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곳 (4)
구름이 머무는 곳 (4)
  • 남해신문
  • 승인 2021.03.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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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예불을 마치자 세상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간밤을 지난 여즉 내리는 진눈깨비가 골짜기와 마당을 덮어 세상은 온통 먹통 속에서도 흰빛을 드리웠다. 승방으로 돌아오니 노인장이 따끈한 죽을 끓여 소반 위에 올려놓았다. 빈한한 절간 살림을 속일 수는 없는지 건건이라고는 김치 한 종지가 전부였다.

“대접이 시원찮아 송구하네예. 한계울이라 내놓을 게 궁합니더. 날이 새면 요 아래 대계마을에 내려가 곡식 좀 주선해 오것십니더.”

어제 화방사 오는 길을 물었던 동네 이름이 대계인 모양이었다.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초가집 몇 채가 마지못해 땅에 붙어 있는 그 마을에 절간 끼니까지 보탤 곡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천경은 바랑에서 은붙이를 꺼내 건넸다.

“여기 얼마나 머물지 모르겠으나 남의 절에 불쑥 찾아와놓고 공양 값까지 모른 척한다면 승려의 도리가 아니겠지요. 이걸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바꿔 오시지요.”

인사치레로라도 거절할 줄 알았더니 노인장은 냉큼 받아 챙겼다. 은붙이를 만지작거리던 노인장이 씩 웃으며 말을 던졌다.

“역시 귀인이네예. 덕분에 이 늙은이도 배에 기름칠 좀 하것십니더.”

한동안 혼자 절을 지켜야 할 것 같아 절의 내력을 알 만한 서책이 없냐 물으니, 던져주고 간 게 지금껏 읽은 사지였다.

공양간으로 건너갔다. 말마따나 상에는 제법 음식이 풍성했다. 기름진 쌀밥이 고봉을 이루며 유기 밥그릇에 소복했고, 시금치를 비롯한 산나물 무침, 미역무침, 호박전, 참기름 냄새가 코를 달구는 묵무침도 올라 있었다.

“시님께서 주신 은붙이가 금이 솔찮게 나가데예. 괴기도 몇 점 올릴 만헌디 차마 그럴 수 없어 놔뒀십니더.”

자기는 속인이라 따로 고기를 먹었다는 말투였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은붙이가 바랑에서 나온 걸 본 노인장이 엉뚱한 마음을 품지 않을까 덜컥 의심이 솟았다. 바랑으로 향하는 천경의 눈길을 어떻게 봤는지 노인장이 기침을 하며 막음을 했다.

“있시몬 묵고 읎시몬 굶는 기 분수를 아는 짓이지예. 수행하며 염불하는 시님이사 못 됐시도 반팽생을 절간에서 살았는디, 물욕(物欲)도 못 베릿시몬 그기 사람이것십니꺼.”

다시 천경은 무안해졌다.

채진루 옆으로 실개울이 흘렀다. 사지에서 채진루는 삼창한 지 이 태 뒤인 인조 16년(1638) 지어졌다고 했다.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단층 건물이지만, 천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아보니 비탈을 따라 굵은 기둥이 박혀 있어 누대(樓臺)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아랫기둥이 끝나는 목에 바로 이어져 개울이 흘렀다.

개울 건너편으로 좁은 평지에 키가 낮고 앙상하게 눈을 얹은 나무가 더러 보였다. 싸리나무 같기도 했지만, 가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려고 껑충 개울을 건너뛰었다. 주변에 같은 품새의 나무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흰 눈을 얹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손마디보다 가는 가지를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는데, 채진루 쪽에서 노인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닥나무라예. 부처님 말씸 인경(印經)할 때 쓰는 종이 원료로는 제일 윗길에 있다 아입니꺼.”

백운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백운은 생전에 그리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한두 달 기식(寄食)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휙 사라지곤 했다. 말 그대로 흰 구름 같았다.

절에서 둘이 차를 마실 때 백운은 이따금 꼬깃꼬깃 접어놓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천애고아였지예. 부모님은 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면서 사셨지만, 편하게 부쳐 먹을 만한 농토도 없었지예. 어머니는 갱번에 물이 빠지몬 갯벌에 나가 해산물이며 해초를 캐와 살림에 보탰네예. 그걸 남해에서는 ‘바래’로 불러예. 아버지는 틈이 나면 바다로 쪽배를 몰고 나가 고기를 잡았십니더.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바래를 나가셨는데,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십니더. 날씨도 잔뜩 흐렸는데, 밤이 들자 폭풍까지 몰아쳤십니더. 동네 아낙 말이 수확이 시원찮다며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작은 섬에 들어갔다 하데예. 아버지가 배를 몰고 섬으로 갔십니더. 거센 폭풍을 견딜 만한 배가 아니었는데……결국 그 날 이후로 두 분 모두 볼 수 없었지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백운은 한동안 멍한 눈으로 아득한 남쪽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려서 부모를 먼저 저승으로 떠나보낸 백운은 남은 평생도 외로웠다. 은사 지안대사(志安大師)에게서 함께 종문(宗門)의 이치를 탁마하던 도반(道伴)이 서한을 쥐어주며 보낸 젊은 학승으로 처음 백운을 만났다. 법력이 비범한 도반이 보낸 승려니 어련할까 싶었는데, 파천황은 아니더라도 백운의 행실은 다소 파격이었다. 예불에 빠지기는 예사였고, 어떤 때는 며칠 절간을 얼씬도 하지 않았다.

‘중놈이 절을 떠나면 망념(妄念)만 쌓인다는데, 이를 어찌 할꼬!’

불문(佛門)의 청규(淸規)를 모를 리 없건만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천방지축이었다. 남의 제자를 타박만 할 수도 없어 모른 척했지만, 도반의 속셈을 알 수가 없어 마음이 조바심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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