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어려움 딛고 새로이 시작할렵니다"

  
 
  
17년 동안 살면서 둘이 함께 폼나게 찍은 사진이 없다. 그
래서 어깨동무 하며 사진 찍기가 어색하고 쑥쓰러운 이상
칠·강맹자씨 부부.
 
  

"어려운 가정형편에 교통사고까지 겹치는 바람에 몇 안되는 세 식구 묵고 사는 데도 힘들었제. 결혼식 못 올린 것도 우리 팔자려니 하고 산 게 벌써 17년이 됐수다. 없는 사람이 무슨 결혼식을 올려? 아(자식)도 다 크고 나이 들어 쑥쓰럽게 무슨 결혼식?…"

이런 말을 내밷으면서도 지난 17년 동안 부부로 함께 살면서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상칠(50)씨.

지금까지 남들 다하는 외식이나 선물, 나들이 한 번 챙겨주지 못한 그에게 올해가 가기 전 아내 강맹자(44)씨에게 빚(?) 갚을 뜻밖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들 부부는 경남지체장애인협회가 마련하는 제5회 경남 장애인 합동결혼식 대상자로 선정돼 지난 6일 가족, 친지들과 남해군장애인협회 임원들 등 여러 내빈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결혼식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 강씨는 하루종일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식 올린다'며 자랑도 서슴치 않았다.

이씨는 그런 아내가 주책스럽게 왜 저러나 싶을 정도였지만 한편으론 '저렇게 좋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더란다.

남해에 살고 있던 처형의 소개로 사천 곤양이 고향인 강씨를 만난 이씨는 처음 만나자마자 프로포즈를 했고, 곧 남해로 데리고 와 같이 살게 됐다. 당시 어려운 형편으로서는 결혼식 자체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해탕 보일러실에서 7∼8년간 청소일을 해온 이씨는 지난 91년, 아내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택시와 부딪혀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부인 강씨는 상처가 약했지만 이씨는 대퇴부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3년 간 병원신세를 졌다.

그로 인해 지체장애인(4급)으로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또 갑작스럽게 폐에 이상이 생겨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거의 강씨 차지였고, 자연히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 햄버거 장사, 식당 설거지, 시장에서 채소 파는 일, 주차관리원 등 궂은 일 마다 않고 열심히 살아온 강씨도 청각장애(5급) 때문에 중이염을 앓아 자주 쓰러지고 계속 약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강씨의 고생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여긴 이씨는 지난달 ○○화재에 시험쳐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것도 잠시 이씨는 "배운 것, 기동력도 없고 인줄까지 없어 한 달 버티는 것도 어렵다'는 판단으로 직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장애인 주차관리원 자리가 잠시 비어 11월부터 임시로 관리일을 하고 있다.

"가진 건 없지만 술 담배 안 하고 마음씨 좋아 지금껏 같이 사는데 불행하다고 느낀 적 없다"는 강씨.

"엊그제 생일이 지나갔지만 한 번도 생일이라고 선물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해도 싫은 내색 않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아내와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외식이나 구경도 데리고 가지 못한 아들 광훈(초교 3년)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는 이씨.

"새 신랑, 새 신부가 됐으니 신혼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몸 건강히, 성실히, 부지런히 살면서 그동안 못해본 일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싶다"는 이들 부부의 작은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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