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이 정신으로 재기

선박 부식방지기술 연구와 개발에 매진

‘가족의 힘’으로 버틴 세월

일기예보에서는 장마비가 내린다고 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어렵사리 구평동에 위치한 공장(동양방식금속(주))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바로 재부고현면향우회를 맡고 있는 하기태 회장. 그는 공장이 너무 멀어 찾아오겠냐며 내내 걱정하더니 결국 큰길까지 비를 맞으며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작은 일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힘겨운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충분히 짐작했다.

‘아주 작은 곳’이라며 소개한 그의 공장에는 마침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주물제작틀이며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에 빛을 본 ‘작품’들이 공장 한 켠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

남해인을 만나면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자주 듣다보니 마치 내가 그 시절을 산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고현 성산이 고향인 하 회장도 그런 세월을 보냈다. 그의 나이 예순을 넘기고도 중반을 바라보니 어린 그 시절 하 회장은 가족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다.

“만약 그 시절이 없었다면 살면서 겪어야 했던 삶의 시련들을 과연 잘 견딜 수 있었을까요”라며 어려웠지만 삶의 자산이 되어준 힘겨웠던 시절을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고 처음 잡은 직장이 조선소였다. 구매담당을 하며 가만히 살펴보니 선박부식방지를 위해 가져오는 구조물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는 것이다.

“내가 가만 보니 그 걸 사기 위해 논 한마지기 값을 지불하는 거에요. 충격이었죠. 그래서 내가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직장생활을 하며 제작기술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다. 예상대로 어려움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짧은 가방끈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빌리고 연구를 하고 구조물을 하나 가져다가 해체하고 조립하며 고심한 끝에 결국 우리나라 최초(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수입해 썼으므로)의 선박밑창에 쓰이는 선박부식방지 구조물이 탄생하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오뚝이!

온통 수입 해 쓰던 것을 개발해냈으니 수요는 어마어마했다. 요즘은 에쿠스에 비교된다는 그 당시의 포니를 타고 고향에 가면 차를 보기위해 아이들이 몰려와 구경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련은 손을 잡고 찾아왔다.

그의 기술이 도용이라며 일본제품대리점에서 법적소송을 걸고 그가 기술을 전수한 기술자들은 다른 회사로 옮겨 유사제품을 만들어 내놓고 아이엠에프로 어려운데 보증을 잘못서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의 꿈마저 사라지진 않은 듯 했다. 가건물 2층, 그 냉방에 평상하나 펴놓고 다섯식구가 잠을 자도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거는 믿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때 고3이었던 아들이 아버지가 잘못해 우리가 힘든게 아니니 걱정말고 힘내시라”는 말을 듣고 그는 다시 한번 일어설 다짐을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다시 연구, 개발을 하는 삶을 시작했다. 그에게 가족은 그가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였다. 그때 대학생이었던 장남 우종씨는 해양대에서 금속과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나와 하 회장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 특히나 힘을 북돋워줬던 둘째 성조씨는 지금 해군에 몸을 담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나아진 것은 없지만 늦기 전에 봉사를

그토록 시련을 겪으며 정성을 쏟아 붓고 한 평생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온 하회 장의 고뇌와 수고를 조금이나마 떠올리며 잠시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수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닌가.

지금도 조선업계의 불경기속에 별로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가 지금에서야 향우회 활동을 하는 것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의지에서였다.“지금 내 나이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잊고 살았던 내 고향과 향우회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봉사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재부고현면향우회는 산악회와 골프회의 동호회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힘은 향우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하 회장도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항상 회원들을 독려해 향우회에 대한 협조를 부탁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본 기자는 바로 ‘오뚝이’를 떠올렸다. 20억이 넘는 빚더미를 떠안고 가진 재산을 모두 털어 넣어 빈털터리가 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런 ‘남해오뚝이’들이 모여 향우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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