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의 삶의 멋과 애환(哀歡)이 담긴 한 민족의 숨결과 손때 등 문명의 뒤안길에서 그 맥락(脈絡)을 찾아 우리조상들의 전통적 생활상과 얼을 간직한 체 흘러온 역사를 재조명해 보는 ‘사라져가는 내고장의 풍물’ 물레방아 편을 1~2편으로 엮어 보고자 한다.

농경민족이었던 우리선조들은 거둬들인 곡식의 껍질을 벗겨야 하는 도구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예로부터 우리농촌에서는 절구와 디딜방아, 물레방아, 맷돌 등을 만들어 써 왔다.

특히 수확량이 많아지면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디딜방아와 물의 힘을 이용하여 일을 쉽게 끝낼 수 있는 물레방아가 곡식을 찧는 최상의 도구로 사용 돼 왔었다.

그러나 이들 도구도 6.25를 전후해 점차 우리네 생활주변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디딜방아나 물레방아는 옛 조상의 유물로 민속박물관속에서나 찾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옛적 우리선조들의 끈끈한 삶이 깃든 이들 생활도구가 우리생활주변에서 사라진 것은 거센 바람을 타고 밀려든 기계문명의 여파 탓 일게다.

‘쿵더쿵 쿵더쿵’ 방아를 찧을 때마다 방아소리가 동구 밖까지 울려 퍼져서 농촌의 풍요한 정경을 느끼게 하던 디딜방아.

또 명절 때는 떡방아소리로 명절 기분을 한껏 돋우기도 했고 밤이 깊은 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등잔불을 밝혀둔채 보리방아 나락(벼)방아를 찧느라 고달프기도 했으나 그 방앗간에는 동네 여인들만의 애환이 깃들여 있었다.

동네소문의 진원지 구실도 했고 때론 고된 시집살이를 달랜 눈물의 장소로도 이용됐었다.

이처럼 동네여인들의 일터였던 방앗간이 현대문명의 기계화에 밀려 사라져 가면서 끓어질듯 이어져 내려온 방아타령 마저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시아버지 죽었다고 춤 쳤더니 동지섣달 맨발 벗으니 시아버지 생각 절로 난다” “시어머니 죽었다고 춤 쳤더니 보리 앙아 물고프니 생각난다” “꽁다꽁 꽁다꽁 찧는 방아 언제 다 찧고 밤 마실갈까” “꽁보리 방아를 부어놓고 시어머니 생각 저절로 나네” 라는 애환이 깃든 방아타령!

디딜방아가 중농이상의 농가에 자체방앗간을 설치, 방아를 찧는 것이었다면 물레방아는 동구 밖 냇가에 설치돼 대부분 마을 공동소유로 운행됐거나 아니면 개인이 일정량의 삯을 받고 운영해 왔다.

물레방아역시 능률면에서는 버튼으로 작동되는 현대식 정미소를 따라 갈수가 없었다.

디딜방아가 개인용 도구였다면 물레방아는 이익을 추구 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사업체로 발전한 정미소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농경민족의 체취는 이제 껍질이 벗겨진 알곡마냥 농촌에서도 쉽게 벗겨져 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우리농촌의 정서와 정취를 자아냈던 물레방아!
그러나 요즘은 몇 몇 관광지에서나 물레방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세월 따라 바람 따라 흘러온 농촌도 이제는 방아 애기는 잠자리에서 할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처럼 후세에 전해질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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