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카니발 기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면을 착용하곤 하였다. 신분과 상관없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거나 중요한 회의에서 솔직하게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가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자들은 부를 과시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면을 착용하고 범죄와 퇴폐 활동이 늘어나면서 일상에서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고 카니발 기간에만 허용되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를 점령하면서 카니발을 개최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 이후 장기간 개최되지 못했던 카니발은 1979년 이탈리아 정부와 시민 그리고 예술단체가 과거의 카니발을 되살리기 위한 운동을 벌이면서 부활하였고 현재 약 300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베니스 카니발은 주로 2월에 개최하는데 주무대는 산마르코 광장에 설치되고 시내 전역에서 공연, 전시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베니스 가면축제의 주요 행사로는 관광객과 지역민 할 것 없이 모두 가면복장을 하는 것이다. 베니스 가면축제에는 얼굴에 다양한 가면을 쓰고 카니발 복장을 입은 사람이 가득하다. 이들 중에는 주최 측에서 고용된 연기자도 있으며, 손수 만든 가면과 복장을 입고 나온 일반인도 있고 의상을 대여해서 축제에 참여하는 관광객도 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각 나라 전통 복장을 입고 카니발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하회탈과 한복을 입은 사람도 있고 일본의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은 일본인도 있다. 일반 복장에 가면만 쓰고 다니는 관광객도 많다.

비록 가면 뿐이지만 그래도 축제에 참가하는 기분이 달라진다. 그 이유는 관광객 자신이 가면을 쓰면서 더 이상 축제의 방문객이 아닌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가면 중에는 과거 베니스에서 애용되던 바우타(bauta)가 유명하다. 바우타는 얼굴 전체를 가려서 익명을 보장하고 부리 같은 턱이 있어서 가면을 벗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우타는 카사노바도 즐겨 썼고 왕이나 귀족 그리고 평민도 자주 착용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는 사회의 역할이나 배우에 의해 연기되는 등장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연극에서 쓰이는 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페르소나는 가면을 뜻하는 희랍어로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써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인 얼굴이다. 가면을 쓴다는 것은 익명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익명의 소셜미디어에서의 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나 등 나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나타나는 성격이 다른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른 모습이 다중인격이나 해리성 장애와는 경우가 다르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다양한 역할에 따라 나의 모습이 바뀌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페르소나는 집단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며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를 개인과 사회에서 기대하는 나, 이 둘 사이의 어딘가라고 했다. 베니스의 가면축제는 인간의 기본적인 캐릭터의 속성을 가리고, 본인이 나타내고 싶은 캐릭터의 가면을 쓰고 즐길 수 있는 좋은 콘텐츠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유희를 즐기는 동물이다. 호모루덴스(Homo Ludens)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는 점에서 파악하는 문화사를 연구하는 요한 하위징아에 의해 창출된 개념이다.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라는 말이 아닌 정신적 창조활동을 가리킨다. 축제라는 화려함에 우리의 보편적인 삶을 녹여내는 것이 호모루덴스(Homo Ludens)인 것이다. 

성공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유희로 즐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축제는 공감이라는 유기체를 만들 수 없다. 축제에 생명을 더하기 위해선 지역에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일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의 삶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