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당 폐지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각 정당들이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궁지에 몰린 나머지 서둘러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다. 그 중에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지구당을 폐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연 기성정당들이 지구당을 폐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구당을 없애면 무엇으로 어떻게 정당활동을 한단 말인가?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정치개혁이냐는 문제제기도 만만찮다. 필자도 지구당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구당의 존재여부가 정치위기의 본질이 아니다. 필자는 오히려 이름만 빌려준 가짜 당원들로 가득한 지구당을 진성당원으로 가득한 지구당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개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지구당이 사라지면 지역의 주민들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지구당을 없앤다는 것은 그 성격상 불가능한 측면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지구당이 없어지더라도 지구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는 어떻게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구당을 없애면 정치인들은 더욱 음성적인 형태로 사조직을 운영할 것이다.

현실의 썩은 정치만 본 시각으로 지구당을 바라보면 지구당은 당장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는 정치인만 정치하는 세상이었고, 지구당은 그 정치인의 호주머니에서 돈만 빼먹는 하마에 불과했다. 당비를 내는 당원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지구당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하여 음성적인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 모아야 했다. 지구당은 선거 때 유권자들의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나르는 조직원을 부리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지구당을 바라보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정치의 장이다. 이제 정치는 일반 주민들의 손으로 돌아와야 한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정치인을 키우기 위해 기꺼이 당비를 내고 정당운영에 참여하는 당원들이 만들어나가는 정치가 열려야 한다. 당비를 낸 당원들이 직접투표를 통해 공직선거 후보를 뽑는 정치가 열려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어떤 이름을 붙이든) 지구당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구당을 폐지하자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는


현행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말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소선거구제를 주장한다. 지역주민의 삶은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역을 벗어난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만큼 작은 단위 지역주민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열린우리당이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고 하지만 선거구제로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당리당략적 측면이 강하다. 지역감정은 정치개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 달리 방법이 없다.


1인2표 정당명부투표는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내년 선거부터는 유권자 1인이 1표는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또 1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게 투표하게 된다. 정당명부투표라고 부르는 이 제도의 핵심은 비례대표를 뽑는 방법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1등 이외에는 모두 사표가 돼버리는(아무것도 없는) 현행제도의 약점을 보완하여 당선된 후보가 아닌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의 뜻을 비례대표의원으로 만들어 국회에 보내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각 정당이 미리 명단을 작성해 유권자들에게 알리는데 이 명단을 작성할 때 전국적 단위로 할 것인지(독일식), 영남·호남·충청·서울경기(강원) 등 권역별로 할 것인지(일본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기성 정치권이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비례대표의원 배분문제를 독일식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독일식 정당명부투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의원을 배분하되 원내 제1당이 더 이상 초과해서는 안될 의원정수 상한선을 정해놓고 이를 초과할 경우 나머지는 다른 소수정당에게 비례대표를 나누어주는 방식이다.

비례대표는 지역대표와는 달리 각 정당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추천,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역대표 수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의원정수를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회의원 정수를 273명에서 299명으로 늘리되 현재 46명에 지나지 않는 비례대표 수를 100명 이상으로 확대해 실질적인 정당명부투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개혁, 지구당을 당원 품으로


필자는 지구당의 진성당원화, 소선거구제 아래 비례대표 수 확대, 독일식 정당명부투표 도입, 이 세 가지만이라도 이번 정치개혁 논의에서 도입되면 정치개혁은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정당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이런 제도를 받아들이기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개혁논의에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가 참여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개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 그들에게 맡겨놓아서는 겨우 완전선거공영제 하나 합의하고 마무리지으려 할 것이다. 선거공영제 역시 중요하지만 모든 국고보조금을 기성정당들이 이미 독차지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의 선거공영제는 그들만의 잔치 판을 더욱 걸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개혁은 이미 시작되었다. 모든 군민이 각기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가입하고 그 당의 운영에 떳떳하게 참여하는 시대, 그 당의 정책을 가지고 떳떳하게 경쟁하는 시대, 그런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금의 지구당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정치운동에 나서야 한다. 지구당을 없애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때가 아니라 정치인 1인에 장악된 지구당을 대다수 당원 품으로 돌려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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