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배평모(미조면 향우)
추억이라는 그림 속에서 언제나 아름답게 존재한다. 그리고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고향을 떠나온지 오래된 사람 일 수록 근원적인 향수의 끈을 더욱 굳게 붙잡고 있을 것이다.

비록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래었을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이 섬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고향을 떠나온지 55년만에 처음으로 종로3가에 살고있는 고향사람들의 모임인 종남회에 참석했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분들인데도 오래전부터 가까웠던 사이처럼 맹목적인 친밀감이 느껴졌다. 맹목적인 친밀감, 그 속에는 꺼지지않는 빛, 아름다운 그림, 어머니 같은 그리움이 녹아있었다는 의미이다.

나는 미조면 (내가 태어났을 때는 삼동면 미조리)에서 태어났다. 몇 살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항도리로 옮겨가서 살았다.

국민학교 때 갓 입학을 해서 한달 후에 고향을 떠나오기 전까지 어린시절을 항도리에서 살았다. 1945년에 태어나서 1952년 봄까지의 배고픔과 헐벗음으로 이어진 세월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렀어도 고향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운 생각들로만 온전하게 살아있다.

좋지않은 기억은 지워버리고 픈 잠재의식 때문이겠지만 항도리는 아주 작은 포구였다.

자잘한 자갈이 깔린 갱변에 잔파도가 밀려와도 촤르르 촤르르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내가 최초로 들은 음악이었다.

봄이되어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우리 조무래기들은 산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진달래꽃을 따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진달래 못지않게 우리들이 바랐던 건 꼰밥이라는 춘란꽃대를 꺾어서 배를 채우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꽃대 마디에 있는 갈색껍질을 벗기고 꽃에서 부터 아작아작 씹어먹던 그 상큼한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난을 키우는 걸 고상한 취미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춘란꽃으로 배를 채운 사람이라고…

진달래가 지고 5월이 되면 갱변에 늘어놓은 멸치 사이에서 새끼 꼴뚜기를 골라서 배를 채웠다. 갱변 오른쪽으로 자갈밭이 움푹 패인 데가 있었는데 산에서 내려온 개천 물이 그곳에서 늘 고여 있었다.

밀물 때가 되면 그 웅덩이 위로 바닷물이 밀려왔다.

그 언저리에서 놀던 송어들이 썰물 때가 되면 고스란히 그 속에 갇힌다. 대여섯살 아이들에게는 어른 팔뚝만한 송어들은 손으로 잡을 힘이 없었다.

송어를 한마리씩 부등켜안고 웅덩이 밖에 갖다두고 와서 또 부등켜안고 갖다두기를 반복했던 그 희열에 찬 노동을 잊을 수가 없다. 내기억의 바닥에 깔려있는 동화같은 얘기다. 이 아름다운 추억은 내정신의 바탕에 채색되어있는 빛깔이다.

종남회 고향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동화, 나의 그림을 새롭게 확인했다.

고향이 사람이고 사람이 고향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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