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곳 (3)
구름이 머무는 곳 (3)
  • 남해신문
  • 승인 2021.03.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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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머리를 들어 고즈넉이 그를 내려다보는 부처와 눈빛을 마주했다. 부처의 입술 끝에는 의미를 알 길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깟 추위도 이기지 못한 깜냥에 무슨 해탈이냐는 질책이 엿보여 무안해졌다.

문득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의 소불(燒佛) 공안이 떠올랐다.

어느 날 단하가 혹심한 추위를 뒤집어쓴 채 혜림사(慧林寺)에 닿았다. 당장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승방은 온통 냉골이었다. 뭐 불쏘시개로 쓸 게 없나 뒤적이다 불전(佛殿)에서 목불(木佛)을 발견했다.

냉큼 마당으로 지고 내려와 도끼로 뽀개 장작을 만들었다. 몇 백 년 잘 마른 목불은 화력도 좋아 불길이 닿자마자 활활 타올랐다. 꽁꽁 언 손을 뒤집으며 불을 쬐고 있노라니, 매캐한 연기 냄새에 의아해진 주지가 누비옷을 서너 겹 껴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어디서 그런 좋은 장작을 구하셨소이까?”

함께 손바닥을 편 채 불길을 즐기던 주지가 물었다.

불전 안에 실한 나무가 널렸던 걸요.”

해괴한 답변에 주지의 눈알이 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놈 얼어 뒈지지 말라고 불단 위에 목불을 세 덩이나 얹어두었지 않습니까?”

주지는 없던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섰다.

이 무슨 망동(妄動)이시요! 수백 년 동안 사부대중이 경배하는 목불을 불태우다니요!”

주지의 호들갑에도 단하는 주저함이 없었다. 단하는 다 타버려 숯덩이가 된 목불을 주장자로 들쑤시며 대꾸했다.

수백 년 수행했다면 진즉에 득도했을 게고, 이제 재가 되었으니 사리가 나오겠구려.”

주지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버석거렸다.

스님, 제 정신입니까?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다고요?”

단하는 천연덕스럽게 주지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

그래요? 사리도 없는 목불이라면 경배해 뭣합니까? 나머지 목불도 다 태워버립시다.”

대웅전에 안치된 부처는 목불도 아니었지만, 천경에게는 그런 넉살도 깨달음도 없었다. 부처의 비웃음을 당할 만했다.

백운이었다면 이 곤욕을 어떻게 맞받아쳤을꼬?’

머리를 목판 마루에 찧다가 바랑에 넣어둔 백운의 유골이 떠올랐다.

엉금걸음으로 창가로 가 바랑을 뒤졌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나무함이 들려 나왔다.

함을 불단 위에 얹어두고 합장하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을 가라앉히고 깨달음에 이르게 해준다는 다라니 주문이 등불보다 더 멀리 더 서늘하게 대웅전 안을 갈마들었다. 적멸에 든 백운을 천도하고 아직 이승을 뜨지 못하는 미망(迷妄)에 멍든 자신을 위해 외는 송가였다.

시님, 오시는 길이 늦으셨네예. 경전 외는 소리가 참으로 시원합니더.”

독경을 잠시 쉬고 숨을 고르는데, 어느결에 들어왔는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경은 목불을 꺼내 뽀개려다가 들킨 사람처럼 흠칫 놀라 눈을 떴다.

 

늙은 불목하니의 손에 끌려 승방으로 들어온 천경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노인장의 태도가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응당 와야 할 사람이 왜 이리 늦었냐는 투의 노인장의 응대는 사바세계의 내력을 소상하게 아는 저승사자를 대한 느낌이었다.

소승이 올 줄 알고 계셨소이까?”

노인장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디예. 사람이 늙으몬 귀와 눈이사 캄캄해져도 예감만은 밝아지나 보데예. 메칠 전부텀 왠지 귀인이 오실끼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심다.”

사발 찻잔에서 온기를 담은 향기가 스며 나왔다.

명색이 절간인데 변변한 게 없다며 말린 유자로 우려낸 차를 내놓고도 그는 겸연쩍어 했다.

그러고 보니 노인장의 눈은 퀭한 것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어둡기만 했다. 그러나 그 어둠은 검기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글씨를 겹치고 또 겹쳐 써 완전한 묵흑(墨黑)이 된 그런 어둠이었다. 꺼풀을 하나씩 벗겨나가면 부처가 평생 행했던 설법이 다 풀려나올 것 같았다.

어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천경이 먼저 눈길을 돌렸다. 남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으나 노인장께서 기다린 그 귀인이 소승은 아닐 듯합니다.”

노인장은 듣는 둥 마는 둥 바닥을 거친 손으로 쓸면서 말을 흐렸다.

금은보화로 치장을 해야 귀인이겠십니꺼. 한 해 가야 외지 사람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는 삭막한 땅에 오싯씨니, 그기 바로 귀인이지예. 막 불로 넣어 아직 얼음장 같십니다만 잠시만 기시몬 뜨뜻해올 낍니더. 그럼 쉬시다.”

목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던 노인장이 다시 몸을 낮추며 물었다.

공양은 드싯십니꺼?”

오늘 먹은 거라곤 노량 나루에 닿아 보리 국밥을 몇 술 뜬 게 다였다. 허기가 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노인장과 합석이 이어지는 것도 거북스러웠고, 불청객 때문에 부산을 떨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리 시장하지는 않군요. 내일 새벽 예불까지는 견딜 만합니다.”

노인장도 더는 대꾸를 않고 나가더니 문을 닫아걸었다.

아닌 게 아니라 승복을 벗어 개켜놓으니 방바닥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천경은 세상모를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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