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남해군은 노인인구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 오래다.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지역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을 수동적인 복지와 돌봄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노인을 시민적 주체로 보는 유범상·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론’에 주목했다. 지역 공동체 중심의 고령화 대책이 절실한 남해군에서 앞으로 5회에 걸쳐 ‘선배시민론’과 함께 ‘선배시민론’을 실제로 구현하고 실천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중원노인복지관과 ‘디딤돌’, 충북 진천군 노인복지관과 ‘선암회’ 사례를 소개하고 남해군에 적합한 ‘선배시민’ 실천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초고령사회의 문제와 그 해법으로 제기할 ‘선배시민론’을 대략적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 4월에 열린 대한노인회 남해군지회 소속 노인 자원봉사단 발대식 장면
지난 4월에 열린 대한노인회 남해군지회 소속 노인 자원봉사단 발대식 장면

‘선배시민론’은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유해숙 전 인하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가 제안했다. 남매인 두 사람은 사단법인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을 만들고 운영해왔다. 노인교육을 하며 경험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배시민’이라는 개념을 찾았다. 이들은 사단법인 ‘마중물’ 외에도 선배시민학회, 선배시민협회를 결성해 연구활동과 관련 프로젝트, 노인교육, 선배시민강사 양성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6년에는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와 손잡고 선배시민대학, 선배시민 자원봉사 프로그램, 선배시민 정책대회 등 관련 실천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유해숙 교수는 선배시민협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이 공동집필한 『선배시민: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에는 ‘선배시민론’과 실천방법, 현장 사례가 담겨 있다. 

고령화사회에서의 노인 문제 

한국은 노인취업률 36.2%, 노인빈곤율 43.2%(2022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늙어서도 일해야 하는 빈곤 노인이 많다는 뜻이다. 노인자살률 역시 한국이 인구 10만 명당 28.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와 함께 주위에서 경험적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 은퇴한 노인이 되면 먼저 빈곤이라는 경제적 분리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고립과 고독이라는 심리적·사회적 분리가 일어나면서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고령화된 한국사회의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최고의 노후보장 수단으로 ‘자식농사’를 들었고, 실제로 경제성장기이던 산업화시대에는 그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저성장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자식들이 부모부양은커녕 자신의 삶과 자녀양육조차 힘들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자식농사’로 안정적인 노년을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유범상·유해숙 교수는 『선배시민: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에서 ‘자식농사’ 대신 ‘국가농사’를 잘 지으면 된다고 말한다.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므로, 소득보장, 의무교육, 공공의료, 공공주택, 완전고용을 시민권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민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은퇴한 노인은 경제적·심리적·사회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선배시민론’은 노인이 나이 든 보통사람(시민)으로서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통해 ‘빵(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장미(삶의 품위)’를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범상·유해숙 교수가 공동집필한 『선배시민』에는 선배시민론과 실천방법, 실제 사례가 담겨 있다
유범상·유해숙 교수가 공동집필한 『선배시민』에는 선배시민론과 실천방법, 실제 사례가 담겨 있다

 ‘No人’ ‘Know人’ 등에서 ‘선배시민’으로

유범상, 유해숙 교수의 ‘선배시민론’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노인(老人)에 대한 담론은 크게 3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No人’이다. 가족과 사회의 짐스러운 존재, 늙은이, 돌봄의 대상, 불통의 존재 등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서 연령차별주의에 의한 부정적인 편견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Know人’ 또는 ‘어르신’이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 격언처럼 지혜와 통찰로 젊은이를 돕는 존재로 여겨진다. 노인 존중의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으나 ‘어르신’은 현자여야 하고 ‘어른답게’ 점잖고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럴 수는 없으니, 이런 인식이 오히려 굴레로 작용할 수도 있다. 노인은 ‘Know人’이기 때문에 존경과 존중을 받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또 새롭게 등장한 노인 ‘액티브 시니어’가 있다. 이들은 좋은 직장을 다녔거나 학벌이 좋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해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여가, 취미, 교양 활동에 관심이 많다. 이들은 여가를 누리지만 이는 개인주의적이고 나만을 위한 것이므로 ‘내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실존적 위기를 겪기도 한다.      

‘선배시민론’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노인담론을 비판하고 ‘선배시민’이라는 새로운 노인상을 제안한다. ‘선배시민’은 시민으로서 삶을 먼저 산 존재이자 시민권 보장을 위해 실천하는 주체로서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후배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학습하고 연대하며 시민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간다. 국가와 공동체에 사회권과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 조직하고 학습하고 실천하며 정책과 제도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이다. 선배시민은 수직적인 연장자 관계가 아닌, 수평적이고 상호적 관계 속에서 배움을 나누고 권리를 확장한다. 

남해군, 65세 이상 인구비율 43.8%

2025년 6월 기준 남해군 인구 3만 9431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1만 7258명(남 7178명, 여 1만 80명)으로 전체 인구의 43.8%를 차지하고 있다. 남해군은 고령화 비율이 초고령사회 기준(인구 20% 초과)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섰으며, 남해군민 2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유해숙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노인을 돌봄과 복지의 대상에서 지역과 공동체를 돌보는 주체, ‘선배시민’으로 인식을 바꾸고 공동체를 위해 후배시민과 소통하고 학습하고 연대하고 실천한다면, 남해군이 당면하고 있는 초고령사회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남해군처럼 공동체 유대가 강하고 친목·교류, 자원봉사, 스포츠, 문화 등에서 노인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선배시민론’이 철학기반으로 자리잡게 되면 지역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음호에서는 유해숙 선배시민협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선배시민론’을 좀더 자세하게 소개한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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