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방문한 지난 6월 13일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선배시민과 함께 E(환경)·S(나눔)·G(소통, 참여)!’ 축제가 한창이었다. 21개의 선배시민 동아리들이 바자회, 체험, 전시, 퀴즈, 캠페인 등 다양한 부스를 복지관 안팎에 설치하고 복지관 이용자들과 주민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날 하루 ‘노노상담’과 ‘디딤돌’ 동아리는 인권관련 퀴즈게임과 투표, 캠페인을, ‘중원방송단(JWBC)’ ‘우정’ ‘빛나리연극단’은 보이는라디오 진행을, ‘꽃사슴’과 자원순환 서포터즈는 분리배출 게임, 업사이클링 실천활동과 전시를, ‘그루터기’와 ‘소리통’은 후배시민에게 응원메시지 쓰기 캠페인을, ‘헬렌공방’과 ‘꽃사슴’은 병뚜껑과 양말목을 활용한 ‘뚜목이’ 키링 만들기를, ‘아띠스트’는 커피찌꺼기를 활용한 방향제 만들기를, ‘먹보시선’은 폐자원을 활용한 채소 화분 만들기를, ‘카페 지음’ 팀은 다회용기 지참 시 커피와 음료를 제공하고 ‘중원농부’는 수경식물 화분 만들기를, ‘365성남지킴이’는 성남시 역사 퀴즈 게임을 진행하고 옛모습 사진을 전시했다. 곳곳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관심과 열기가 뜨거운 시민소통의 현장이었다.  

지난 6월 13일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선배시민과 함께 E(환경)·S(나눔)·G(소통, 참여)!’ 축제 현장
지난 6월 13일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선배시민과 함께 E(환경)·S(나눔)·G(소통, 참여)!’ 축제 현장
신명희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장
신명희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장

성남중원노인종합복지관(관장 신명희)의 선배시민 활동은 단순한 노인 자원봉사를 넘어, 지역사회 변화를 이끄는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노인복지관은 회원 2만여 명에 매일 2~3천 명이 이용하며 사례관리, 일상생활 지원, 자립지원, 정서지원, 의료지원, 행사지원 등 사회복지 6대사업을 ‘선배시민’ 방향에 맞춰 해오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활동은 ‘노인도 한 명의 시민’이라는 전제 아래, 노년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과 선언에서 출발했다. 

신명희 관장은 “노인도 내가 노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여전히 나는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우리는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선배시민은 지혜와 경륜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동체와 후배시민을 돌보는, 공동체의 길을 내는 존재이지요”라고 말한다.

선배시민 활동의 출발과 조직화

중원복지관의 선배시민 운동은 ‘시민권’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중심에 둔다. 어르신들은 단순히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닌, 지역사회를 볼보는 주체로 서기 위해 ‘선배시민대학’을 수료(자각, 학습)하고, 자발적으로 구성된 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실천). 건강, 환경, 청소년 멘토링, 먹거리, 역사, 안전 등 주제는 다양하지만, 모든 활동은 사회적 가치 창출과 세대간 연대를 지향한다. 

이러한 활동의 핵심은 ‘시민권’을 단순한 추상 개념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 가능한 권리로 확장시키는 데 있다. 동아리 활동은 매번 복지관 사회복지사들과의 대화와 토론, 주제학습을 바탕으로 기획되고 실행되며, 이를 통해 어르신들은 자신이 속한 마을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주체, 선배시민으로 변화하고 있다.

365성남지킴이의 성남시 역사 퀴즈 알아 맞히기 행사
365성남지킴이의 성남시 역사 퀴즈 알아 맞히기 행사

지역사회를 바꾸는 선배시민 

선배시민 동아리는 건강 동아리 ‘꽃사슴’, 청소년 멘토링 ‘그루터기’,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지구옷장’, 안전과 배리어프리 존을 점검하는 ‘우정’ 동아리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예컨대, ‘꽃사슴’은 건강을 위한 자조모임에서 시작해 미세먼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다. “그러던 중 우연 미세먼지 줄이기 시 공모전에 시를 출품했는데 그게 대상을 받았어요. 회의를 거듭해 상금 100만 원을 지역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MOU를 맺고 환경교육을 듣더니 지금은 거의 환경운동가가 됐어요.” 지역환경단체, 인근 학교들과 함께 토론회도 열고 다양한 환경활동을 벌인다.

‘그루터기’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선도’가 아닌 ‘공동성장’이라는 목표로 전화하며, 청소년 자살, 능력주의 등 사회문제를 함께 학습하고 토론해왔다. “청소년 멘토링 그루터기는 아이들을 만나 청소년 자살률이 왜 높고 청소년들은 왜 힘들어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처음에는 활동의 목표가 선도였고 문제아로만 보다가 청소년과 대화하고 청소년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임을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좋은 시민으로 함께 성장하자로 바뀌었어요. 아이들도 어르신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자 마찬가지로 바뀌어서 마음을 열고 다가왔고요.” 신명희 관장의 말이다.

‘우정’ 동아리는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리빙랩을 통해 휠체어 접근성, 유모차 통행 가능성 등을 점검하고 ‘배리어프리 캠페인’을 벌이고 정책제안을 했다. 

디딤돌의 인권 퀴즈 풀기 행사
디딤돌의 인권 퀴즈 풀기 행사

‘디딤돌’ 동아리의 마을실험

‘디딤돌’은 이 선배시민 동아리 중에서도 일상 속 문제를 공론화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디딤돌의 출발은 단순했다. 복지관이 위치한 성남동 일대는 낮에는 노인들이 이용하는 조용한 공간이지만, 밤이 되면 청년들과 유흥객들이 모이는 번화가로 바뀐다. 다음 날 아침이면 곳곳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이 문제에 주목한 어르신들은 ‘이게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단순히 청소와 정리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곧바로 선배시민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사회권, 도시환경, 공공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고, 활동은 ‘담배꽁초 줄이기 시민운동’으로 확장됐다.

디딤돌은 가천대 도시계획학부와 협업해 ‘리빙랩(Living Lab)’ 방식의 활동으로 발전시켰다. 선배시민과 학생들이 함께 골목을 탐방하고, 담배꽁초가 집중적으로 버려지는 지역을 지도로 만든 뒤, 그 원인을 토론하고 실험적 개선책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도출된 결과물은 지자체 및 주민자치회와 공유했고 일부는 실제 정책 제안과 실행으로 이어졌다. 

중원방송단, 우정, 빛나리연극단이 준비한 보이는 라디오 현장
중원방송단, 우정, 빛나리연극단이 준비한 보이는 라디오 현장

사회복지사의 역할과 내부 변화

이러한 활동이 가능한 배경에는 조직 내부의 철학과 구조 변화가 있었다. 중원복지관은 복지관을 ‘커뮤니티센터’이자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며, 사회복지사들이 ‘케어 제공자’가 아닌 ‘시민과 마을을 잇는 촉진자’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6개의 직원 학습 동아리는 선배시민 활동을 뒷받침하는 조직문화의 핵심이다. 이 안에서는 근황 나눔, 책과 영화 토론, 주제기반 학습을 통해 직원들이 먼저 자기 인식과 태도를 점검하고, 선배시민과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우리 복지관에는 21개의 선배시민 동아리가 있고 선배시민대학과 선배시민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직원들도 학습하고 몸에 익혀요. 이 학습동아리를 통해 소통하고 정체성을 명확히 알아가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모든 것이 진행될 수 있다고 봐요.” 

복지관은 선배시민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소득이나 학력, 배경에 관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시민운동’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초기에는 ‘수급자나 사례관리 대상자는 선배시민이 될 수 없다’는 인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선입견을 깨고 모든 어르신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현실에서 확인했다.

선배시민 활동의 성과와 의미

선배시민 활동은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냈다. 어르신들이 단순한 수혜자를 넘어, 교육, 환경, 도시계획, 돌봄, 안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 제안자’이자 ‘실천자’로 나서는 모습은 타 지역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청소년과의 토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변화한 것처럼, 선배시민 활동은 노인의 역할 확장을 넘어 모든 세대가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도록 돕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신명희 관장은 “선배시민은 민주주의 광장을 열어가는 문화운동”이라며 “우리가 함께 참여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며, 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