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우 오동나무공방 대표
강재우 오동나무공방 대표
  • 박서정 기자
  • 승인 2019.04.1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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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부름·어떤 이끌림으로 오곡마을에 목공방 마련, “이제야 알아차림”
동아리육성교육을 하며 목공예품 생산, 고현관음포둑방축제 멸치축제 등 준비에 여념 없어

해양초등학교에서 지난 일요일 총동창회동문가족한마당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취재를 하던 필자는 이 상황이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워져 다음 취재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영 편치 않았다. 하지만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마음을 다독이며 강재우 대표가 기다리고 있는 오동나무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으로 오르는 길 왼편에는 얼마 전에 조성된 듯한 돌담이 무척 정다웠는데 도착한 공방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뵈니 그 여운이 더 이어졌다. 빗방울이 지붕을 강하게 두드리는 가운데 세 명의 동아리 회원은 만들어놓은 작품에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천연오일을 바르고 있었다. 날씨가 습해서인지 향긋한 냄새가 더욱 강하게 다가와 무엇인가 했는데, 밀랍과 오렌지로 만든 천연오일(천연도포제)이었다. 작품에 광택도 내고 도포제로도 쓰이고 있었다. 금방 완성된 물고기도마를 만지고 있으니 김정렬 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장이 우산을 받쳐 들고 밝은 표정으로 공방을 들어섰다. 

사실 동아리 회원들은 매주 금요일에 목공예 교육을 받고 있어 오늘은 집에서 쉴 수도 있었지만 곧 있을 행사에 대비하기 위해 일요일인 오늘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그들의 손놀림만큼이나 명함꽂이 냄비받침 물고기도마 등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 공방은 작년에 고현면 권역단위 거점개발 지역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되어 동아리육성교육을 해오고 있다. 그는 이동면 무림리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다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스피커부품 제조업을 경영해오다 2012년 연로하신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으로 귀향을 결심했다.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싶어 집터를 찾던 중 무엇에 홀린 듯 이곳 고현면 삼봉로 83번길3-37에 마음을 뺏겼다. 그는 집을 짓기 몇 년 전 건축박람회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바로 목재를 다루는 공구들이 진열돼 있는 부스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것으로 목공예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그때가 49세 무렵이었는데 갑자기 잠재돼 있던 의식이 확 깨쳐지면서 직장생활이 끝난 후에는 귀향을 하여 언젠가 발현할 생각을 했다. 

역시 인간의 DNA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보다. 그의 증조부인 고 강두옥 씨는 생존 시 문 짜는 일과 인테리어 구조체 등의 일을 하며 도목수로써 지역에 알려진 인물이었고, 지금 93세로 생존해 계시는 아버지 강종호 씨는 문 짜는 일과 집 짓는 일 실내인테리어 쪽 일을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두 분의 재능을 강재우 대표가 고스란히 물려받아, 대장경판각성지 일원인 이곳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목공방 운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장경판각을 향한 전주곡이 동아리 회원 8명과 함께 함초롬히 피어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곡마을에 이런 내력이 있는 줄도 모른 채 ‘꼭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어떤 힘에 이끌려 여기로 온 것 같다’고 했다. 

그가 4년 동안 공방에 공구를 사들이며 가슴 설레는 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지인의 권유로 작년에 마을권역별 사업에 공모를 하게 되었고 운 좋게 선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만을 위한 공방이 될 것이라는 생각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공익적 사회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그때 이런 걸 위해 그렇게 준비를 한 것이었구나”로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루 종일 목공예만 하고 싶다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얻고 있다. 보통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지만 마무리가 안 된 작업은 자꾸 뒤가 돌아 보인다는 그는, 사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목공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제일 처음 만든 작품은 썰매였다. 그 썰매는 친구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게 되어 결국 몇 개를 더 만들어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의 기술이 더욱 날개를 단 것은 경기도 안성에서 4개월 동안 통나무목공예 수업을 한 뒤부터였다. 새벽밥을 먹고 올라간 그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연마하며 많은 희열을 느꼈다.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곧 내릴 닻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이 섞인 기분이었다.    

작년부터 오동나무공방에서 많은 목공예 관련 활동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지난 가을 이순신순국제전 때 목공예 부스를 운영하였고 오는 13일과 14일 양일간도 고현 관음포 둑방 봄꽃과 땅두릅 축제 때 목공 전시, 판매와 체험을 한다. 명함꽂이 냄비받침대 도마작품 등에 버닝펜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글귀를 손수 쓰거나 불도장(인두)을 직접 찍어 각자의 손길로 마무리를 하게 한다. 4월 24일 부처님 오신날 점등식 행사 때도 남해군유배문학관 광장에서 목공체험을 하게 된다. 이 행사들이 끝나면 6월에 있을 멸치축제에서도 목공예체험이 있다. 이것 외에도 많은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생각은 무궁무진하여 목공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산림청에서 주관하는 목재문화체험전을 유치하는 것도 희망하고 있었다. 지금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만 있지만 실버‧치매프로그램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목공동아리를 형성하여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데도 한몫을 하고 싶어 했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분야는 생활목공 쪽이었다. 목재를 비싼 돈으로 구입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버려진 나무들을 활용하여 누구든지 부담 없이 쉽게 접근하여 목공예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역할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장경판각의 시작점은 목공예이므로 우리 동아리 회원들이 선두에 서서 앞으로 손님들에게 시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곳이 대장경판각지라는 홍보를 더욱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부각시켰다. 오곡마을에서 고현면민들과 대장경판각을 위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에게 무림마을에 사는 친구들은 “왜 오곡마을로 갔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내가 오곡에 와 왔는지 모리겄다. 하지만 다음에 내 이름을 알리게 될 날이 꼭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 지켜봐 달라”는 말을, 평소 자랑도 할 줄 모르는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을 넘은 숙명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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