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운송수단의 대중을이룬 우마차(牛馬車)
초창기, 운송수단의 대중을이룬 우마차(牛馬車)
  • 남해신문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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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엔 서민들의 정서와 정감어린 교통수단으로 이용

우리 선조들의 삶의 멋과 애환(哀歡)이 담긴 한 민족의 숨결과 손때 등 문명의 뒤안길에서 그 맥락(脈絡)을 찾아 우리조상들의 전통적 생활상과 얼을 간직한 체 흘러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는 ‘사라져가는 내고장의 풍물’ 물레방아 편을 1~2편으로 엮어 보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60 여년전, 그러니까 소나 말이 끄는 우마차는 194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8.15 조국광복을 전후한 그 당시 시대적 교통수단으로 등장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

해방과 더불어 일제 말엽에는 한 두대의 소형자동차와 마차가 오로지 교통수단으로 짐도 싣고 사람도 실어 날랐다는 것이다.

우마차가 한창 성행하기로는 일제시대 였는데 그 당시로써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각광을 받아 왔었다.

그러나 짐은 주로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용됐으며 사람은 주로 멀리가는 사람이나

환자만을 실어 날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소가 끄는 우마와, 말이 끄는 마차로 나 눌수 있는 우마차는 이곳 말씨로는 ‘소 구루마’, ‘말 구루마’ 라고 했다.

마차는 두 종류로 큰말이 끄는 마차와 조랑말이 끄는 작은 마차가 있었는데 대마가 끄는 것은 바퀴가 넷으로 앞에 것은 적고 뒤에 것은 큰 것으로 바퀴에 쇠를 박아 닳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작은말이 끄는 것은 바퀴가 둘 달린 것으로 주로 개인이 주인이였으며 전라도에서 들여와 운영했다고 한다.

이 마차들은 요즘 정기 화물처럼 대개 정류소나 역 근처에 상주하여 철도 화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역에 나가면 볼 수가 있었다.

당시 운송수단으로 자동차도 차츰 늘어나기도 했지만 여러 운송 짐을 합해 마루보시라는 것으로 묶었다.

또 작은 말이 끄는 영업용도 조합에 가입해 운영토록 했다.

그런데 우차는 주로 농촌에서 곡식을 실어 나르는데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우차가 하는 일은 주로 진주를 중심으로 해서 함양과 산청, 사천 그리고 남해, 하동 등 지역의 곡식을 실어 나르는 일로 밤을 세워서 10여대씩 떼를 지워 운반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차의 소는 먼 길을 갈 때에는 짚신을 신게 했고 말은 징을 박아서 발바닥이 닳지 않도록 했다.

말은 주로 시내를 오갔고 소는 시외로 짐을 실어 운행을 했는데 특히 명절이 다가오는 추석이나 설 때에는 짐들이 많았다고도 했다.

그런데 말, 소 구루마를 두는 것은 개인소유로 자기들 집에 두었다.

당시 마부는 우리나라 사람이었고 회사 운영진은 일본 사람이었으며 마부도 월급제 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차도 우차도 볼 수 없는 오래된 얘기지만 현대 수송수단에 밀려나 휘귀한 구경거리로만 돼 버렸다.

옛날엔 사람도 실고 짐도 실어 날랐으니 교통수단으로 뺄 수 없는 유일한 존재였으며 이젠 먼 추억 속에서 나마 더듬어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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