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너는 좌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불타를 흉내내고 있느냐? 좌선이면 선은 좌와(坐臥)에 얽매이지 않으며, 앉아 있는 불타는 선정의 자세에 얽매이지 않는다. 진리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일부러 취사(取捨)해서는 안 된다. 너는 앉아 있는 불타를 배워서 불타를 죽이고 있다. 좌선에 사로잡히는 것은 선에 도달하는 길이 아니다.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

사찰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진눈깨비가 들끓었다. 게다가 바람까지 만만찮게 부니 눈 부스러기가 매몰차게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무리 남녘땅이라지만 여기도 조선의 한 모서리였다. 하긴 사찰 아래 골마을 사람들도 이런 눈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젓긴 했다. 설이 가까워 곧 봄이 오려는데, 산골짜기는 세상의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풍절(風節)을 지키는 참이었다. 다 헤진 짚신 사이로 녹은 눈발들이 서늘한 기운을 뻗치면서 발을 냉기로 채웠다.

천경(天鏡, 天鏡海源, 1691-1770)은 어깨에 묻은 진눈깨비를 털며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희끗희끗한 눈발 사이로 멀리 강진만이 어른거렸다. 강진만에는 푸른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얀 안개로 흥건하게 젖은 들판처럼 둥그스름 펼쳐진 바다는 휑뎅그렁했다. 어린 시절 백운(白雲)이 보았다는 그 따뜻하고 푸른 바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얼지도 녹지도 않은 눈송이가 얼굴을 매섭게 스쳐 시선을 제대로 두기가 어려웠다. 목을 타고 스며드는 찬 물기는 눈물[雪淚]인지 눈물[眼淚]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잠시 바다의 본색을 찾으려던 천경은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발길을 가다듬었다. 산길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발걸음은 허방을 디딘 사람처럼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언뜻 바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바람이 바랑을 치고 지나간 것인지, 누군가 비좁은 틈이 버거워 꿈틀거렸던 것인지 조금 전부터 바랑은 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천경은 지팡이 삼아 짚고 있던 부러진 산목(山木)을 들어 바랑을 툭 쳤다.
“잠시만 참아라. 거의 다 온 모양이구나.”

아직 창창한 나이에 할(喝)과 방(棒)을 마음껏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고 적멸에 든 승려는, 이 넓은 세상도 갑갑해했었다. 그러니 바랑 속 나무함이 오죽이나 답답할까? 열 칸 대웅전에 들어서서도 숨이 막힌다면서, 시방세계를 손바닥 안에 두고 휘갑하는 부처가 무슨 죄업(罪業)가 많아 이런 나무 감옥에 갇혀 사는지 모르겠다고 박장대소하던 그였다.

“소승이 어렸을 땐 2천 척도 넘던 망운산(望雲山)을 다람쥐 제 집 드나들 듯 올라 다녔지예. 산봉우리에 오르면 남쪽으로 아득히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심니더. 아, 이렇게도 세상이란 넓기만 하구나, 하는 걸 그때 깨달았지예. 시님도 고향이 함흥이라니 바다라면 신물 나게 보셨겠지만서두, 남녘 바다와 북녘의 그것은 완연히 다르지 않심니꺼. 동해의 바다 빛이 검푸르다면 남해에 바다는 말 그대로 쪽빛이지예. 게서는 구름마저도 푸르다니까요. 비도 푸르게 내릴 듯하더이다. 해서 법명(法名)도 청운(靑雲)이라 할까 했는데, 스승께서 속세의 냄새가 역겹다시면서 백운이라 고쳐주시지 않았심니꺼. 소승이 장돌뱅이처럼 굴러다닐 줄 스승께서는 애시당초 아셨던 게지요. 껄껄껄!”

바람 소리에는 그 백운의 폭소하던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세차면서도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얽힌 백운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늘 그 출처가 궁금했었다. 다시 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지금, 이곳의 바람 속에서 흔적을 찾게 되었다. 갑자기 천경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성글게 녹아 흐르는 눈을 털어내며 천경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산길 한 굽이를 돌자 진눈깨비 사이로 절의 외양이 가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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