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불러일으키는 볼거리 인식’ 커져


▲ 고현면 차면마을 인근의 벚나무 가로수길.
남해군 내의 벚나무는 일제치하의 산물인가, 군의 자랑인 아름다운 가로수인가.

벚나무가 만개해 군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계절이 오자 군내 벚나무의 출처에 대한 오랜 궁금증과 의미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다.

일본의 국화인 벚나무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곳곳에 의도적으로 식재 됐다는 설이 공공연한 가운데 남해군 내 벚나무도 일제치하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이충무공전몰유허 주변의 벚나무는 역사적인 의미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곳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어 왔다.

충무공의 유적지에 일본 국화가 흐드러지게 펴 그 아름다움으로 군민과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일본과의 오랜 민족 감정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서다.

지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간 노량 일대에서 진행된 벚꽃축제 역시 이러한 논란 속에 있었다.

남해군에 따르면 벚꽃축제는, 당시 각 지자체들의 보여주기식 성과 위주의 축제가 남발되던 때로 국가에서 소모성 축제를 자제하도록 하자는 정책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지됐다.

그 외 교통혼잡과 인근 하동 벚꽃축제와의 중복 문제 등도 축제 중단의 이유가 됐지만 벚나무의 역사적 의미와는 별개의 문제였다는 것.

벚나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이같은 논란이 직접적인 축제 중단의 원인은 아니었으나 으레 회자되던 논제였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를 회상하던 한 군민은 “과격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은 ‘이락사 주변의 벚나무는 없애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충무공전몰유허 주변의 벚나무는 일제시대에 식재된 것이 아닌 지난 1975년 남해대교 개통을 기념해 ‘오사카남해친목회’회원인 16인의 재일교포들이 기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 6일 제막식이 진행된 노량공원의 벚꽃나무 기증 기념비
이들은 당신 벚나무를 기증하며 현 설천면 노량공원에 기념비를 세운 바 있다.

이 기념비는 공원 공사에 따라 인근 도로변으로 잠시 위치를 옮겼다가 오사카남해친목회 현 회원들의 요청으로 지난 4일 기념비를 재정비하고 다시 노량공원 내에 세워졌다. 이 비는 6일인 오늘 제막식을 거행한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이충무공전몰유허 일대의 벚나무는 일본산이기는 하지만 일제치하의 산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에 반해 삼천포와 사천시, 창선면, 설천면 등 일부 지역의 벚나무 묘목을 약 60여 년 전인 일제 치하 때 일본으로부터 싣고 왔다는 주장을 내세운 이가 있었다.

지난해 9월경 운명을 달리한 박태공 옹은 당시 일본 오사카로부터 벚나무 묘목을 실어나르던 선박의 선원이었다는 증언을 한 바 있다.

현재 군 담당 부서에는 당시의 가로수 식재 기록에 대한 자료가 없어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할 수는 없으나 나무의 수령이나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일본 식민지 시절 수급된 벚나무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군민은 “역사적인 의미 외에 남해군민들에게 벚나무는 이제 향수를 자아내는 추억의 산물이 되고 있다”며 “일제식민지라는 아픈 역사를 잊을 수는 없지만 꽃나무는 그저 아름다운 꽃나무로 바라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대다수의 군민들의 인식 역시 벚나무를 일본 국화로 보기  보다는 내 고장의 가로수로 인정하고 아끼는 쪽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벚나무 개화 때면 소풍을 가 기념 촬영을 하곤 했다는 한 군민은 “다른 지역에서 공부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 대교를 넘어 만개한 벚꽃을 마주한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현 세대들에게 벚나무는 역사적 의미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로 인해 민감한 사안으로 회자되고 있는 군내 벚나무는 점차, 남해군의 자산이며 군민 정서의 한 부분으로 인식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