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운 사람들’에서 생성되는 아름다운 기운 곳곳에 스미길
‘늘 새로운 사람들’에서 생성되는 아름다운 기운 곳곳에 스미길
  • 박서정 기자
  • 승인 2018.03.23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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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번심근(茂繁深根)의 나무 한 그루를 남해에서 키우고 싶어

‘늘 새로운 사람들’ 카페 운영

가물었던 하늘에서 시원스럽게 비가 내리던 날 ‘늘 새로운 사람들’의 연구실장인 박철 씨를 만나러 양지마을로 갔다. 집까지 운전하여 가겠다고 했더니 직접 마을회관까지 마중을 나오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친절하게 필자를 마중 나온 것도 고마웠는데 편안한 미소와 어투에서 고차원적인 향기가 굵은 빗줄기를 밀어내며 순수한 목련처럼 다가왔다.  
화가, 수필가, 자연감성철학가의 집 마당에는 반쪽난 대나무들이 길게 놓여 있었고 담 안쪽에는 몇 개의 대나무들이 장식되고 있었다. 머잖아 담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고 하니 완성될 때 다시 와보고 싶어졌다. 한 마디 씩 자른 대나무 통에는 올망졸망 야생화들이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가족들이 거실에 앉아 귀여운 야생화들에게 눈길을 보내며 공통된 이야깃거리가 죽순처럼 솟아오를 걸 생각하니 매일매일 새로움이 피어오르는 집에 性心을 연구하는 ‘늘 새로운 사람들’이 추구하는 정신과 조화를 이뤄갈 듯했다. 
그는 아름다운 마음을 위한 동행 성심(性心)연구회, 늘 새로운 사람들(삶이 행복한 편지 발
신처)연구실장이다. 성품‧마음‧해법연구(연구원 다수 모집)수련‧명상요법, 치유상담 및 강좌 독서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늘 새로운 사람들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마음의 소통과 관계되는 일에 친밀한 그가 조금 전에 여기까지 내려와 보여 준 그런 성의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일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 움직임에 주안점을 두고 살아가던 그에게 자극을 준 것 중의 하나가 ‘고도원의 아침편지’였다. 그때는 컴퓨터매체가 나오기 전이어서 일일이 손 편지를 써서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감동했다는 내용을 접하고 소중한 편지의 역할에 대해 좋은 여운을 가졌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마침내 마음이 동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결국 명상센터를 건립하게 하는 역사까지 남겼다. 

그는 여기 오기 전 정신 심신 치유 영성 문학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연구를 했으며, 자신의 신념과 뜻을 같이할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추진할 생각을 해 오고 있었다. 이제는 본성에 맞는 일로 살아가기 위해서 ‘늘 새로운 사람들’을 고향에서 시작한다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어느 날부터 하게 되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만나면서 영적, 깨달음, 지적 성장을 돋워주기 위한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삶이 행복해지는 편지를, 잠깐의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에게 80회 정도를 보냈다. 주소 확보가 막연했지만 그동안 받아놓은 명함을 정리해서 3년 전부터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면서 많은 내적성장을 했다. 
편지에는 성현의 말씀, 진리적인 소견을 글 속에 녹여 삶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보냈다. 같은 내용을 동시다발적으로 통용적인 내용을 발췌해서 보냈는데 그 내용을 받은 사람 중에는 궁극적인 이해관계가 아닌데도 힘이 되는 답신을 주기도 했다. 어느 독자는 뜻밖에 강의 요청을 하여 사천지역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한통의 편지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함과 성숙함이 생활전반에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보내곤 했다. 편지보내기는 선각자들로부터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본성자리에 이 부분을 펼치는 것만큼 좋은 장르가 없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는 2016년 11월에 자신이 태어났던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들은 이런 돌아옴을 귀향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그는 “본성을 찾았다. 본자리로 왔다”는 말로 대신했다. “50년 정도를 부산과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회갑이 되었다. 그때서야 왠지 본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본래 있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북적대고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타향살이에서 어느 날 본성자리로 들어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마음 본자리로 돌아온 그는 그동안 마음먹었던 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추진하려고 많은 양서를 읽으며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지인인 정의연 씨와 남해 몇 개의 면에서 사료조사를 했다. 각 마을마다 이장을 찾아뵙고 마을의 정서를 체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사람들이 농어업을 생활방편으로 하는 것은 좋은데 뭔가 가슴이 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여행가는 자신을 키운 건 8할의 바람이었음을 고백했는데 생계를 위해 본업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그 단어의 숨은 뜻을 알아챌 시간조차 없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다른 여유를 부려 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채울 것인가, 육체노동을 하고 난 후 심신의 안정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이럴 때 명상프로그램으로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는 일에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만월처럼 떠올랐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는 장소 명상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밭에서 시금치를 캐면서 힘든 노동이라는 생각보다 이 자체가 수련이고 명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순해지고 감성이 파릇파릇한 식물처럼 풍성해진다. 감성을 살리면 농작물 재배와 수확을 할 때도 자연스러운 교감이 이루어져 즐거운 마음이 식물에게 그대로 전달돼 결과적으로 건강한 식물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영국 런던 인근 농장(공동작업)에서 작업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 둘러앉아 기도를 한다. “배추님에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식물에게조차 그런 소중한 마음으로 예를 다하니 그 식물에게 좋은 에너지작용이 30배로 달라졌다는 사례가 있다.

어느 식물학자가 선인장 가시에 자꾸 찔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가시 없는 선인장으로 자랄 수는 없을까”를 계속 염원했다. 그런 느낌을 서로 공유하니까 어느 날부터 가시가 없는 선인장이 생기게 되었다. 한번은 식물학자가 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에서 가스버너에 물을 펄펄 끓였다. 다른 곳에는 끓는 물에 살아 있는 새우를 넣었다. 그것을 본 나무의 한쪽 심장이 고속으로 뛰기 시작했고 조용히 숨을 쉬던 나무의 수액이 갑자기 요동을 쳤다. 이처럼 살아 있는 생물체는 서로 소통하고 느낌을 공유하며 반응을 한다.
유아부터 노인까지 감성교육은 정말 필요하다. 부족함, 결핍감, 쓸쓸함, 고독감, 악함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들의 심성에는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부정의 틈만 깊어지게 된다. 빨리 본성을 찾고 본래의 마음을 찾는 것이 우리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명상 수련은 아이도 살리고 부모도 살리는 지름길이고 제대로 된 숨구멍이다. 요즘 개발 위주, 소득 위주로 나가다 보니 인간감성이 많이 도외시된다. 순수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 예술하는 사람들이 영적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 자연감성가 박철 그가 아름다운 마음 갖는 일을 남해군민과 함께 할 때 그의 서재에 걸린 현판인 무번심근(茂繁深根)같은 행복한 나무 한 그루가 탄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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