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가 되어버린 對話場(사랑방)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對話場(사랑방)
  • 남해신문
  • 승인 2008.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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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을 겸한 바깥양반의 거처, 한겨울 농촌 대화의 광장이기도 했다

시골의 대화장(對話場) 사랑방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긴 겨울밤 따끈하게 불을 지핀 방에 모여 앉아 새끼도 꼬고 짚 고꾸리도 엮고 쇠꼬뚜레를 장만하며 특히 농한기를 맞아서도 동네사람들의 구수한 옛이야기가 오고가는 사랑방.

초가삼간일망정 사랑채를 필수적으로 두어온게 우리조상들의 과학 구조였다.

‘안채가 안주인의 차지라면, 사랑채는 바깥주인 전용의 거처’이면서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 구실도 함께 했다,

안채와 동떨어진 대문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랑채는 마루를 낀 사랑방 하나만 하면 훌륭했다.

사랑방에 부엌이 딸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군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만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죽을 끓일 수 있는 가마솥이 걸려 있기도 했다. 사랑방은 나그네를 위한 숙소로 귀한 손님을 맞는 응접실로 구실을 다했다,

먼 길을 가던 나그네가 날이 저물어 하룻밤의 신세를 지는 곳이 사랑방이였다. 돈보다는 인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던 우리들의 할아버지들이고 보면 낮선 사람일 망정 어서 들어오라며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생솔가지를 부엌가득 넣어 군불을 지펴주었다. 그리고 소찬이지만 허기나 면하라며 저녁상을 내어주곤 안스러워 하던 할아버지들…

그런 날이면 사랑방에도 밤새 등잔불이 오래도록 캐져 있었다.

아버지 나이 40이면 노인대접을 받고 사랑채로 거처를 옮겼다.

쫓겨난 것인지 스스로 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채로 거처를 옮김으로서 없었던 위험도 갖추어 졌고 담뱃대도 곰방대에서 한자정도 널렸다. 그리고 이웃사람들도 어머니에서 아버지를 칭할 때 ‘바깥양반’에서 ‘사랑양반’ 이라고도 불러 왔었다.

사랑방에는 질화로가 있어서 겨우내 빨간불이 붙어있었고 심심한 아버지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 바둑을 두거나 술추렴을 하기도 했다.

밤이면 간혹 안방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안방에서 자고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동네의 사랑방 중 넓은 방이 있는 곳은 젊음이들의 놀이터로서 화투나 골패를 치기도 했고 짚신을 삼거나 새끼를 꼬면서 노는 것을 즐겁게 놀았다.

사랑방 놀이 중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남의 집 닭을 훔쳐오거나 수박, 복숭아, 감 등 과일을 훔쳐오는 일로 이것을 ‘써리(서리)’라고 했다.

이것은 도둑이 아닌 장난으로 인식돼 있기에 당한사람도 그러거니 하고 알고도 넘어 가버렸다.

사나워진 작금의 인심에, 돈보다 인정을 앞세웠던 우리 선조들의 사랑방처세는 전설처럼 들려오기만 했다.

이처럼 산업의 발달과 함께 농촌 젊은이들의 급격한 도시진출과 핵가족화 현상도 농촌의 풍습을 크게 바꾸어 놓고 말았다.

사랑방이 없어지면서 구수하고 정취 있는 풍습도 점차적으로 사라져갔으며 또한 노년층이 모이는 사랑방이면 으레 들을 수 있었던 시조창이나 불량청년들을 꾸짖는 얘기들은 이제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동네 경조사 의논도 하고 정보를 주고 받으며 농한기 부업 등 일거리를 만지는 사랑방의 풍속도가 사라지면서 구수한 농촌의 인심도 퇴색되고야 말았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 일들도 하면서 마을 일을 의논하는 대화장, 사랑방은 이젠 찾아보기조차 힘든 옛 풍속도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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