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곳
구름이 머무는 곳
  • 남해신문
  • 승인 2021.03.05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종욱 단편소설 연재 (2)
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남녘 땅 남해에 있는 화방사(花芳寺)는 비바람에 씻겨 남루한 천년 고찰이었다. 영남의 끝자락하고도 가장 서쪽, 호남의 동쪽 기슭과 코를 맞대고 있는 아득한 오지, 남해라는 섬에 둥지를 튼 가람이었다.

산사라면 으레 삼면이나 사면이 봉우리로 둘러싸인 우묵한 사발 모양의 땅에 터를 잡기 마련인데, 화방사는 비탈을 굴러 내리다 그루터기에 걸려 잠시 몸을 쉬는 돌무더기거나 가풀막을 따라 흐르다 고이고, 흐르다 고인 연못처럼 층층을 이루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누구보다 헌사로웠던 소성거사(小性居士)의 족적이 이 절해의 고도까지도 닿았던 모양인지, 첫 창건주는 어김없이 원효였다. 사지(寺志)에는 원효가 세운 절의 위치는 원래 이곳은 아니었고, 이름도 연죽사(煙竹寺)라 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다 고려 때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터를 조금 옮겨 중창했는데, 이름에 무슨 죄가 있다고 사찰명도 영장사(靈藏寺)라 바꿔버렸다. 몽골의 말발굽이 이 땅을 갉아먹을 때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환란을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다시 판각했는데, 그때 화방사는 판각을 진두지휘했더란다. 그래서 그런지 절터가 가파른 것이 화방사는 어귀에 돌만 쌓으면 산성 같은 요새로도 보일 법했다.

불력(佛力)으로 나라를 지키려던 울력은 화방사의 버리기 힘든 집안 내력이었다. 온 나라가 피바다를 이루던 임진년의 왜란 때 이곳은 의승병(義僧兵)의 본거지였다. 왜병들이 호남을 차지하고자 바삐 들락거렸던 바다 길목의 한가운데 남해가 있었으니 저들의 목을 죌 만한 이곳은 차단의 길목이 될 법도 했다. 그 때문에 왜병들은 이 절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한동안 산짐승들의 움집으로 버려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바래져가던 절이 다시 햇빛을 본 것은 계원(戒元)과 영철(靈哲) 두 스님의 발심 때문이었다. 인조 14년(1636) 다시 사찰이 지금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름도 화방사로 바뀌었다.
승방에 앉아 사지를 들척이던 천경은 긴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좀이 슬고 물에 찢겨진 서책은 노어제호(魯魚帝虎)의 착란에서 자유롭지 못해 글이 중간 중간 끊겼지만, 천 년 세월의 풍파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마음이 죄여들고 몸이 주저앉을 듯해 승방의 문을 열었다. 이파리를 다 떠나보내고 바람을 대신 두른 고목들 사이로 아련히 바다가 진주 빛으로 흐느적거렸다. 구름 낀 하늘 양편으로 벼랑처럼 누운 능선이 시야를 좁혀 놓았다. 하룻밤 사이에 진눈깨비는 굵은 눈송이로 자반뒤집기를 했다. 사박사박 내리는 눈송이에는 희미한 소리가 스며 있었다. 먹이를 찾는 산새들의 얕은 날갯짓 같기도 했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땅을 비비는 소리 같기도 했다.

눈을 살짝 치켜뜨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참에 곁에서 인기척이 상념을 가로막았다.
“시님, 사시공양하시지예. 쪼매 음식이 풍성할끼라예.”
늙수그레한 노인장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제 저녁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달리 목소리에 제법 힘이 붙어 있었다.

어제 노량 나루에 닿은 때는 한낮을 넘긴 때였지만, 처음 가는 길인 데다 진눈깨비마저 산길을 가려 화방사에 도착하니 제법 짙은 어둠이 사위를 적신 뒤였다. 해가 더디 지는 남녘땅이라 해도 아직은 한겨울이었고, 더군다나 고약한 눈발이 그나마 흐릿한 빛의 여운마저 삼켜 버렸다. 그래서 눈뜬장님처럼 눈앞에 절을 두고도  한동안 주변을 허우적거렸다. 삼창(三創)한 지 두 주갑(周甲, 120년)을 넘긴 사찰이고 섬 안 절간이라지만, 절에서는 불빛 한 점 새 나오지 않았다.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간신히 절 경내에 들어서니 그제야 흐린 불빛이 천경을 맞았다. 채진루(採眞樓) 맞은편 대웅전이 속아낸 뿌연 잔광이었다.
옆에 붙은 쪽문을 열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바랑을 밀어두고 먼저 오체투지(五體投地) 큰절을 올렸다. 절의 횟수가 쌓여가자 파르라니 깎은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눈발을 헤치고 골짜기 깊이 숨은 절을 찾느라 지쳤을까? 몸을 에워싸는 열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잠시 절을 멈추고 한참 동안 머리를 조아린 채 허리를 들지 못했다.

촛불 몇 개가 깜빡이는 대웅전은 온기로 헐거웠다. 땀이 마르고 몸이 냉기를 받아들이자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후들거렸다. 젊었을 때는 며칠 밤낮 산봉우리를 몇 개 넘고도 거뜬해 동장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