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특히 남해군은 현재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에 가까우며 이미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 오래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지역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을 수동적인 복지와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노인을 시민적 주체로 보는 유범상·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론’에 주목했다. 지역 공동체 중심의 고령화 대책이 절실한 남해군에서 ‘선배시민론’의 주요 개념과 함께 ‘선배시민론’을 실제로 구현하고 실천하고 있는 전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남해군에 적합한 ‘선배시민’ 실천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충북 진천군노인복지관과 후배시민과 지역사회를 돌보는 선배시민 ‘선암회’의 활동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진천군노인복지관(관장 이종욱)은 2015년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선배시민대학을 계기로, 지역 노인들의 주체적 활동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자조조직 ‘선암회’를 결성했다. 선암회(先巖會)는 ‘선배로서 바위처럼 든든한 존재로 지역사회에 자리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선암회는 단순한 노인 친목단체가 아닌 지역사회의 문제를 발굴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실천형 공동체로 성장하며 ‘선배시민’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있다.
배움에서 출발한 ‘선암회’
선배시민대학은 노인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는 교육과정이다. 매년 15회기 내외로 운영되며, 인권과 시민권, 지역문제 이해, 정책 제안 방법 등을 주제로 한 강의와 토론이 병행된다. 진천군노인복지관의 선배시민대학을 수료한 2015년 9월 1기 졸업생 20여 명이 뜻을 모아 선암회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이런 공부를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요. 그런데 배우고 나니 내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선암회 초대회원 A씨)
학습·소통·실천으로 지역사회 변화 이끈다
기수 구분없이 모두 모여 이뤄지는 선암회의 활동은 크게 세 축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세상 읽기를 위한 학습이다. 회원들은 복지관 사회복지사와 함께 선배시민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며, 학술대회나 세미나에서 얻은 새로운 지식도 공유한다.
둘째는 동료, 후배시민과의 소통이다. 선암회는 월 1회의 정기모임을 기본으로, 자유로운 난상토론을 통해 일상의 문제를 제안한다. “마을 길 가로등이 너무 어두워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횡단보도 위치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모임에서 나왔습니다. 그냥 불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는 분위기라서 늘 보람을 느낍니다.” (정건희 선암회 사무국장)
셋째는 실천이다. 대표적 성과로는 복지관 주변 보행 환경 개선을 들 수 있다. 당시 회원들은 직접 안전지도를 제작하고 사진을 수집해 보행로 설치 필요성을 군에 제안했고, 실제 인도가 조성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10년간 해온 주요 활동을 보면, △지역돌봄분과를 중심으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노인, 환경, 주민복지, 지역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정책제안 85건을 제출해 52건이 채택됐다. △시민돌봄분과는 후배시민과의 소통을 주로 담당하며 ‘대안학교 청소년들과의 꽃길 조성 공동사업’ 진행, 학교밖청소년들과의 예쁜 동네 만들기 활동과 문화체험 교류활동, 식물 통한 독거노인과의 소통 활동, 들국화 카페 운영 등을 해오고 있다. △자연돌봄분과 중심으로는 쓰레기 불법투기 방지를 위한 게릴라 가드닝,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 아나바다 바자회 운영 등을 해왔다. 이외에도 △진천군 신노년을 위한 선배시민 토크 콘서트 △지역사회 영웅(소방관, 경찰관, 군인, 코로나 때는 의료진, 사회복지시설 등) 커피·음료 지원 등 다양하다. 특히 지난 2022년에는 “우리 동네, 우리가 지키자”며 의기투합한 선암회 회원이 모두 나서 숙박업소 설립 지침 개정을 이끌어내고 무인모텔 난립을 막아 지역사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선암회의 성장과 성과
선암회는 매년 선배시민대학 졸업생(약 240~50명)이 배출돼 회원으로 가입하는데, 현재는 꾸준히 40여 명의 회원이 유지되면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60대 후반~70대 초반의 새로운 세대가 합류하면서 긴장감과 함께 활기를 띠고 있다. “이 모임을 하면서 나 자신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나는 나이 들었으니 집에서 쉬어야지’ 했는데, 이제는 동네에서 필요한 일이 뭔지 먼저 살펴보게 돼요. 선배시민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납니다.” (선암회 회원 B씨)
활동이 쌓여가면서 군청과의 공식 협의구조도 형성됐다. 행정기관 역시 선암회의 정책 제안을 단순 민원이 아니라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제안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선암회는 여러 차례 대외에 우수사례로도 소개됐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에서는 선암회 활동을 ‘정책 제안형 선배시민 운동’의 성공 모델로 평가했고, 학술대회와 실천사례 발표회에서 모범사례로 소개됐으며, 타 지역 복지관의 선진지 견학도 수차례 이뤄졌다.
“우리가 제안한 일이 실제로 행정에 받아들여지고, 그 결과가 눈에 보일 때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노인도 충분히 지역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 거지요.”(선암회 회원 C씨)
사회복지사들의 숨은 노력
선암회의 성장은 선배시민들의 학습, 소통, 실천과 함께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초기에는 예산이 없이 매년 공모사업을 찾아다녀야 했고, 선배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수차례 군청을 찾아가야 했다. 김선이 부장은 “처음에 군에 정책 제안을 들고 갈 때, ‘어르신들이 괜히 민원 늘리러 온 게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직접 제안 배경과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또 그는 “어르신들이 처음엔 ‘이런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며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며 “그래서 직원들이 먼저 책을 읽고 토론 연습을 하면서 함께 배워갔다. 그 과정을 통해 어르신들과 신뢰가 쌓였고, 지금의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복지사들은 선배시민이 특정 프로그램에 국한되지 않고, 복지관 운영 전반의 철학으로 자리 잡도록 힘써왔다. 자원봉사 프로그램에도 선배시민 정신을 반영하며, 회원들이 다양한 활동 속에서 ‘지역의 일원이자 선배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는 선암회의 조력자가 아니라 동반자입니다. 어르신들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때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양승찬 사회복지사)
10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올해로 활동 10년째를 맞은 선암회는 지역 노인들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안정적인 재정 확보, 더 많은 노인 참여, 세대간 교류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앞으로도 작은 문제라도 놓치지 않고 제안할 겁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우리가 지켜야지요. 그게 선배시민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이규창 선암회 회장)
결국 진천군 선암회의 10년은 ‘노인’이라는 수동적 이미지를 넘어 ‘선배시민’이라는 주체적 정체성을 정립하고, ‘자선형 실천’에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권리형 실천’으로 활동을 확산해오는 과정이었다 할 수 있다. 앞으로의 10년, 이들의 목소리와 실천은 지역사회에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