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현청의 추억을 따라 금석문의 자취를 밟는다
옛 현청의 추억을 따라 금석문의 자취를 밟는다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07.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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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석문 이야기 #3 고현면
정지석탑과 비석들. 안내판에는 정지(鄭池)라 쓰여져 수정이 필요하다
정지석탑과 비석들. 안내판에는 정지(鄭池)라 쓰여져 수정이 필요하다
이어리비석군 전경. 오른쪽에 한 기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없어졌다
이어리비석군 전경. 오른쪽에 한 기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없어졌다

고현면은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유서 깊은 고장이면서 오랜 기간 현청이 자리한 고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남해를 들고나는 길손들을 맞고 보낸 역사의 현장답게 고현면에도 찾아볼 만한 금석문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읍과 인접한 이어마을에는 고을을 다녀간 현령과 관리들의 불망비와 마을에 큰 도움을 준 여성의 혜시비 등 5기가 모인 비석군이 있다. 1784년 8월에 세워진 <통상국이공한창구폐불망비>를 비롯해 1891년 세워진 <행현령박후준성영세불망비> 등이 있지만, 주목을 끄는 비석은 1912년 8월에 면민들이 세운 <숙부인진양정씨혜시비>다.

진양 정씨가 어떤 고마운 일을 했는지 비석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문에 “특별히 집안 재산을 내놓아서 / 선행이 이어지니 감동이 피어났네. / 집집마다 세금을 다 없앴으니 / 높이 이름을 떨침도 당연하네.”란 글귀로 보아 마을 사람들의 소작료를 면제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원래 이 5기의 비석은 도로변에 ‘통일공원’이라 이름해 모아두었는데, 19호 국도가 확장되면서 조금 안쪽으로 옮겨졌다. 별다른 표지판이 없어 찾기가 어려워 아쉽다. 금석문은 콘크리트 기반 위에 올렸는데, 남해의 역사라 할 기념물의 내용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라도 두면 사람들의 관심이 모일 만 했다.

이 점은 정지석탑을 제외한 다른 금석문에도 없어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마애비로 남아 전하는 두 현령의 불망비
농공단지 앞 사거리에서 단지 쪽으로 빠지는 길가에 <현령김후지도몰세불망비>가 서 있다. 이 비석도 도로 확장에 따라 장소가 옮겨졌다.

1702년 8월에 세워진 이 비석은 묵직한 화강암 바위를 깎아 만들어 특이하다. 현령 김지도(金志道)은 1699년 12월부터 1702년 5월까지 남해에서 근무했다. 2년 6개월이라면 장수한 현령이니 기릴 만한 업적도 남겼겠다 싶은데, 비석에 다른 기록은 없다.

농공단지를 내려가 논밭을 따라 난 좁은 도로를 서행하면 설천면으로 가는 지방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고현면 쪽으로 조금 가면 ‘한려농산 농산물 저온저장소’가 있다. 오른편을 자세히 보면 고동빛이 감도는 마애비 <현령이후홍매몰세불망비>가 우람하게 서 있다. 자연석 높이만 3미터가 넘는 꽤 큰 거석이다.

현령 이홍매(李弘邁)는 1707년 9월부터 1710년 6월까지 근무했다. 꽤 긴 기간인데, 역시 업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 비석이 발견된 데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한다. 이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바닥을 팔 때 이 마애비가 나왔다는 것이다. 전해준 분의 말에 따르면 근처에 또 한 기가 더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한다. 지금도 근처 땅속 어딘가 마애비가 묻혀 있을 거란 상상을 하니 흥미로웠다.

두 군데 모두 안내판이 없어 사람들은 지나가면서도 뭔지 잘 모른다.

남해의 호국 얼이 깃든 정지석탑
차를 몰든 걸음을 옮기든 고현면 면사무소가 있는 방향으로 20분 쯤 가면(차로 5분) 옛 전통시장이 있는 곳에 이른다. 지금은 철거되고 공원이 조성되었는데, 그 한 쪽에 정지석탑이 자리한다.
정지(鄭地, 1347-1391)는 고려 말기의 장군으로, 남해 바닷가 관음포에서 왜구를 격파한 대첩을 거둔 지휘관이다. 살과 피를 갉아먹던 왜구를 몰살시켰으니 그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어 이 탑에 장군의 이름을 실은 듯하다.

탑은 온전한 한 기의 모습은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진 단편들을 모아 탑으로 세운 듯하다. 무너지고 부서진 돌조각도 허투루 보지 않고 하나하나 모아 의미를 담은 탑으로 빚어 올린 군민들의 정성과 배려는 여전히 본받을 만하다.

대장경 판각 역시 몽골군을 부처의 힘과 신앙심으로 물리치고자 했던 민초들의 땀과 얼이 일궈낸 보물이다. 석탑 역시 외적에 저항했던 불굴의 투혼을 상징한다. 주변에 ‘대장경판각문화센터’(개관일 미정)도 있으니 들려보면 좋을 듯하다.

이 밖에도 여정에는 들지 못하지만, 찾아볼 금석문은 여럿 있다. 도마초등학교에서 한실한의원이 있는 개천 길 오른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3기의 비석이 서 있는 터가 나온다. 왼편에 있는 비가 <안동장상득영세불망비>다. 장상득(張祥得)이란 분이 일가의 족보를 만들 때 많은 기여를 해서 집안에서 세운 비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대곡마을 입구 정자 옆에 <향당장수이공청기선생공적비>도 있다. 고향의 여러 사적들을 담은 『사향록(思鄕錄)』을 남긴 이청기(李淸基) 선생의 삶과 업적을 헤아려 볼 수 있다.

뚝 떨어져 동갈화마을 바닷가 삼베마을 비석동산에도 3기의 비석이 모여 있다. 갈화리 사업 과정과 한해구제사업과 관련한 역사들을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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