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5명이 박사… 박사가족으로 유명
가족 5명이 박사… 박사가족으로 유명
  • 윤혜원 기자
  • 승인 2019.03.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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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고정훈 전 교령 사위

행정학 박사인 박상종(73) 향우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 광일씨는 의학박사로 연세거평의원 원장이다. 대학에서부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줄곧 장학생이던 장녀 소영씨는 고대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상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큰사위 송의성도 이학박사로 부산교육대 교수이다. 차남 광운씨는 고려대를 나와 삼성SDS를 거쳐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 중이다. 
이처럼 박상종 향우 가족은 5명의 박사를 배출한 박사 가족이다. 박상종 향우는 설천면 정태 출신으로 서울시장 표창, 무궁화근장 외 다수의 상훈이 있고, 건국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행정학 석사), 경원대 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 박사)를 졸업했다. 경원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 겸임교수,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및 심사위원, 서울디자인 전문학교 상임이사 및 부학장, 천도교 유지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서울디자인 전문학교 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사)한국정책포럼 부회장, (사)한국부동산학회 이사, (사)평생교육학점은행제 기관협의회 이사, (사)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 등으로 재직 중이다.

박상종 향우는 어릴 땐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6학년 담임의 권유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부산 소재 해동고 장학생으로 입학 장학금을 주는 동아대 1학기를 마치고 노점상에서 책을 팔아 고향 남해읍에 ‘부산 서점’을 냈다. 여기서 돈을 벌어 철물구조 공장을 구입해 정미기기 공장을 설립했으나 몇 년 후 부도가 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대양주택개발’을 설립했다. 
그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사업을 접고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잘 굴러가는 사업체를 그만두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장인어른께 물려받은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천도교인으로서의 자긍심도 크게 작용했다. 박상종 향우는 만학으로 1983년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고, 1995년 8월 ‘중상층 노인주택 공급정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경원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논문을 받았으며, 이후 서울디자인전문학교 학장 등을 역임했다.
박상종 향우는 결혼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종단중 하나인 천도교와 인연을 맺었는데, 장인어른이 고정훈 전 천도교 고령이시다. 그 인연으로 한강교구 설립 당시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천도교유지재단 이사장까지 역임하였다.

박상종 향우는 우리 근대사에서 천도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우리 근대사에서 천도교가 아니었다면 한민족의 정체성은 심히 손상되었을 것이다. 동학혁명의 주체 세력이 바로 천도교이다. 동학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하였을 것이고 6.25동란도 없었을 것이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천도교인이 15명일 정도로 일제 36년 동안 천도교가 독립운동의 주도세력으로 활약을 했는데, 우리 근대사에서 천도교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아쉽다”라고 밝혔다.
박상종 향우는 삼봉장학회 회장, 진목초등학교 동창회장, 재경남해고현중학교 초대 동창회장, 재경설천면향우회 회장, 재경남해군향우회 부회장으로 10여년간  향우들의 친목도모와 고향행사에 물심양면으로 앞장 섰으며, 서초구남해향우회 회장으로서 6년 동안 불우이웃돕기, 장애인문화협회 기부금 및 쌀 보내기 등 선행과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주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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