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내에는 문화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제대로 잘 아는 이는 없고, 밖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주민들 중 모르는 이는 거의 없는 유·무형의 소중한 문화재와 전설 등이 많다. 이에 남해를 진정한 보물섬으로 만드는 소중한 우리의 재산을 찾아 함께 알아가고자 한다. 나아가 더욱 잘 가꾸고 지키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보자. <편집자 주>


밑줄 쫙!

남해상주리석각은…

지난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남해상주리석각은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소재 국립공원의 비법정 탐방로로 지정된 산자락에 자리해 있다.

가로 7m, 세로 4m의 자연석 왼쪽 아래 가로 1m, 세로 50cm 정도의 범위에 그림문자로 보이는 형상이 음각 돼 있으며, 현재로서는 판독이 불가능한 관계로 이 그림문자에 대해 무수한 전설과 추측들이 나돌고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서불과차설’이다.

이는 서불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설인데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자신의 시종인 서불에게 삼신산 불로초를 구해오라 명하자 서불이 동남동녀 500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찾아 나섰다.

동방의 영험한 산으로 알려졌던 금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던 서불은 불로초를 얻지 못하고 수렵만 하다 이같은 문자를 남기고 제주도를 거쳐 일본으로 떠났다 한다.

문자에 대해서도 서불과차의 내용을 세긴 한자라는 설에서부터 단순한 고대 그림문자라는 설, 옛 거란족의 문자라는 설, 산스크리트 계통의 문자라는 설, 훈민정음 이전의 우리나라 고대 문자라는 설 등 기원과 내용을 파악할 방법이 묘연해 정설 없이 무수한 설들만 난무해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의 역관이었던 오경석 선생이 이 암각의 탁본을 중국으로 가져가 당시 중국 금석학 전문가의 감식을 받고 이를 서불과차라 한 데서 오늘에 이른다.

 

상주리석각은 지금

학술용역에 심포지엄까지하고도 관리 계획 아직 묘연해

남해군은 상주리석각의 연구와 보존·개발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지난해 서울대 국제서복학회 연구팀에 학술 용역을 주고 결과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으나, 이후 예산 책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다시 산야에 석각을 묻어만 두고 있는 실정이다.

석각은 현재 무분별한 탁본 흔적으로 훼손 일로에 있으며 심지어 일부 탐방객이 암각화에 희색 페인트를 칠해 문화재 본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남해군 향토사학자들은 암각화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가기 위해 암각이 선명하도록 흰 페인트를 칠했을 것이라 추측하며 지역주민이나 양식 있는 학자들이 아닌 일부 몰지각한 다른 지역 사람들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훼손 우려에 따라 지난 심포지엄 당시 남해군은 보존책을 마련하고 보조석에 본을 떠 인근에 설치해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방안 등을 계획해 시행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해군 담당자의 “계획은 있으나 예산이 없다”는 답변에 군민들은 “그럴 것을 학술 용역에 심포지엄은 뭐 하러 했느냐”는 반응이다.

제주도의 서귀포에서는 사실 유무도 판단하기 힘든 서불과차 암각화를 관광자원화 해 서복전시관을 건립해 있고 일본 역시 서불을 신격화하고 각종 향토 먹거리를 이와 연관시켜 상품화 한 예가 있으며 중국 역시 역사적 사실 즉, 자국의 인물이 동아시아의 개화에 일조 했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심포지엄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한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서불 관련 유적인 상주리석각의 진위 여부의 모호성으로 인한 신비감을 이용해 다양한 관광자원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석각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 계획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 이금수(54·상주면 양아마을)
“현재 남해군서복회 연구분과위원장으로 있다. 어린 시절부터 향토사학에 관심이 많아 홀로 연구하고 공부해 왔다. 상주리석각은 명칭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보통 석각이 소재한 지명의 이름을 붙이는 학계의 관례로 봐 ‘양아리석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상주리석각은 몰상식한 사람들이 암각화에 페이트칠을 하고 먹이나 화공약품으로 탁본을 해 많이 훼손된 상태다. 탁본의 방식도 선진국형인 비닐에 옮겨 그리는 방법으로 널리 바꿔 훼손을 최소화해야할 것이다. 나는 상주리석각을 고대 주술적 의미의 암각화로 보고 있다. 양아마을 바닷가로부터 금산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바위 형상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상주리석각도 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조 기자 상주리석각 만나러 갑니다


살아있는 역사의 한 자락, 온전히 보존돼야


그 길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국립공원에서 벌금을 물리므로.
공문을 미리 보내 양해를 구하고 길 안내까지 받으며 갈 수 없는 산길을 오르니 은근히 으쓱해진 모양이다.

가쁜 숨을 내쉬며 걷는 와중에도 간혹 보이는 미허가 탐방객들의 흔적까지 꼬집어 가며 걷는 길이 경쾌하다.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옮기던 가벼운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질 즈음 상주리석각을 마주했다.

말로만 듣고 입을 쩍쩍 벌리며 경외했던 진나라 시황제의 불사의 욕망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2007년 오늘을 사는 필자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워 역사와 유물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진시황은 이루지 않았는가.

대륙을 통일하고 법치국가의 전신을 일궈냈으며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절대 권력을 대변하는가 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불로초 전설까지.

그는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까지 살아 숨쉬도록 하고야 말았다.

서복은 과연 이곳에 있었는가.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름 없는 옛 조상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 바위를 품에 안고 있는 우리는 일단 보존의 책무를 후대로부터 위임받았다.

바위 한번 만져보자, 내 학설 한번 밀어보자는 관심말고 보존을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

고대 인간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그 귀한 유물에 흰 페인트칠이 웬 말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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