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처럼 푸르른 효행과 봉사의 맑은 바람
소나무처럼 푸르른 효행과 봉사의 맑은 바람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08.13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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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석문 이야기 #4 서면
박정규효행사적비
박정규효행사적비
서면 대정마을 비석군 3기
서면 대정마을 비석군 3기
김부달성서씨절효비
김부달성서씨절효비
이웃 문신수 문학비
이웃 문신수 문학비
가직대사삼송비가 있는 남상마을 소나무
가직대사삼송비가 있는 남상마을 소나무
서면장정봉희불망비
서면장정봉희불망비

서면은 남해읍의 서쪽에 자리해 같은 생활권으로 엮인 모양새다. 그렇다 해도 서면 또한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장항마을에는 매구 연희가 펼쳐지고, 서상 스포츠파크도 꾸밈새가 당당하다. 산지가 많아 농토는 좁아도 꿋꿋이 삶의 둥지를 일구며 현재에 이르렀다.

서면의 금석문 순례는 남해읍에서 출발해도 무방하다. 수치산 아래 남해 소망의집 언덕길을 넘어서면 대정마을과 서호마을이 길손을 반긴다. 두 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는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사람도 적지 않다. 마을사람들이 행적을 기억해 소담한 비석으로 남겼다.

대정마을 어름 조금 높은 작은 둔덕에는 <박정규효행사적비>가 비각과 함께 서 있다. 여름철에는 풀들이 무성해 놓칠 수도 있는데,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살펴봐도 좋다.

박정규(朴廷奎) 옹은 1873년 8월 10일 태어나 1938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자질이 훌륭했고, 배움도 게으르지 않았다. 24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효행을 다하지 못한 애통함 때문에 마을 행사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부친을 일찍 여윈 불효를 탄식하곤 했다.

박정규 옹의 효행은 하늘도 감동시켰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 밭에 물을 대러 나갔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곧 비가 올 테니 돌아가라” 해서 귀가했더니 과연 단비가 쏟아져 가뭄을 씻어냈다. 그의 효행으로 고을이 해갈되었으니, 이처럼 이타(利他)의 효심이 또 있을까 싶다.

동생들도 끝까지 한 집안에 두어 돌봤고, 어머니도 지극정성으로 시봉했다. 어머니가 편찮아지자 58살 나이로도 돌아가실 때까지 궂은 수발을 마다 않고 병구완에 정성을 다했다. 마을 사람들이 효심을 기려 1940년 비석과 비각을 길가 높은 곳에 세워 마을의 자랑을 알렸다.

시혜의 날개가 마을을 덥히다
사적비각에서 서쪽으로 400미터 쯤 내려가면 길가에 3기의 비석이 보인다. 텃밭 모서리에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건너뛰기 쉽다. 비석은 <김군소대장학비>(1939년 세움)와 <면협의원김홍기시혜비>(1939년 세움), <전화릉참봉정원묵시혜비>(1926년 세움)로 불린다.

여성인 김소대(金小大)는 기상이 대장부 같았는데, 동네 아이들의 학자금을 도맡아 감당했다고 한다. 재물보다 사람을 우선한 따뜻한 마음에 감복해 마을사람들이 세웠다. 김홍기(金洪基) 옹 역시 어려운 형편에도 마을 세금을 부담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대정마을 사람들이 세웠다. 정원묵(鄭源默) 옹도 마을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 소작료를 감면하고 도박에 현혹되지 않도록 충언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500미터를 가면 삼밭길 올라가는 길목에 <김부달성서씨절효비>가 나온다. 돌로 만든 작은 비각이 여름이면 잡풀로 우거져 눈에 잘 띠지 않는다. 효부 서씨는 16살 어린 나이에 이 마을 김두찬(金斗贊)과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은 눈이 먼 데다 집안은 가난해 하루하루가 힘겨운 삶이었다.

남편이 병들어 죽었을 때 나이 25살이었는데, 두 자식과 시부모를 키우고 모신 뒤 저승에서 만나겠다며 어머니와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 지켰다. 고초 속에서도 시부모의 장례를 잘 치렀고, 두 아들도 어엿한 일꾼으로 성장시켰다. 1965년 2월 6일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이 비석을 세웠다.

서면의 정신을 빛낸 두 선각자
이제 발길을 재촉해 스포츠파크로 가보자.

그 전에 서면 면사무소 구내에는 <서면장정봉희(鄭琫禧)불망비>가 구석에 있다. 서면의 발전에 애쓴 노력을 기려 1928년 면민들이 세웠다.

스포츠파크 호텔 앞에는 작장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교육에 힘쓰면서 문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이웃 문신수 문학비>가 우람한 자연석으로 우리를 맞는다. 문신수(1928-2002) 선생은 남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해타(咳唾)를 입은 은사이자 “안에서는 오순도순, 밖에서는 서글서글”이란 고운 우리말 격언으로 남해의 정감을 일깨운 어른이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5월 11일 기일이 되면 묘소와 문학비를 찾는다. 문학비는 2003년 세워졌다.

문신수 선생이 지금 시대 배움의 등불이라면 가직대사(可直大師)는 300여 년 전에 남해의 빛으로 현신한 큰스님이다. 영조 23년인 1747년 남상마을에서 태어났다.

스님에게는 많은 기행이 전하지만, 평생 곳곳을 다니면서 소나무를 심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시사철 더우나 추우나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스님은 부처님의 법도 소나무요 중생들의 마음도 소나무처럼 청록(靑綠)을 잃지 않는다고 보았나 보다.

그 많은 소나무 가운데 남상마을과 중리마을, 노구마을에 있는 세 그루가 여전히 세상과 사람들의 홍복을 염원하면서 푸르게 가지를 펼친다. 남상마을 소나무 앞에 1958년 세운 <가직대사삼송비>가 있다.

입추가 지난 요즘 서면의 골짜기와 남해바다가 그렇게 화창할 수 없다. 가을의 향내를 물씬 맡으면서 돌에 새긴 옛 사람들의 맑은 영혼과 만나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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