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해에 연극이라는 예술장르의 나무를 심고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김흥우(78) 촌장이다. 김 촌장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지냈다는 이력 하나만으로도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우리나라 연극계를 대표하는 큰 바위 얼굴이다. 김 촌장이 우리 남해를 삶의 마지막 정착지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우리 남해는 우리나라 100년 연극사(史)의 각종 희귀한 자료들을 가진 곳이 됐고, 그에 따라 ‘공연예술의 메카 보물섬 남해’라는 호칭도 가질 수 있게 됐다. 
김흥우 촌장을 남해로 오게 한 사람은 당시 하영제 군수다. 하 군수는 김흥우 촌장을 남해로 모시기 위해 “해 달라는 건 다 해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촌장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김 촌장은 군내 여러 폐교를 둘러본 뒤 남해의 중심부에 있는 옛 다초초교를 선택했다. 다초초교를 국제탈공연예술촌으로 재탄생시키는 데는 52억8천만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자됐다. 김 촌장은 다초초교가 국제탈공연예술촌으로 리모델링이 거의 마무리되었던 지난 2008년 1월 7일 남해로 왔다. 국제탈공연예술촌이 개관한 건 그해 5월 15일이었다. 그러니까 올해는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김흥우 촌장이 개관 10주년인 해를 맞이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김흥우 촌장은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 촌장은 지난 10일 ‘김흥우 희곡선집 「붓다의 길」’(도서출판 엠-애드)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이 책에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자신의 감회와 의미를 다 녹여 넣지 않았을까하는 직감이 들었다. 
책의 서문을 읽어보면 연극과 극작에 얽힌 자신의 삶, 남해로 온 까닭과 남해에서 산 10년, 그리고 앞으로의 삶까지 그려볼 수 있다.

 
“나는 1957년부터 3년간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60년 동국대학교 연극학과에 들어갔고 닥치는 대로 연극 각 분야를 섭렵했다. 나의 관심은 첫째 연극을 쓰고, 둘째 연극을 만들고, 셋째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 했다. 지난 30여 년간 기획·제작한 작품이 200여 편, 대학에서 후진양성에 매진하길 10여년, 전임교수로 19년 도합 30년을 보냈다. 그동안 희곡선집은 <대머리 여장군>(1980년), <옴마니반메훔>(1992년) 2권을 썼다. 희곡만 쓰려고 남해로 왔는데 외려 공연작을 기획 제작하느라 희곡은 대여섯 편밖에 쓰질 못했다. 이 책에 실은 <천막극장 사람들> <싸움터 산책> <넋의 소리> <하늘의 울림> <조신의 꿈>, <붓다의 길>이 그것이다. 그러나 난 90까지는 작품을 쓸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이 개관한 이후 김 촌장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어린이공연예술제’(5월), ‘남해섬공연예술제’(8월), 송년공연예술제(11월~12월)를 개최해왔다. 작은영화관이 생기기 전에는 각국별, 시기별, 주제별로 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영화제도 개최해왔고, 특색 있는 음악회도 열어왔다. 금석마을에는 ‘극단 신협’의 역사자료관과 별도의 무대장치전시관을 꾸미기도 했다. 또한 남해시대합창단 창단과 합창교향곡 ‘노량해전’의 창작을 지도 지원하기도 했다. 얼마간 그에게 지급된 급여는 거의 대부분 이런 일에 던지기 일쑤였다.  
김 촌장에게 가장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지역민들로 구성된 연극전문극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한 때 ‘극단 남해’가 의욕적인 활동을 펼친 적이 있지만 연극전문극단으로서 생명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 촌장은 탈공연예술촌이 있는 한 언젠가는 지역민들도 구성된 연극전문극단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김 촌장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이 우리나라 공연예술 100년사의 둘도 없는 자료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자료은행으로서 역할을 해내려면 현재 50% 수준인 데이터베이스화를 100%를 향해 계속해나가는 것이며, 박물관급으로 인준 받을 수준(소극장 등록, 도서관, 자료전시관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학예사 확보 등)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남해군의 재정자주도로서는 언제 그런 날이 올까 싶다.
김 촌장은 본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올해는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건 다름 아닌 극작꿈나무들을 길러내는 극작교실을 운영하는 일이다. 그는 이것을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개관 10주년 기념 김흥우 극작워크숍’이라고 이름 붙였다. 앞으로 매월 세 번째 목요일 오후 3시에 누구든지 습작품을 써오면 1박2일 동안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극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과정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김 촌장은 책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고 있다. 예술촌을 책임지고 운영해나갈 수 있는 전문학예사를 확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다. 이제 곧 여든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남해공동체의 힘으로 그의 바람을 뒷받침해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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