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면유자작목반 반장)
<852호에 이어서>

그런데 그동안 공직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영농을 꾸며왔지만 1995년 3월에 퇴직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대전에서 흙살림 이태근 회장의 친환경 교육강의를 듣고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지금까지 농약에 속아서 보이지 않던 무서운 독약이 인체를 휘젓고 다닌다는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2002년까지 7년동안 유자 영농회를 조직하여 모든 사무와 행정을 도맡아 지도하면서 불모지인 친환경을 구상하고 회원들에게 농약 처리를 자제하는 방법과 저농약 방법이라도 경영체제를 바꾸자고 애원하듯 설득과 교육을 시도하면서 수확기에는 공동출하를 위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수집하고 판매하였다는 것은 새로운 농법의 변화를 시작하려는 준비단계였던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2003년에 새로운 유자 작목반이 구성되고 최초 인증을 받게된것이 친환경 농업의 출발이었다. 그 다음해부터는 벼, 유자, 고추 등 모든 농작물을 인증 받기로 결심하고 시도하였으나 가로막는 장애물은 인증 받으려는 토지 주변의 지주를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지혜를 짜서 주변에서 농약 살포를 자제하겠다는 이행 동의서를 받아내어 품질관리원에 전달하고 농약 처리를 못하여 피해가올까 염려되어 친환경 자재를 손수 뿌려주면서 다함께 풍년 농사를 지어가도록 협조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처음시작한 13명에서 25명으로 두배 가까이 불어나게 되었고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되면서 편제에도 없는 사무국장으로 취임이되어 사무와 지도와 교육까지 도맡아 하게된 것이 벌써 10년에 가까운 친환경 대부노릇을 하면서 때로는 아내에게 유자애비란 핀잔을 들을때도 있었고, 밤과 낮없이 들고다니는 문서조각들이 서재며 거실에 흩어져 널려있을때 곱지않는 눈초리가 있어도 ‘내가 가는길은 이 길이다’ 라고 생각하며 친환경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회원 25명의 전·답 필지수가 103필지 7.4ha에 하나같이 감시하고 환경을 살피면서 정지전정 확인 사진을 전 필지를 촬영 정리하고 지적도며 등기부등본이며 직불금 신청 수령까지 각가지 행정처리를 하면서 자재를 나누어주고 퇴비와 비료를 배달하는 등 피땀 흐르는 줄도 모르고 동분서주 달리다 보면 어느듯 한해가 가고 두해가 가서 벌써 5년이란 인증의 계단을 지나온 것이다.

벌써 준비단계 5년을 합하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보내게 된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만큼 높은 값으로 팔렸던 시대는 대학나무로 유명 하였지만 그때부터 10년을 지나면서 너도나도 심었던 유자가 1990년대 말에 풍작이 되었고 농약으로 인한 거부반응 때문에 한때 서양길로 천대를 받을때는 자구책으로 13명이었던 회원들이 전국을 돌며 홍보하고 가까운 주변에 5개소의 판매처를 개설하여 유자를 판매 하였으나 수고한 만큼의 소득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달리하여 친환경으로 그 농법을 변경하는 웰빙 농업만이 살아남는 길임을 알게되어 우리나라의 모든 농약창고는 인류의 사약창고라고까지 농민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친환경을 처음 시작할때는 우리가 먹고 마시는 종류인 소주, 탁주 그리고 설탕발효액부터 시작하여 인체에 해가 없고 병충해를 막을수 있다는 나무열매, 나무뿌리 가릴것 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친환경 농업은 정답이 있는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기발견· 자기연습으로 실험하여 터득해야 한다.

어떤 농약회사가 자재를 전문으로 만들어 시중에 내어 놓은것도 믿을수가 없었다.

비싼 값으로 구입한 자재가 잘못 처리되어 크게 피해를 입은 경우도 적지 않게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한약 찌꺼기가 농작물에 좋다는 말을듣고 1년농사를 폐농했다는 말을 들은 일도 있다. 사람이 보약을 너무 많이 먹어도 안되는 것처럼 목초액을 과용하여 유자나무를 죽여버린 농가도 있다.

그래서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지나가라’는 말은 정제된 자재라도 제조회사에 확인하고 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소량으로 시험하여 확인한 후 많은 양을 사용함이 옳을 것이다. 유자나무에 매년 초에 기계유제 처리와 석회 유황합제 처리는 제쳐두고라도 기본적으로 응애, 진딧물, 깍지충 그리고 더뎅이병, 흑점병 방지를 위해 무진애를 써보았지만 크게 효력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유자식초를 만들고 그 식초에 마늘쫑, 잉동초, 우엉 등에 발효제를 넣어 숙성시켜서 사용도 하고 은행잎이며 코부리나무며 오동나무, 장목 그리고 유기농 사전에 있는 내용을 통독하면서 연구를 거듭 하였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수년이 흘렀다.

그런데 2006년 6월 미국에 조카 결혼 방문차 다녀올 것을 생각하니 고추는 그 방문 기간동안 담배나방이 먹어버리면 992㎡ 친환경 고추농사는 폐농이다 라는 생각을 하니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서 마늘요법을 읽어본 기억을 더듬어 과감하게 물 한 동이에 500g을 희석하여 처리하고 한달(30일)후에 돌아와 홍고추를 수확하였더니 획기적으로 담배나방이 줄었고 5년동안 고심한 유자나무의 깍지벌레도 일망타진된 사실, 그리고 벼논에 자벌레까지도 완전 박멸하여 성공한 사실을 인증자 총회시에 발표했더니 관심있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에 인기가 상승해 살맛나는 친환경농업 성공의 계기가 되었고 남해 친환경 연구회 총무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7월의 그 뜨거운 햇빛이 내려 쬐이는 논두렁에 앉아서 벼포기를 붙잡고 눈물을 떨어뜨린 사연인즉 자벌레들이 3일전에 뿌린 마늘생즙에 뱃속이 노랗게 된 채 벼 포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죽어있는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온 농사가 자벌레 때문에 망쳐버릴 뻔했던 순간을 생각하니 얼마나 기분이 상쾌했는지 눈시울은 뜨거워지고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알렸다.

이와 동시에 유자나무에도 시험적으로 500g 희석으로 살포했는데 하얀깍지충은 전멸되었고 옆에 나란히 서있던 동백나무는 새로나온 잎들만 3일후에 완전 말라버렸다.

그 후 좀 약하게 400g이 못미칠 정도로 희석 살포하였는데 가을에 찔리는 가시속을 제쳐보니 깍지충이 나비가 되어 날아 올라가다가 가시사이에서 매달린채 죽어 주렁주렁 달려있음을 볼수 있어 지난 10년동안 고생하고 또 고심하며 수많은 연구기관에 문의하여도 해결치 못했 던 것에 나만의 쾌거를 느끼고 이것이 친환경 농업 진일보를 쟁취한 것임을 느꼈다. 그 원수 멸구, 흑명나방 그리고 모든 해충 박멸의 친환경 두령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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