외연 씨는 시집을 와서 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결혼 1년 후 첫째를 낳고 백일 될 무렵 갓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학업에 전념한 결과였다. 물론 시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자신만의 길을 열심히 걸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들인 김민갑 씨도 미국에서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영광스런 박사학위를 땄기에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박사부부가 되었다.

시댁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최고봉에 올라 선 며느리 

며느리는 아이 키우고 대학원 학비 벌어 공부하면서도 시집 일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생각이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며느리에게 시부모는 언제나 감동을 받았다. 냄비 하나를 쓰다가도 마음에 들면 시집을 떠올리며 하나를 더 샀고 신발도 눈에 드는 게 보이면 시어머니 생각을 하며 또 샀다. 시부모 생신도 빠트리지 않고 매년 챙겼으며 선물도 꼭꼭 잊지 않고 전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기 마련인데 며느리는 부모를 먼저 생각하고 본인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어낸 채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며느리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을 좀 가졌는데 겪으면 겪을수록 진국임을 알고 서로의 마음이 고속도로처럼 뻥 뚫렸다고 한다. 시댁에 올 때는 자신의 생활복을 가져오지 않고 시아버지 바지를 척 걸치거나 시어머니 몸뻬를 쏘옥 입고 유자밭을 오르면서 집안일을 보살피며 더욱 만족스럽게 했다. 어린이날에는 항상 시댁에 와서 마늘쫑 뽑는 일을 도우며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하기 싫을 만도 한데 며느리의 똑 부러지는 가정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곧잘 따라주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그믐 제사를 지내면 힘들까봐 지내지 말자고 했는데도 그녀는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바닷가 제사를 지내며 살아왔기에 조상들이 지냈던 대로 그대로 하자고 해서 지금도 그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본인이 힘들까 봐 의견을 물었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오니 더욱 속이 꽉 찬 며느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는 남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면 “박사라고 폼만 잡고 일은 안 한다고 할까 봐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생활 8년을 정리하고 자녀들을 위한 귀국 행을 결심
아들내외가 8년 동안 미국에서 지낼 때 보고 싶은 마음에 환갑이 될 무렵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시어머니는 미국 생활이 많이 어려워 근검절약하는 며느리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했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속옷도 대충 사 입고 지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속옷을 벗어주었다는 일화는 고부간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했는지를 알게 했다. 언제나 투명유리처럼 거짓 없이 속을 다 보여주는 며느리가 이제는 아들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정말 닮은 점도 많아 보였다. 뚝심이 있는 것,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점, 흑과 백을 뚜렷이 구분 짓는 것까지 모두 서로 비슷했다. 아들 내외는 계속 미국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며느리의 강한 결단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자식들에게 우리 한국문화와 조상의 뿌리를 알게 해 주고 싶었고, 가까이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보면서 성장을 하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성공시키는 복 있는 상, 제4회 한광호 농업연구인상 수상

며느리 자랑을 하는 시어머니의 표정은 활짝 웃는 한 송이의 해바라기였다. 멀리 출장을 갔다가도 제사를 지내러 오는 며느리의 지극정성이 고마워 감동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결같았던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천사가 따로 없다, 남편을 성공시키는 복 있는 상”이라며 또 금방 웃었다. “자신의 아들은 인천공항에서 첫 애를 두고 떠나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며느리는 입을 꼭 다물고 눈물을 참더라. 그때 우리 며느리가 마음이 약해져 뒤돌아섰더라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는 회상을 했다. 집에 필요한 걸 곧장 채워주는 며느리가 요즘은 집을 뜯어내고 새로 수리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리는 중이다. 집안일에 소홀함이 없던 며느리가 이번에 또 가족을 놀라게 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23일 제4회 한광호 농업연구인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한광호농업상은 고 화정 한광호 박사의 농업보국 뜻을 계승해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한 농업인과 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한광호 농업연구인상은 당해 연도를 기준으로 과거 3년간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 게재 등 우수한 연구 업적을 달성했거나 중장기적으로 국내외적인 학술활동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는 개인 또는 공동저자에게 주어진다. 유인촌 심사위원장(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김 교수는 기후변화와 환경 스트레스를 극복해낼 수 있는 내성이 강한 신품종 개발에 앞장서 왔다 그러한 연구 결과로 논문 80여 편을 세계 상위권 저널에 발표했다. 우리나라 생명공학 분야의 위상을 제고하고 세계에 알린 공을 인정해 농업연구인상을 드리게 됐다”고 전했다. 
김 교수 부부에 대해 다시 부연을 하면 경상대 생화학과 1기(88학번)이고 입학동기로 연구에 대한 희망과 고난을 함께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커플이 됐고 96년 하나가 돼 현재 과학의 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