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직 후배들에게 희망의 날개 됐으면…”

체신노조 지부장 7년째, 직원 처우개선 앞장

  
 
  
36년간 기능직 집배원으로 오직 한길을 걸어온 김
우열씨는 기능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함께 젊은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이 힘든 만큼 월급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지만 한 직장에서 36년의 세월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자긍심을 갖고 값지게 살아온 직장인이 있다.

그는 두 달 전 기능직 공무원으로서는 도달하기 힘들다는 3급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직장 동료들 외엔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우체국 기능직 집배원으로서 오직 한길을 걸어온 김우열(53)씨는 자신의 '외길 인생'에 대해 자긍심이 대단하다.


기능직공무원은 승진해도 업무변화 없고 주위사람 몰라

1967년 12월 1일, 꿈많던 방년 18세. 미조면 사항마을 출신인 그는 당시 미조우체국장에 재직 중인 큰 형님의 인연으로 우체국(기능직 10급)이라는 직장을 통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기능직 5급까지는 가보자'는 목표 아래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집배원 생활은 계속됐다.

하지만 '기능직'이라는 한계 때문에 승진을 해도 업무상 변화가 없고 직책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위 사람도 몰라주고 스스로 직업에 매력을 찾지 못했다.

몇차례 환직이나 특채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이 생활을 버리지 못했다.

집배원으로서의 고충을 스스로 체험해봤기 때문에 기능직이 안고 있는 한계를 깨뜨리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한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희망의 날개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 체면을 걸고 궂은 일 도맡아가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다고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한참 후배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하거나 함께 집배원 생활을 했던 동료가 우체국장이 되어 출세(?)하고, 특히 다른 기관에서 인사발령 있을 때마다 신문 지상을 통해 쏟아지는 승진 축하 광고문을 볼 때면 그동안 참 한심하게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씁쓸해질 때가 많았단다.


주민과 함께 웃고 울며
소식통 보람 피곤 가셔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뿐, 집배원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느끼는 보람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요즘엔 서신 자체가 드물지만 전화나 교통편이 없던 시절엔 집배원이 '소식통'이었죠. 시집간 딸이 친정 어머니께 자녀출산 소식을 전하고, 군내간 아들이 보내온 옷을 전달하고, 특사전보 배달로 사망소식이나 취업 소식을 알려주며 까막눈인 어르신들에게 편지 읽어주고 대신 써주면서 주민들과 함께 웃고 울던 그 때가 그립다"는 그는 "이불 밑에 고이 간직해둔 고구마를 꺼내주며 입 다시고 가라는 후한 인심 덕분에 피곤함이 싹 가실 정도였다"며 회상에 젖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그는 집배원 생활에 더 애착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체신노조 남해지부장 맡아
"살맛나는 일터 만들기"

김씨는 집배원 생활에 젊음의 열정을 모두 바친 만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능직 공무원의 처우개선을 위해,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자청하여 지부장 선거에 나섰다.

그의 뜻이 동료들에게 전달됐을까. 그가 전국체신노동조합 남해우체국연합지부 지부장을 맡은 지 올해로 7년째로 오전에는 집배원 활동을 하고, 오후엔 노조활동을 한다.

그는 동료들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변화를 수용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또 갓 들어온 신참들에겐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들려주며 '한 번 집배원은 영원한 집배원'으로 남을 수 있는 비결(?)도 귀띔해주면서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래서 술자리엔 빼놓치 않고 찾아준단다.

"정년이 되기까지 3∼4년 남은 기간동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후 이 직을 떠나 또다른 사회에 나가서도 우체국이란 삶의 터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김씨는 "오토바이에 화이바를 쓰지 않으면 내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생활에 더욱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견스러운 아빠와 남편으로 생각해주는 대학생인 두 아들과 부인 김문자(46)씨, 또 형님처럼 생각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동료 직원들, 우편수취함으로 대면기회가 적어졌지만 가끔 마주칠 때마다 '수고합니다'라고 인사를 아끼지 않는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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