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다정리3층석탑은…


지난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된 다정리3층석탑은 남해읍 이동면 다정마을에 자리한 1.6m 높이의 석탑이다.


원래는 3층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탑신부의 몸돌 2개와 옥개석(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2개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탑의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는 두 개 층의 탑신부만 남아있고 탑 위에 구슬모양의 돌인 보주가 3개 얹혀있다.


탑신석에는 양우주(모퉁이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기고 옥개석에는 3단의 옥개 받침이 있다.


옥개석 즉, 지붕돌이 두툼해지고 밑면의 받침이 3단인 것이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탑 연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원효대사가 신문왕(신라 31대) 때 다정마을에 창건한 ‘다천사’라는 사찰 내에 세운 3층석탑이며, 사찰은 현 용문사에 편입하고 탑만 남았다고 전해진다.


탑이 있어 마을을 ‘탑골’이라고 부르다 다천(茶川)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탑이 서 있던 들과 인근이 화정들(화정등)으로 불려지고 있어 화정사 사지로도 추정되고 있다.


탑 인근을 둘러보면 절터의 석축으로 보이는 돌과 사찰을 둘러 심은 듯한 대나무도 볼 수 있다.

 

다정리3층석탑은 지금



문화재로의 접근 어려워

다정리3층석탑은 아는 사람만 아는 곳에 길 안내 표지 없이 서 있어 초행자들이나 다른 지역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다정마을 안에서도 마을 깊숙이 들어앉은 개인 전답 가운데 있어 석탑을 찾아가려면 마을을 잘 아는 주민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접근이 힘들어 유적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역사적 지식을 학습하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도 지정 유형 문화재다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담당자는 “문화재는 보존이 우선이지 접근의 편리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길을 정비하고 길 안내 표지를 설치하는 등의 문제는 지자체가 필요한 경우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해군 담당자에 따르면 문화재가 손실되는 등 보존상의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접근이 용이하도록 길이나 안내 표지를 마련할 계획은 아직 없다.



▲ 정상광(62·이동면 다정마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자리한 탑이라 윗대에서부터 이어지던 관리도 내가 하고 있다. 설이나 정월대보름과 같은 명절이면 집안 제사를 모시듯 탑에도 예를 갖추곤 한다. 탑이 외로워 보여 옆에 동백나무도 심었다. 내겐 문화재 이상의 의미가 있는 탑이다. 탑 보존과 관리에 특별한 사명까지 느끼고 있다”

 

 

 

군내 문화재 석탑 소개



▲ 정지석탑
정지석탑은 고현면 대사마을에 자리한 높이 2.25m의 3층 석탑으로, 고려 말 우왕 9년(1383)에 정지장군이 왜구를 격퇴한 데 감사하며 지역민들이 세운 탑이라 전해진다.


현재까지 마을 주민들의 염원을 기원하는 유물로써 보존·관리되고 있으며 정지석탑으로 인해 마을을 탑동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자료 42호.

 

 

 

 

 

 

 

 

▲ 당항신흥사3층석탑
당항신흥사3층석탑은 남면 당항마을 마을회관 앞에 위치한 2.5m의 석탑으로 고려시대 탑이라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있는 신흥사란 사찰 내에 세워진 탑으로, 절터가 있던 들판에 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보존을 위해 마을회관 앞으로 이전했다.


문화재자료 43호.


 

 

 

 

 

 


조기자 다정리3층석탑 만나러 갑니다


사람과 함께


‘가는 길도 힘들고 길 안내 표지도 없고, 이거 문화재 맞아?’

동네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 남의 밭을 밟고 석탑에 도착하기까지 필자는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하는 생각을 주워섬기고 있었다.

명색이 도지정 유형문화재라는 다정리3층석탑 주위는 개인이 일구는 보리밭 가에 허름한 철책을 두르고 허울 좋은 문화재 안내 표지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 한심한 모습이다.

이 때 멀리서부터 삽 하나를 든 촌로가 이쪽에 관심을 보이며 걸어온다.

길을 안내한 어르신이 탑주라 소개한 정상광씨다.

정씨의 “어찌 왔느냐”는 물음에서 묘하게도 자기 몫을 끌어 앉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경계심이 느껴져 당혹스럽다.

정씨의 권리(?)를 인정하는 듯한 저자세(?)로 탑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더니 그제야 꺼내 보이며 탑을 자랑한다.

정씨의 설명에 탑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모든 역사 유적, 더구나 내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재라면 박물관의 반짝이는 유리벽 안에서 고귀함을 뽐내는 유물들처럼 반듯하게 관리가 되야 한다는 필자의 인식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한다면-그 위상이나 우열은 차치하고- 돌아간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의 곁을 지키듯 탑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정상광씨 역시 탑의 역사 안에 있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을에서 탑을 옮기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정씨가 딱 잘라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탑에 손대면 사람이 다칩니다. 그 자리에 소중히 두고 관리하는 것이 옳아요. 사람 상하는 게 두렵지 않으면 어디 손 대 보라고 내가 큰 소리쳤지요”

이 순박한 시골 어른에게는 탑을 소중히 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 마음이 다정리3층석탑을 지키고 있는듯하다.

그렇게 탑은 정상광씨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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