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만든 베개 경로당에 20여년간 무료 제공 ‘훈훈’

창선면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박주선 회장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고 창선면 당항마을을 찾았다.

주위에 알리지 않고 그늘진 곳에서 진정한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창선면의 숨은 일꾼이 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았다는 제보였다.

▲ 20여년간 손수 베개를 만들어 노인들이나 경로당에 무료로 제공한 장찬순 할머니.
그 감동의 주인공은 2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바쁜 농사일과 중에 틈틈이 짬을 내 손수 베개를 만들어 노인들에게, 경로당에 무료로 제공해온 장찬순(73) 할머니.

박 회장의 안내로 할머니 집을 방문한 기자가 현관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마루 한 쪽에 놓인 재봉틀과 갖가지 헝겊조각들이었다.

신문사라는 말에 장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돌렸다.

“늙은 노인네가 잠이 안 와 놀이 삼아 하는 것을, 무슨∼. 일없네. 어젯밤 꿈이 안 좋더니…. 자꾸 그러면 오늘로써 딱 끊어버리고 안 할끼다”라며 극구 사양했다.

그러면서 집에 온 손님을 위해 음료수 등 먹을거리를 내놓으며 자리에 앉은 장 할머니는 “20년 넘게 잘 넘어왔는데 오늘에사 베개 전달 심부름을 해준 우리 동네 배선희 부녀회장이 쓸데없이 일을 벌여 기자를 헛걸음하게 했다”며 배 회장을 나무랐다.

“내는 아무 것도 아니제. 젓갈 팔아 1억원을 희사하는 사람들 정도는 돼야 감동적이지 않은갚

젊어서부터 솜씨가 좋아 자녀들, 손주들 베개는 직접 만들어주곤 했다는 장 할머니는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짬나는 대로 베개를 만들어 집안 사람들에게, 동네 어르신들에게 베개를 만들어 갖다 주었단다.

“딸기 다라이나 페트병을 베고 누운 어르신들에게 베개를 갖다드리면 좋아하는 그 맛에 이번엔 이 마을, 다음엔 저 마을 등 어른 다섯이 모인 곳이면 찾아서 베개를 제공했다”는 장 할머니.

20여년간의 바느질 경험이 몸에 밴 터라 낮엔 안경을 안 끼고서도 바늘에 실을 꿸 정도인 장 할머니는 형형색색 천들을 색깔 배합하여 짜 짚고 베개통 만드는 등 베개 한 개 만드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여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만든 베개를 세어보면 500∼600개는 족히 넘을 정도란다. 베개에 들어간 왕겨를 재놓으면 아마 집 한 채는 뚝딱일 것이라고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남편 조현실(73·당항노인회장)씨가 한 마디 거들었다.

▲ 장찬순 할머니와 남편 조현실 당항노인회장.
날마다 재봉틀에 붙어 있는다고 타박을 주지만 베개를 만들어 인근 마을에 배달을 갈 때면 직접 경운기를 운전해주는 조 회장이다.

▲ 할머니가 손수 정성껏 만든 베개들.
3년 전 어느날, 텔레비전 프로에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이 소개됐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토막 베개를 베고도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남해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다랭이마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택배로 베개를 보내기도 했다. 받는 사람이 기분 좋으면 그만이라면서.

장 할머니는 “이제는 나이 들어 많이도 못한다네. 가만히 있으면 온 몸이 쑤시고 아파 바느질에 신경 쓰면 좀 낫겠다싶어 소일거리 삼아 하는 정도지. 살아 생전에 창선면내 전 마을은 다 돌려야 할텐데…”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고생도 많았고 지팡이가 없으면 걷는 것조차 힘들어보이지만 고사리, 강낭콩, 마늘, 벼농사 등 농촌의 일이라는 일은 다 해낼 만큼 대장부 역할을 해내는 장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아들 셋을 다 대학 공부시키고 10년 넘게 치매 걸린 친정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다.

동네 주민들은 젊은 시절 26년 동안 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봉사가 몸에 밴 장 할머니이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 거라고 귀띔했다.

“이 일을 하다보니 내 고생이나 피곤함은 잠시 뿐, 누구에게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에 부자가 된다”는 장 할머니는 “지금까지 이 일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군담 한 마디 없이 이곳 저곳에 배달 심부름해준 창선농협 최정자 상무님 덕이 크고 안 입는 한복이랑 옷가지들, 양장점 책자들을 챙겨다 준 딸, 며느리 사돈 팔촌에다 재봉틀을 사준 사위의 도움이 컸다”며 그들에게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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