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유배문학관이 지역작가 초대 기획전을 마련했다.유배문학관은 길현미술관 길현 관장을 초청, ‘물(物)처럼’이라는 주제로 지난 10일부터 오는 29일까지 20일간 기획전을 펼친다. 유배문학관은 지역작가를 발굴해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 활동을 독려하는 기획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2021년 두 번째 지역작가로 선정된 길현 작가는 2010년 폐교된 이동면 성남초등학교를 임대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탄생시킨 주인공이다.길현 작가는 ‘남해바다미술대회’, 지역주민을 위한 ‘모네의 화실’, 지역 학생들을 위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 재능기부를
최근 남해유배문학관이 유배문학관의 정체성 확립과 유배문학 발전을 위한 ‘전국학술대회’의 자료집 ‘남해 유배문화와 유배인의 삶’을 발간했다.애초 이 자료집은 학술대회에 맞춰 발간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학술대회가 잠정 연기됨에 따라 자료집을 먼저 발간하게 됐다. 100쪽 분량의 이 학술 자료집은 5편의 논고로 구성됐으며, 깊이 있는 유배문화에 대한 발전 방안을 담고 있다.장충남 군수는 “코로나19로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고 여러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국내 유일무이한 유배문학관의 정체성을
남해는 섬이라 뭍에서 말하는 강(江)이라 불릴 만한 물줄기는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물이 귀했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지지만, 고일 시간도 없이 흘러가 버린다.논밭보다 산이 많은 남해. 섬에 있는 산치고는 꽤 높은 망운산, 금산, 호구산 등이 봉우리와 능선으로 이어지면서 남해의 풍광에 탈속(脫俗)한 풍치를 더해주지만, 물이 머물 공간은 많지 않다. 물이 그리워 사람들은 마을마다 우물을 파고 보(洑)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식수와 농사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그러나 넓은 강이 없다고 남해에 물 흐름이 아주 없는 것
서면은 남해읍의 서쪽에 자리해 같은 생활권으로 엮인 모양새다. 그렇다 해도 서면 또한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장항마을에는 매구 연희가 펼쳐지고, 서상 스포츠파크도 꾸밈새가 당당하다. 산지가 많아 농토는 좁아도 꿋꿋이 삶의 둥지를 일구며 현재에 이르렀다.서면의 금석문 순례는 남해읍에서 출발해도 무방하다. 수치산 아래 남해 소망의집 언덕길을 넘어서면 대정마을과 서호마을이 길손을 반긴다. 두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는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사람도 적지 않다. 마을사람들이 행적을 기억해 소담한 비석
남해에는 법정리가 79개, 행정리로 221개 마을이 있다고 한다. 행정리가 이장이 있는 곳이니, 우리 군 조직에서 실핏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부락은 훨씬 많다고 하는데,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은 듯하다.우리 삶의 가장 작은 공동체인 이(里)는 조선시대 때부터 쓰였다. 남해를 그린 고지도에 보면 율내리(栗乃里) 대사동(大寺洞)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대사동이 지금의 고현면 대사마을을 가리킨다면, 그 일대가 율내리로 불렸던 모양이다.나는 1962년에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가 태어난 마
고현면은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유서 깊은 고장이면서 오랜 기간 현청이 자리한 고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남해를 들고나는 길손들을 맞고 보낸 역사의 현장답게 고현면에도 찾아볼 만한 금석문들이 우리를 기다린다.읍과 인접한 이어마을에는 고을을 다녀간 현령과 관리들의 불망비와 마을에 큰 도움을 준 여성의 혜시비 등 5기가 모인 비석군이 있다. 1784년 8월에 세워진 를 비롯해 1891년 세워진 등이 있지만, 주목을 끄는 비석은 1912년 8월에 면민들이 세운
운곡사(雲谷祠)는 서면 중현리 1024번지(화방로 550-20), 도산마을에서 회룡마을로 가는 도로 중간 쯤 오른편 샛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나온다. 이 일대는 바다까지 상당히 깊고 긴 골짜기가 이어져 차를 몰고 지나가도 절경을 맛볼 수 있고, 걸어가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감흥을 챙길 수 있다.운곡사는 1853년 운곡정사(雲谷精舍)란 이름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남해가 낳은 유학자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 1488~1547) 선생의 위패를 모신다. 당곡 선생은 1831년 함양에 있는 당주사(溏州祠)에 처음 모셔졌다가 운곡정사
남해군의 새로운 문화예술 소통공간으로 자리 잡은 뮤지엄남해(관장 유은리)가 인근 마을에까지 예술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청년작가 자발적 유배 프로젝트’에 선정된 청년 작가 4인은 뮤지엄 남해에 머물며 창선면 연곡마을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 민소킴, 강청아, 임희인, 김화정 작가는 기존 빛바랜 벽화가 남아 있는 낡은 담장에 연곡마을과 어울리는 ‘고사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지난 21일부터 시작된 벽화 그리기는 8월 첫째 주에 마무리될 계획이다. 이들 4인의 청년 작가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품고 있지만 ‘남해’라는 공통
남해군(군수 장충남)은 지난 23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남해군 숨겨진 자연문화유산 10선 발굴 용역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 용역은 남해군 내 221개 마을에 산재한 문화유산 및 체험 관광지 10선을 발굴하여 유의미한 관광자원을 확보하고자 지난 6개월간 시행되었다. 이날 보고회는 남해군과 남해관광문화재단, 용역사(남해미래신문) 관계자 등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총 10선의 자연문화유산과 체험관광지들을 주제로 콘텐츠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 제시가 이뤄졌다. 숨겨진 자연문화유산 10선으로는 △신비롭고 웅장한 남해 주상절리
너무 오래 외로워하지 말라 하네 / 갈매기 둥지를 틀면 정수리가 따뜻하고 / 물고기 자맥질 할 땐 발바닥이 간지러우니 / 혼자만 있는 날은 없다고 일러주네. / 세상이 온통 축제로 몸부림쳐도 / 밤이면 별 하나 어둠을 밝힌다 하네 / 여윈 몸체는 철갑 대지가 감싸고 / 벌거벗은 몸일랑 구름옷이 두른다 하네나 태어날 때 무엇이 있었나? / 아비와 어미 없이 물위에 던져졌어도 / 물결을 탯줄 삼고 해초를 젖줄 삼았으니 /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지 말자 다독였네 / 둘러봐도 드리운 건 공허와 적막뿐 / 때 없이 귀를 울리는 천둥과 번
미조는 오래 전부터 군항(軍港)으로 국토의 남단을 지키는 첨병으로서 구실을 다해왔다. 전란이 일어날 때면 위란의 현장으로 달려가 신명을 다했고, 수많은 수군과 장령들의 숭고한 땀과 피가 곳곳에 어려 있다.이런 점에서 미조는 호국의 현장이자 국토 수호의 파수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역사의 맥락은 미조면에 남은 금석문의 흔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미조항에 들어서면 고려 말기 왜구를 섬멸했던 최영 장군을 모신 무민사를 참배하게 된다. 무민사 안에는 미조에 근무했던 일곱 분의 선정비, 불망비 등이 모여 있다.그러나 기왕 답사의 여정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이 지난 6일부터 시작해 오는 8월 9일까지 민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사)대안공간마루가 주관하는 것으로 남해여성민화동우회 ‘사부작사부작’에서 출품한 민화 24점이 전시된다.민화를 사랑하고 민화의 매력에 빠진 남해군민으로 구성된 ‘사부작사부작’ 민화동우회는 한국 민화협회 강민지 경남지부장의 지도 아래 민화를 익히고 습득해 왔다남해바래길 작은 미술관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군민 그리고 작가 스스로에게 힐링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통의
‘양이’와 ‘장이’라는 두 청년이자 연인이 준비한 일명 ‘경경경 프로젝트’, ‘경계도 없고, 경계도 없고, 경계도 없이’는 우리에겐 판화라는 단어로 더 익숙한 ‘프린트워크’ 전시다. 남해의 사랑하는 것들을 오리지널 판화 원본으로 표현해놓은 ‘경경경 전시’는 방랑자의 시선으로 본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것으로 무엇보다 보는 재미가 크다.서면 대정에 자리한 ‘돌창고프로젝트 대정’ 1층 전시실에서 지난 15일부터 열린 이 전시는 9월 30일(목)까지 휴관일인 화, 수요일을 빼고는 오전 11시부터 누구나 자유로이 만날 수 있다.이번
누구나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한다. 그곳에 가면 뭔가를 찾을 수 있다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폭풍과 해일, 거센 파도가 두려워질 때면 사람들은 낮은 땅을 떠나 더 높은 곳에서 안전을 찾는다.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수백 미터 높이의 피라미드를 쌓아 영생을 희구했다. 어떤 이들은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도전했다. 동양에서는 주로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수만 명의 피와 땀을 희생해 헛된 망상을 이루려고 발버둥을 쳤다. 뭔가를 얻으려고 남들을 죽음과 암흑으로 몰아세웠지만,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잘못을 저지른 사람
무민사(武愍祠, 미조면 남서대로 14-11)는 나라를 지킨 장군 세 분을 모신 남해의 사우다. 미조항으로 들어가는 길목 왼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왼편으로는 시원하게 트인 바다가 들어오고 오른편에는 망산(해발 287미터)이 당당하며, 가운데로 미조초등학교와 미조면 시내가 나직이 이어진다.무민사는 보통 최영(崔瑩, 1316-1388) 장군만 모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윤문(成允文, ?-?)과 최헐(崔歇, 1564-1598[1599]) 장군도 함께 봉안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 분 모두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친 호국의 영
남해의 5개 주요 예술문화단체들이 모여 지난 2월 23일 창립한 (사)남해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회장 안광훈, 이하 (사)남해예총)이 드디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사)남해예총은 오는 26일(월) 오후 5시에 남해읍 봉전마을회관 2층에서 ‘남해예총회관’ 개관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사)남해예총은 군내 남해미술협회, 남해국악협회, 남해음악협회, 남해문인협회, 남해연예예술인총연합회 5개 단체가 문화예술인들의 권익 향상과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로운 활동을 도모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남해지회를 창립하자
내가 남해를 처음 본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이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남해안을 둘러본 뒤 부산까지 이르는 일정이었다. 그때 남해로 들어올 수 있는 창구는 남해대교가 유일했다.우리들은 상주 해수욕장과 금산의 바위길, 그리고 보리암을 살펴보고 남해를 떠났다.그 무렵 남해대교는 지금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버스로 여행했으니 들고나면서 지나왔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떠오르지 않는다. 여정에 충렬사나 노량 횟집촌이 없었나 보다. 기억의 편의적 선택이 놀랍다.내가 다시 남해를 찾은 것은 30년이 지나서였다. 남해군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