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특히 남해군은 현재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에 가까우며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 오래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지역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을 수동적인 복지와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노인을 시민적 주체로 보는 유범상·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론’에 주목했다. 지역 공동체 중심의 고령화 대책이 절실한 남해군에서 ‘선배시민론’의 주요 개념과 함께 ‘선배시민론’을 토대로 지역사회와 후배시민을 돌보는 경기도 성남 중원노인복지관의 선배시민 동아리와 충북 진천군노인복지관의 자조모임 ‘선암회’의 활동사례를 5회에 걸쳐 연재했다. 마지막 순서로 남해군에 ‘선배시민운동’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이를 위한 실천적 과제가 무엇인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성남중원노인복지관의 환경·나눔·참여(ESG) 축제에서 선배시민 동아리 ‘디딤돌’ 회원이 장애물 없는 세상 만들기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성남중원노인복지관의 환경·나눔·참여(ESG) 축제에서 선배시민 동아리 ‘디딤돌’ 회원이 장애물 없는 세상 만들기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남해군의 고령화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3%를 넘는 이곳에서 노인은 더 이상 소수집단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중심 세대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은 ‘돌봄의 대상’으로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주목받는 흐름이 바로 ‘선배시민운동’이다. 

달라진 노인세대, 새로운 시민으로

“지금의 노인들은 이전 산업화 세대와 달리 민주화 세대, 베이비붐 세대로서 사회참여 의식과 역량이 전혀 다릅니다. 단순히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후배시민과 마을을 돌보는 주체적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유해숙 선배시민협회장의 이 말은 오늘날 노인세대의 변화된 위상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노인세대는 과거와 달리 교육 수준과 사회경험이 풍부하며, 은퇴 후에도 기부·자원봉사·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여전한 연령차별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 ‘나이 든 보통사람인 시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다. 

충북 진천군노인복지관의 선배시민 자조조직 선암회의 경우 10년간의 활동 속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정책제안 85건을 제출해 52건이 채택돼 실현되는 등 지역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에는 선암회의 주도로 숙박업소 설립 지침 개정을 통해 지역 내 무인모텔 난립을 막아내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배시민협회 확산, 노인의 주체적 활동 새로운 흐름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서 선배시민협회가 설립되며 노인의 사회적 위상을 새롭게 바꾸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는 선배시민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뜻을 모아 지난 2일 선배시민협회 용인지회를 창립했다. 용인선배시민회는 복지관 소속을 넘어 독립적 지부를 구성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후배시민을 돌보기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충북, 의정부, 인천, 제주, 울산, 대전 등에서 협회 준비위가 구성돼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복지관 소속 동아리에 머물던 어르신들이 독립적인 협회를 통해 지역사회 의제 발굴, 권리 옹호, 문화활동까지 영역을 넓히며 주체적 시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해군 역시 선배시민대학을 도입한다면 변화의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인 남해군에서 선배시민교육을 통해 선배시민 의식이 자리잡는다면, 단순히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제안자, 공동체활동가로 나서는 어르신이 늘어날 수 있다. 노인자원봉사단체, 주민자치회, 노인대학 등과 연계된다면 협회 창립은 물론 지역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실제로 남해군은 선배시민운동을 확산시키기에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대한노인회 소속 노인자원봉사단만 8곳이 활동 중이고, 자원봉사센터와 노인대학, 주민자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적십자봉사회, 새마을운동 남해군지회 등에서 어르신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해숙 회장은 “남해군은 이미 자원봉사와 학습 기반이 잘 마련돼 있어 선배시민교육이 도입되면 전국적 모델로 성장할 잠재력이 크다”며 “군 차원에서 조례와 지원센터 설립 같은 제도적 뒷받침을 더하면 고령화 대응의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릴라 가드닝을 마친 충북 진천군노인복지관 선배시민 자조모임 선암회 회원들과 후배시민들의 활기찬 모습
게릴라 가드닝을 마친 충북 진천군노인복지관 선배시민 자조모임 선암회 회원들과 후배시민들의 활기찬 모습

단계별 과제: 거점·조례·세대연계

유해숙 회장은 남해군에 선배시민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단계는 거점 마련과 동아리 등 학습·실천 모임 조직이다. 주민자치회, 복지관, 도서관, 평생학습관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교육과 동아리 활동, 소통과 실천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때 사회복지사, 실무자 등 선배시민의 철학과 인식을 공유하는 중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2단계는 제도화다. ‘선배시민지원조례’ 제정을 통해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선배시민지원센터를 설립해 플랫폼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유해숙 회장은 “남해군 도시재생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과 함께 선배시민지원센터가 역할을 해나가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경기도, 제주도, 전국적으로 15곳의 지자체와 기초단체에서 선배시민지원조례를 제정했다. 

3단계는 세대 간 연계다. 대학생, 청년 등 후배시민과 함께 교육·프로그램도 하고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면서 필요한 활동을 찾아 나가야 한다.

과제도 적지 않다.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주의의 만연과 세대 간 인식 차이, 행정과 지역사회의 협력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유 회장은 “선배시민운동은 자선형 봉사활동이 아니라, 노인이 시민으로서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사회변화를 이끌어가는 권리형 봉사활동”이라며 “남해군이 그 흐름을 제도화하고, 현장의 사회복지사, 지원센터, 주민조직이 함께 움직일 때 지속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선배시민운동의 지향점

유해숙 회장은 선배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해외 사례를 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스터디 서클’을 통해 노인들이 영화, 취미, 생활 문제를 함께 나누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소통하고 실천으로까지 나아갑니다.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과정이지요.” 이는 노인을 돌봄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하는 문화적 기반을 보여준다. 

미국에는 최대 노인단체인 은퇴자협회(AARP)가 있다. 은퇴자협회는 50세부터 가입 자격을 부여한다. 유 회장은 “미국에서는 50세 생일이 되면 협회에서 축하 메시지와 함께 은퇴자협회 가입 안내 편지를 보냅니다. 이는 노년을 소외가 아니라 또 다른 시민의 출발로 보는 문화적 관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은퇴자협회는 막강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노인의 권익 옹호와 사회참여를 선도한다.

이러한 해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습과 소통의 장 마련이 필요하다. 스터디 서클처럼 지속적인 학습과 토론을 통해 노인의 정체성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제도적 기반 강화다. 조례 제정이나 지원센터 설립을 통해 노인의 참여를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문화적 인식 전환이다. 은퇴자협회가 보여주듯, 노년을 ‘생산성 상실’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출발’로 바라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

유 회장은 “노인을 비존재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민달팽이 같은 가장 약한 존재조차 시민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선배시민운동의 목표”라며 남해군 역시 제도와 문화를 함께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남해군에서 선배시민운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돌봄의 수혜자에서 지역공동체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선배시민’이 많아질수록 남해군의 미래 또한 더 건강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