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석연 (55 / 남해읍 향우)
안산세관근무
단순히 세월이 빠르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30년이란 시간이 역시 너무 긴 세월이던가!

요즘이야 국제화다 글로벌이다 하여 지구 전체가 이미 한 가족처럼 대부분이 일일 생활권에서 살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30여년 전 만 하더라도 실로 세계는 넓고 컸으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만 해도 그 당시 나의 작은 시야로는 너무나 크고 광활했으며 동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

나는 흔히들 마처족(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세대)이라고 일컫는 시대에 태어난 영광스런 아들이요 아버지다.

하나더 미련스럽고 낡아빠진 고집이 있다면 우리세대는 소위 말하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영욕(榮辱)을 늘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서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퍽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던 55회 남해초등학교 졸업장이 어느덧 100회를 훌쩍 넘기고 보니 이제 초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도 최소한 서울에서는 상당히 말발이서고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적지 않은 영광인가?

남해초등학교 졸업이라는 명분만 가지고도 내가 서울에서 당당하고 맛있게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됨은 물론 추억의 근간으로 충분하다면 이것은 아주 조그마한 시작에 불과하다.

외국에 나가봐야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느낀다하고, 아름다운 추억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우리고향 남해를 잠시 떠나 온지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고향의 소중함과 아름답고 행복했던 지난 세월의 추억을 반추(反芻)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 자랑쟁이다.

특히 고향에 대한 말 꺼리만 꼬투리 잡히면 입에 약간의 게거품 정도는 쉽게 물고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지역색도 아니고 나 자신은 고향에 대한 순수한 애정의 편린(片鱗)이라고 늘 강조하지만 듣는 사람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은 좀 심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정도는 그냥 무시한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온전히 살아 온 것을 보면 남해자랑은 화재예방과 함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무해유익(無害有益)한 재료인 성 싶다.

고향을 떠나온 지난 30여년의 세월 속에 우리 고향은 실로 많은 발전과 영광을 겹겹이 쌓고 또 쌓았다.

돌이켜보면 강산이 3번씩이나 그리 쉽게 변하기 전 우리남해는 사람의 풍요 속에 주식(主食)이나 먹거리의 부족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근까지는 아니더라도 배불리 먹고 입을 수는 없는 가난의 질곡(桎梏)이 삶을 지배하는 실정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많았던 사람들이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수단으로 도시로 객지로 여기저기로 떠나게 되고 보니 이제 물자는 풍요롭되 사람이 귀한 외로운 섬이 되고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는 어려우나 엄연한 현실이고 이는 우울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흐르는 물에 두 번 목욕할 수 없다” 는 독일 속담과 같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가난했지만 자연의 섭리 속에서 해맑은 미소를 간직할 수 있었던 그 곳 내 고향 남해에서의 지난 날 추억의 언저리가 새삼 그리운 것은 필시 고향에 대한 나만의 애착일까 아니면 새록새록 늙어가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의 증거일까?

누추하고 쑥쑥했던 그저 그런 시골마을이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관광명소요 가보고 싶은 곳 1, 2위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였기에 ‘6시내고향’ ‘아침마당’ 등 많은 매스컴과 방송에서 남해를 소개하느라 취재경쟁에 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찡한 행복과 대견함에 실로 가슴뭉클한 뿌듯함을 느낀다.

메이저 방송 3사의 단골 메뉴인 가천다랭이 마을의 성공신화를 비롯하여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 그리고 녹색잔디가 잘 어우러진 남해스포츠파크, 작년에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창선삼천포대교, 전국최대의 수확량과 해풍의 맛을 자랑하는 남해마늘, 천혜의 자연 방조림과 어울린 환상의 커플이 살던 물건마을과 독일인 마을, 산사람 소원하나는 반드시 들어준다는 불도량 금산 보리암, 여기저기 잘 다듬어 놓은 어촌 체험교실, 축제의 진수 보물섬 축제 등 누가 봐도 보물섬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수많은 업적이 내가 고향을 떠난 십 수년 사이에 일구어진 금과옥조(金科玉條)와도 같은 훈장이니 이는 모두 남해군민 과 군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무원의 단합된 힘이고 화합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찬란하게 펼쳐진 고향의 역사를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냉담(冷淡)스런 향우의 한사람으로서 송구함과 함께 뜨거운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어딜 가나 요즘 남해인들의 화두는 단연 조선단지에 쏠려 있다.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쉽다느니 어렵다느니 하는 논리의 다툼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 남해인들이 보여줄 확고한 정체성과 우월감을 과감히 쏟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따뜻한 성원, 열띤 응원과 함께 좋은 요량들이 속속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 스스로도 남해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고향의 백년지계 대과업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아무런 이유 없이 열과 성을 다하고 싶다는 다짐을 한다.

곧잘 비교되는 남해와 거제의 차이에서 지난 십 수년 간은 우리의 명석(明晳)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착시로 인하여 다소간 왜곡된 점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 망운산에서 힘차게 뻗어 오르는 새로운 정기와 기상을 바탕으로 장미 빛 미래에 대한 현재의 통찰을 철저히 분석하고 판단하여 후손에게 길이길이 빛나는 업적으로 남겨주는 것이 오늘 우리의 숙제가 아닌가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쯤 우리고향 마을 지천에는 빠알간 감홍시가 주렁주렁 탐스러움을 뽐내고 있을 것이고 길가의 코스모스며, 유자향기 또 얼마나 그윽할까 생각하니 객지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천리 먼 길 내고향 남해를 향해 골백번은 달려간다.

“秋江에 밤이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無心한 달 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시조 한수가 그리운 고향바다를 더욱 그립게 하는 가을 나는 영원히 남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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