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틀에 사용할 북을 만들고 있는 박동열 할아버지.
가을걷이가 끝난 후 섣달과 정월달이 되면 바야흐로 길쌈을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따뜻한 아랫목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 길쌈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 곳은 동네 사랑방이 된다.

베틀에 앉은 어머니들은 쉬지 않고 삼을 삼고 물레를 돌려 실타래를 감고, 삼 줄기 한 쪽 끝을 이로 갈라 둘로 나눠 다른 줄기 끝과 함께 허벅지에 대고 손바닥으로 밀어 연결하는 과정들이 반복된다.

그렇게 한 올 한 올 이은 실이 한 소쿠리가 되려면 하루 종일 걸려도 모자란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도 대마 농사를 짓거나 삼베를 짜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지면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도 삼베 짜는 베틀을 만들며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분이 있다.

고현면 북남치에서 40여년 동안 베틀을 만들고 있는 박동열 할아버지(76·사진)는 이제 군내에서 유일하게 베틀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아 손으로 하는 것은 못하는게 없을 정도였다는 박 할아버지가 원래 하는 일은 목수로, 북남치 마을의 집마다 손이 안 간 곳이 없고, 마을에 쓸 상여도 손수 만들 정도로 솜씨가 뛰어나다.

박 할아버지의 아내 이상지 할머니는 “남편이 손재주 하나는 정말 타고났다. 집은 물론이고 마을에 뭐 필요한게 있으면 만들어 주고, 고장난게 있으면 고쳐준다”며 남편자랑을 늘어놓았다.

삼베를 안짜는 집이 없을 정도로 삼베 짜는 일이 성행했던 시절, 일제시대 베틀을 개조해 주다 마을 아낙들의 베틀을 하나 둘 만들어 주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창선, 진주, 사천 등지에 베틀을 주문제작해 주기도 했다.

타고난 손재주 때문에 우연히 베틀과 인연이 닿아 40여년의 세월동안 베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턱이 닳도록 박 할아버지의 베틀을 구하러 오던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지도 오래.

이제는 베틀을 새로 주문하러 오는 사람들보다 베틀의 부속품을 구하러 오거나 고장난 베틀을 수리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예전엔 베틀 하나 만들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일 정도는 기계의 힘을 빌어 보통 4일 정도면 한 대의 베틀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베를 짜는데 꼭 필요한 북을 만드는데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한다.

베틀의 각 부분마다 사용되는 나무도 달라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지만, 박 할아버지에겐 이젠 하지 않으면 허전한 일이 돼 버렸다.

박 할아버지는 “예전엔 베틀 구하러 오던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이젠 그 발길이 뚝 끊겨 아쉬울 따름이다. 최근엔 보물섬삼베마을이 만들어져 그 곳에 베틀을 만들어 주면서 그 명백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찾아오는 손님들 있으면 못한다 소리 안하고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동열 할아버지의 손재주를 그대로 닮은 큰 아들에게 베틀 만드는 일을 전수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박 할아버지의 바람이 이뤄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겨울이면 삼삼오오 아낙들이 모여 베틀에 앉아 삼베 짜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