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사 주지 보림스님은 남해 용문사에서 가까운 남면 죽전(竹田)이 고향이다. 성중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불국사승가대학 사집과를 수료했다. 동국대 대학원(석사수료), 중앙승가대 대학원(석사학위·박사수료)에서 공부했다. 보문선원·연미사·덕주사 주지를 역임했고, 조계종 제17대 중앙종회의원이며 현재 개운사 주지이자 보문선원 회주이다.

보림스님은 속리산(俗離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상고암(上庫庵·930m)에 30대 초반에 행자로 들어갔다. 주석하고 있던 성중스님과 은사 인연을 맺은 후 굴 법당에 들어가서는 매일매일 지장기도를 올렸다. “내 시봉 그만해도 좋으니 큰 절로 내려가라”는 은사 스님의 당부에도 암자를 떠나지 않다가 3년여의 정진 끝에서야 법주사로 가 행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000년 10월 경기도 안산에 도심 포교당 ‘보문선원’을 개원하며 안산에 전법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어린이 포교 없이 미래 불교를 담보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어린이 여름·겨울 불교 학교’를 열었다. 3000여 명을 초청해 펼친 ‘노인잔치’는 지역민들에게도 나눔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2004년부터 이주노동자 지원에 나섰다. 이주노동자만도 8만명인 안산시에서 사찰을 쉼터로 제공하고 체불임금 등에 따른 어려움을 해소하려 법률자문의 길을 터주었다. 고려대 안산병원과 협약을 체결해 매월 1회 의료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그들만의 자부심이 위축되지 않도록 체육대회도 열었다. 서울 연등행렬에 이주노동자들이 첫선을 보인 단체도 보림스님이 보듬었던 불자들이었다. 조계종 사회부와 교계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등이 연계해 이주민 지원을 담당하는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의 초대회장을 맡았다.

보문선원 개원 6년 만에 신도 1000여 가구를 확보했다. 기도와 참선, 그리고 활발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며 안산 지역 대표 도량으로 우뚝 선 보문선원은 지금도 포교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조계종 포교원력상을 수상(2008년)했다. 연미사(2011년~2014년)와 덕주사(2015년~2021년)에 이어 2021년 서울 개운사 주지 소임을 맡았다.

동국대 대학원과 중앙승가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인이었을 때 5000여만 원을 들여 안산 보문선원을 개원했다. 스님이 모아놓은 1300만 원 외는 모두 빚이었다.

옷과 방석이 완전히 젖도록 절을 올리는 보림스님의 모습을 본 불자들은 “고고한 학이 움직이는 듯하다”고 했다. 흐트러짐 없는 절에서 정성을,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독경 소리에서 전법의 원력을 보았을 터다. 그리고 방석에 배인 땀과 눈물에서 간절함을 보았을 터다.

개운사 신도들과 함께 1000일 기도를 시작한 보림스님은 명부전에서 지장기도를 올리고 있다. 상고암과 보문선원에서 올렸던 그 ‘간절한 기도’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서울 대표 도량이라는 명성을 찾겠다는 보림스님의 숭고한 원력과 개운사 불자들의 신심이 하나가 되면 개운사는 다시 명찰로 거듭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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