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0억불 목표의 반도체 LCD 초정밀 부품가공업.

화제의 주인은 설천면 모천리 출신인(진목초 30회, 설천중 14회) 유태갑 향우로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서 10여 년 동안 반도체 LCD를 생산해 온 남해정공이 1000여평의 부지에 240여평의 건물을 짓고 상호를 남해하이테크로 바꾸며(2007년 1월 27일)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

남해하이테크는 초정밀 기술로써 반도체장비 부품가공 및 전자장비부품 LCD장비부품 자동화기계 제작 및 부품 가공을 하는 회사이며 근래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며 각광을 받고있는 미래의 산업분야이다.

70년대 중반 조막손을 움켜쥐고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하여 영등포 철 가공 단지에 몸을 맡긴 뒤 한 번도 다른 일을 해보거나 엉뚱한 곳을 넘어다 본 일이 없이 기술자 생활을 지켜나가며, 중경공업이 앞으로의 살길이라는 신념아래 열심히 자르고 깍고 붙이고 다듬기를 우직스런 십 수년의 각고로 1993년 수원에다 조그마한 남해정공이라는 간판을 걸고 자영의 길에 들어섰다.

집념과 끈기로 항상 내일을 내다보는 눈

내일을 대처할 생각하는 머리로써, 앞으로는 하이테크 산업이 아니고는 선두 대열에 설 수 없다는 판단으로 꾸준히 자신의 터를 닦은 것이 오늘의 남해하이테크를 일군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보다 깊은 바탕은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의 텃밭으로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인애로 인간형성의 철학을 배제할 수 없는 인성을 바탕으로 한 탓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일본을 넘나들던 유사장은 드디어 일본의 전자제품 On/Off 스위치 제작사 지하철역 검표기 버스 검표기의 제작사로 일본유수 기업 중의 하나로 지명도가 대단한 일본 교토에 있는 오므론사로 부터 꽤 좋은 조건의 계약서를 들고와 벌써 수개월째 납품 중에 있다.

또한 야마가타 현에 있는 하이메카라는 회사와 계약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다른 몇몇 기업체와 긴밀한 협상 중에 있으며 남해하이테크에서 생산한 부품은 선진국일수록 그 수요가 많기 때문에 환율의 급변만 없다면 시장은 널려있어 전망은 아주 밝다고 한다.

최첨단 기술의 보조부품으로 극세의 정밀을 요하는 기술이 회사의 기로를 결정한다는 유태갑 사장은 우수한 인재와 초정밀 기계 시스템을 지향하며 또한 고수하고 있는 지성파이다.

그의 ‘좋은 사람, 좋은 기계가 아니면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공식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으며, 20여명 기사 중 절반이상이 창업 멤버들이며 고가의 장비는 최신형이 아니면 회사가 요구하는 오차를 줄일 수 없는 현실이기에, 남해하이테크 향남공장에 들어서면 여느 공장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가 없고 육중한 기계소리 대신 냉난방 소리정도의 부드러운 음향의 분위기와, 모니터 앞에서 마우스로 기계를 작동하고 넥타이를 맨 기사들만 보이는 품격높은 산업분위기를 창출한 하이테크의 하이맨이다.

마이크로미터를 정복하고 나노미터에 도전할 날을 꿈꾼다는 그들은 늘 자신과의 의지 다툼을 쉬지 않고 손으로 일하는 대신 머리로 일을 한다. 기계 속에 기계가 돌아가고, 같은 기계 안에서 회전운동 수직운동 수평운동 각 면, 선, 구 원, 타원, 사이클론 형이 동시에 처리되고 원뿔 유선형은 물론 불규칙 간헐적 수식이 이들에게는 지극히 규칙적이고 자연스런 단어이다.

하이테크산업은 주 거래처가 국내 굴지의 가전사, 반도체 레벨의 회사인 현 산업체제 상황에서 맨주먹으로 바닥생활에서 시작한 유사장에게는 어느 한 면도 그들과 경쟁이 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오직 성실과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길만이 회사 입지의 터를 넓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알지 못하고는 오를 수 없기에 배우고 또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의 나날로, 때로는 억지 납품도 감수해야했고, 계약서의 명시된 숫자와 납기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조건에 이끌려 울며겨자 먹기로 당하는 굴욕적인 계약횡포는 힘없는 약한자라는 이유로 홀로 겪어야 했던 과거의 쓰라렸던 경험은 가슴속 너무나 깊은 자리에 맺혀있다 한다.

이제 남해하이테크는 소형부품에서 대형부품을 망라한 어떠한 가공이든지 가능하며, 어느회사 어느분야의 부품도,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미지의 부품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 분야에서는 단연 선도적 대열에 서있다는 긍지를 드러내 보이며 또한, 국내보다 오히려 일본과 거래를 하면서 기술을 인정받고 있는 회사의 자존심을 최대한 내세워 어떠한 조건의 계약에서든 동등한 조건으로 무역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기에, 공업인 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도 한다.

들일 한 번 나갔다 오면 병원 한 번 다녀오시는 홀로계시는 노쇠한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자신을 위한 일에만 바삐 살면서, 가고픈 고향 자주 못가고 어머님 얼굴 자주 뵙지 못함에 가슴아파하는 그의 효심은, 일개 군에 두 명도 어려운 유복자라는 자아애정(自我哀情)이 흉중에 살아있고, 층층의 열녀문을 세워드리고 싶은 어머님에 대한 상조효심(上祖孝心)이 그가 살아가는 근간이요 사회를 생각하는 기조라 여기며, 약지곡산 정기와 강진해 짠 바람은 그가 오늘을 있게 한 자양분이라는 유사장의 애향효친 정신은 우리 모든 향우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찡-한 교훈이 아닌가도 본다.

1990년도에는 63빌딩에서 우수 기능상도 수상도 받았다.

“향우 선후배님들도 앞으로 저희 남해하이테크에 사랑과 지도편달을 바라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며 재향 재경 향우들에게 인사를 하는 유태갑 사장은 “자신을 믿어라”, “나를 믿자”라는 좌우명을 달고 비록 외형상으론 조촐한 연매출 10억 원에 불과하지만 수 년 내에 10억불에 달성하는 목표를 이루고 남해인의 기업인으로 우뚝 성장하여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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