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열린 ‘구운몽 창작지와 김만중 유배지에 대한 남해군의 입장’ 브리핑 자리.

여태껏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이날 브리핑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으며 과연 이 브리핑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먼저 이날 브리핑을 해석하는 기자의 시각은 이렇다. 장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남해군은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유배문학관 개관과 더불어 유배문학의 가치를 활용한 또다른 사업이 추진되는데 여타의 논란이 민심을 갈라놓고 있다. 논란을 불식시키고 지역 총의가 모이길 바라는 뜻에서 입장을 밝히고 언론도 함께 해달라”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행정의 취지를 제대로 해석한 것이길 바라며 이날 브리핑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더욱 발전적인 남해군의 입장 표명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먼저 남해군이 가진 ‘학설에 대한 위험한 해석’이다. 이날 군 관계자는 “학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주장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학설은 학술적 문제에 대해 근거를 갖고 접근하는 이론체계이며 학계 연구자 공통의 검증을 받는다. ‘학설은 단순한 주장’이라는 학술적 가치의 평가 절하를 브리핑을 통해 공공연히 밝히고 있으면서 남해군 주요시책의 근간인 주요 용역들이 학설과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1988년 일본에서 ‘서포연보’가 발견되며 구운몽 저작지에 대한 논란은 국문학계에서는 사실상 일단락된 것으로 보며 이후 선천설에 대한 반박 이론이나 논문들이 발표되지 않은 점은 학계의 검증과정을 거쳐 정설로 굳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현재 국문학과 강의실에서는 “구운몽 저작지는 선천”으로 정의한다. 유배문학관 개관 당시 문학 전공자라면 다녀가야 하는 유배문학의 성지로 만들겠다던 남해에서 ‘애향심’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이 학술적으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먼저 자문해보자.

그리고 행정이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했던 배경도 학술적인가 하는 물음과 이 브리핑이 남길 실익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른바 이 논란의 중심에 설성경 교수가 있다. 명예관장 위촉 당시부터 일던 논란이지만 최근 ‘측근’ 논란이 덧붙었다. 이른바 입장표명의 불가피성이 담긴 핵심이다. ‘측근’ 개념의 결부로 앞서 언급한 두 의문에 대한 답은 이날 참석한 군 관계자의 말에 묻어난다. “설 교수가 떠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

먼저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다. 누군가 기자에게 “설 교수 사주를 받았냐”는 말과 함께 “정 기자, 남해사람 아니오?”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힐난에 가까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믿은 것은 내 고향 남해를 위해 설 교수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그가 처음 노도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해야할 검증과정을 거치는 차원에서 그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했던 말에 주목했다.

“서포 선생의 숨이 담긴 이곳 남해에서 내 평생 연구의 마지막 퍼즐을 놓고 싶다. 구운몽 저작지에 대한 내 학설에 비판이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는 소신의 문제다. 단, 내가 노도에 찾아온 이유는 분명하다. 서포선생의 적소라는 점만으로도 남해는 세계적인 인문학의 메카가 될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곳에 그 가치를 담아내고 싶다”고 했던. 그리고 그의 경험에 집중하게 됐다.

기자의 출신에 대한 질문은 유배문학관이 ‘유배문학을 테마로 한 전국 최초의 문학관’이라는 보도에 기자는 이미 애향심에 발 딛고 ‘거짓말’로 동조했다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그리고 다시 설 교수로 조명을 옮겨 유배문학을 테마로 한 최초의 문학관은 전남 강진 다산문학관, 설 교수는 다산문학관의 초대 관장을 맡았던 이다. 그런 경험이 남해에 세워질 유배문학관의 터닦기 작업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기자가 가진 나름의 ‘애향심’이다. ‘거짓말’이라는 말이 나와서 사족을 덧붙이면 스토리텔링은 사실 ‘새빨간 거짓말’이면서도 관광발전이라는 차원에서 ‘하얀 거짓말’로 용인된다. 노도 문학의 섬 조성사업의 팔할은 이 스토리텔링 작업이다.

설 교수는 그 ‘하얀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 장성 홍길동테마파크가 그랬고 춘향전 이몽룡의 고향이 경북 의성이라고 밝혀 스토리텔링의 틀을 제공했다. 그가 가장 집중한 연구 분야가 ‘구운몽’이고 서포 선생이다. 남해에 가진 애착이 클 수 밖에 없다. 강진 황주홍 군수가 다산문학관 개관 준비 당시 연구실을 찾아와 “강진군민들 먹고 살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에 교수 재직 당시임에도 이튿날 바로 내려갔던 그다. 남해군이 그를 명예관장과 추진위원장에 위촉한 이유가 이런 그의 연구 열정과 꿈, 그가 지닌 가치에 주목한 것이라면 정중히 당부한다.

‘유보’라는 말로 덮고 갈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나서달라. 언급했듯이 학설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학설과 스토리텔링의 차이를 구분짓고 설명하고 설득해 달라.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해 남해설을 주장하고 있는 향토사학계와 설성경 교수가 가진 비전이 함께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건전한 학술 논쟁의 장을 조성하는데 주력해 달라.

갈수록 전문가의 영역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지역의 비판 아닌 비난에 밀려 퇴출되는 일은 남해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거듭 정치적 해석을 경계해 달라. 기자브리핑 이후 ‘한 표 VS 적어도 10표 이상’이라는 말이 새롭게 나돈다.

아울러 향토사학계와 남해설에 애착을 가진 모든 분들께 부탁드린다. 남해에 오자마자 비판 아닌 비난에 삭발로 의지를 다지고 침낭을 빌려 추위를 버틴 그다. 그런 열정으로 자발적 유배를 택한 이에게 또다른 유배로 떠미는 것보다 남해를 위해 함께 연구하는 성숙한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지는 않은지. 그 옛날 서포 선생이 치열한 당쟁 속에서도 시비를 가리려 했던 그 정신을 물려받은 후손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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